이화여대 시절 지하서클 운동…“다시 태어나도 사회학 공부” 장하진(54) 여성부 장관은 광주광역시 태생으로,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충남대 사회학과에서 교편을 잡았다. “다시 태어나도 사회학을 공부하겠다”고 할 만큼 사회학 분야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이화여대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 학교 최초의 조직적 학생운동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경 현 열린우리당 의원, 최영희 〈내일신문〉 부회장과 함께 ‘새얼’이라는 지하서클을 만들어 신문을 발간하고 여론을 이끌었다. 당시 이대에서 <금관의 예수> 공연을 한 뒤 도망다니던 시인 김지하를 집 근처에 숨겨줬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적도 있다. 학자인 동시에 사회참여에도 관심이 많아 1999년에는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여성 정치세력 시민연대’ 창립을 주도했다. 2001년에는 한국여성개발원 최초로 공채 출신 원장을 맡아, 여성의 성주류화 정책의 방향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조카이며,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 운동을 이끈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누나인 그는 취임 초기 화려한 가족사 덕분에 언론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에 대해 “집안보다 능력으로 평가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호주제 폐지되던 날, 병실에서 눈물” 성매매 축소는 흔들림없이 진행할 것
기혼여성 노동시장 참여…가정 직장 학교 모두 변해
새 일자리 200만개중 150만개는 여성으로 채웠으면… 여성부가 바빠졌다. 지난해 성매매방지법 시행과 더불어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 개정안 통과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여성부는 작지만 눈에 잘 띄는 부서가 됐다. 올해 여성부의 중점 과제는 보육, 가족정책, 그리고 여성 일자리 창출이다. 성폭력, 성매매, 호주제가 모두 ‘의식’의 문제였다면 이들 과제는 ‘돈’과 관련된 문제다. 지난 2001년 한해 예산 288억원의 초미니 부처로 출발한 여성부의 올해 예산은 6400여억원이다. 이 가운데 보육정책에 배정한 돈만 6000여억원. 그래도 쓰임새에 비하면 모자란다. 아이들을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하려면 연간 1조~2조원까지 재정이 투여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 6일 장관실에서 장하진 여성부 장관을 만나 여성부의 당면 과제와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부 장관이 되자마자 호주제 폐지 통과, 성매매 집결지 화재사건 등 일이 많았습니다. 보람이나 힘든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성격적으로 괴로운 일이 별로 없어요. 최선을 다하고 안 되면 역사적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괴로울 때 역사는 왜 이렇게 천천히 가는가를 되짚어 보면 많은 부분이 이해가 돼요. 그러면 편하죠. 모든 여성이 시대적 과제로 소망했던 호주제가 폐지되는 날 병실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죠. 사실 왜 광복 직후 호주제를 폐지하지 않았는지, 역사를 공부하면서 의문이 들 정도였던 문제였습니다. -취임 뒤 ‘사건’이 많았는데요. =지난 4월 부산에 가서 성매매 집결지 시범사업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성매매 단속을 주말 이틀 동안 유예해 달라고 했던 것 말인가요? 부산에서, 장수는 언제나 전진만을 외칠 수 없고 작전상 후퇴도 있고 휴전도 있는 거라고 했습니다. 너무 언론의 지적을 귀담아듣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그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여러번 되새김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많았다고 하는데 정책적 사건은 딱 하나예요. 하월곡동 화재참사가 난 것. 그 사건은 아직 미해결된 채 있고, 진행중입니다. 성매매 축소도 흔들림 없이 진행할 겁니다. -최근 여성부의 업무가 많이 바뀐 것 같은데요. =지난해와 올해 여성부 업무는 질적, 양적 전환을 이뤘습니다. 이행기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원래 여성부 예산이 400억 규모였는데 보육예산만 올해 6000억원입니다. 예산으로 정책을 다 말할 순 없지만 보육업무의 비중이 그만큼 커진 셈이죠. 여성가족부가 되면(올해 안에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바뀜) 가족정책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경제장관 회의에도 참석할 만큼 여성부에 대한 기대도 커요. 지금은 여성부의 총괄·조정 업무가 본격적으로 커가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보육문제 등 여러 사안에서 역할을 새로 정립할 시기가 됐죠. -2008년까지 국공립 보육시설 비율을 10%까지 늘리겠다고 했는데 시민단체에서는 20%는 늘려야 공보육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보육 시설을 짓는 것만 공보육의 강화가 아니에요. 국가가 시설을 지으면서 한편으로는 부모가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는 시설이 되도록 시설 수준도 유지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보육비를 직접 지원하는 일도 공보육에 포함됩니다. 단순히 국공립을 몇 개 짓느냐, 적다 많다 하는 고정관념에서는 벗어났으면 합니다. 보육전문가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급증하는 보육예산 확보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서…, 많은 예산을 투여해야 하는 문제인데 정부가 보육에만 예산을 투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재정당국과 협의중입니다. 여성부 장관이 너무 욕심을 내고 있다는 얘기도 있어요. -보육, 가족정책 등의 강화로 성평등 정책을 등한시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흔히 21세기가 여성의 시대라고 하는데, 여성이 더 중요하다거나 여성상위시대라는 표현이 아니고 사회변동의 핵심이 여성이라는 얘기죠.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그렇게 봤죠. 기혼여성 60~80%가 노동시장에 참여하면 가족관계가 변합니다.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남자는 일, 여성이 가정을 맡는다는 이분법이 없어지고 가족관계가 바뀌는 거죠. 가족 해체기도 맞게 되고 위기상황도 나타납니다.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이뤄지던 노동, 복지기능이 사회적으로 흡수·전환될 겁니다. 그런 전환기에서 오는 문제를 가족정책으로 해결해줘야죠. 가정, 직장, 학교, 지역사회가 모두 바뀔 겁니다. 사회공동체적 관계가 달라지면 사회시스템도 바뀔 수 있습니다. -여성부의 총괄·조정업무가 커지고 있다고 했는데 여성부의 권한이 적은데도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정책에서 여성적 관점으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하는 일이죠. 예를 들면 실업정책을 세운다고 해서 검토해보면 여성적 관점이 빠져 있어요. 실업에서 여성은 중요한 위치에 있고 직업훈련, 일자리 창출, 취업정보센터 운영 등에서 여성창구를 별도로 둘 것인가 말 것인가 등에 여성부가 개입하면 정책의 설계가 달라지더라고요. -장·차관 등 정책의 입안·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의식을 바꾸는 교육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장관들도 언제 한번 (교육을) 하면 좋겠네요. 그렇게 하면 장관들이 받아야 할 교육이 엄청 많아질 거예요.(웃음) 장·차관들의 여성을 보는 관점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어요. 보좌관도 꼭 여성으로 쓰고 싶다든지 어느 직급을 주고 싶다는 요청을 많이 합니다. -가족정책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가족정책은 위기가족 문제에 대처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가족이 정책 대상이 될 거예요. 관혼상제 등 새로운 형태의 문화, 새 가족관계, 가족복지까지 새롭게 다루려고 합니다. 한국형 가족문화를 세우겠다고 하니까 여성단체에서 전통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고 오해한 적도 있어요. 당연히 여성정책의 1순위는 전통적 가부장 문제의 해결입니다. 우리가 제시하려는 한국형 가족문화는 품앗이처럼 가족 단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공동체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이를 정책적으로도 지원하겠다는 취지예요. -재임 기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0살부터 5살까지 350만 아동의 50%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게 하고 싶어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려면 200만개 일자리가 새로 필요한데, 이 중 150만개 정도는 여성 일자리로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교육, 의료, 문화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여성친화적인 일자리예요. 돌봄노동과 관련해 가족이 환자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 ‘보호자 없는 병원’ 같은 것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중이고요. 이젠 가족이 아파도 돌볼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간병인을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잖아요. 이걸 사회시스템으로 해결해 보려는 겁니다. 권복기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인터뷰 뒤안길
취임 120여일 만에
첫 단독 언론인터뷰 장하진 여성부 장관이 언론과 단독으로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관 취임 120여일 만의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를 시작하면서도 그는 “언론 인터뷰는 안 한다고 했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이제까지 아침 주부 프로그램 등 모든 방송과 신문의 인터뷰를 거절해왔습니다. 여성부 장관이라고 하면 신변잡기를 많이 다루는데 여성부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뷰를 수락한 장 장관은 다음날 전화를 걸어와 인터뷰를 고사하기도 했다. 여성부가 발표하려던 보육정책이 예상 밖으로 조율이 늦어져 관련 경제부처들과 협의가 끝나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직설화법을 주로 쓴다. 취임 초기 여성 엔지오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 장관은 “여성부와 엔지오가 이젠 선을 그을 때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인터뷰 중에 그는 그때를 돌이키면서, “장관이 할 말은 아니었다”며 웃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내내 “이런 거 말해도 되나?”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인터뷰 시간이 길어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김용익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그는 “괜찮다”고 하면서 옆에서 좌불안석인 정책홍보관리실장을 안심시켰다. 의외로 통이 큰 성격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몇가지 문제에 대해 홍보관리실장이 ‘제동’을 걸자 “이 얘긴 하고 싶어요” 하며 단호하게 물리쳤다. 가장 어려웠을 때가 언제였느냐는 물음에 장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없었어요. 낙천적인 성격이라서…. 내일 그만두더라도 내 생각이나 과제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유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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