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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7 18:14 수정 : 2005.05.17 18:14

“일 안 하니까 좋죠? 스트레스도 안 받고?” 간만에 통화한 20대 여자후배가 말했다. 싱글다운 소릴 싱글거리며 말하는 그 입을 쪽 찢어주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안 받아? 그 스트레스 만땅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이다. 몇 마디 말도 하기 전에 낮잠 자던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어딨어?” 5분 대기조, 울트라 퀵 서비스 엄마인 나는 얼른 달려갔다.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최근까지 하던 큰 일도 끝났다. 다음 일로 들어가려던 차에 딱 걸렸다. 애한테. 이사를 했고, 다섯살배기 아이가 새로 다닐 어린이집은 한달반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난 한달반짜리 전업주부가 됐다.

아이는 마냥 신기한지 묻고 또 물었다. “엄마 회사 안 가?” “안 가.” “엄마 일 안 해?” “안 해.” “회사 가는 엄마 미워.” “뭐?” “회사 안 가는 엄마 좋아.” “…” “엄마, 나 오늘 터전 가?” “안 가.” 마음은 짠했지만, 머릿속은 비명을 질렀다. ‘아악. 나, 돌아가시고 싶어.’

날마다 밤이면 파김치가 됐다. 일하다 파김치가 되면 기분은 좋았는데, 주부 생활하다 파김치가 되면 그냥 파김치였다. 아무도 먹지 않는 파김치, 그리고 돌탱이 파김치. 식물인간이 이런 기분일까?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꼼짝할 수 없는 기분. 견디다 못해 내가 말했다.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애 봐주는 사람을 찾아야겠어.” 그러자 남편이 조심스레 말했다. “어떤 베이비 시터는 애한테 수면제를 먹인대.” 할 말을 잃었다. 내 속에선 “어떤 엄마는 애한테 약 먹여 죽이고, 어떤 엄마는 애를 아파트 베란다에서 던진대. 애 대신 내가 13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꼴이라도 봐야 시원해?” 소리가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 대신 내가 말했다. “그럼 나한테 매일 2시간만 줘.” 남편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집에 있는 시간은 내가 애 볼게.” “말이 되는 소릴 해. 그게 될 거 같아? 그거 다 필요 없고, 딱 2시간만 달란 말야. 2시간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달라고.” 정말 그랬다. 바라건대, 2시간만이라도 입 좀 다물고 있고 싶고, “하지 마” “안돼” 소리 좀 안 하고 싶고, 애가 또 뭔 저지레를 할까 눈 벌겋게 돼 애만 바라보고 싶지 않고, 언제 본 지 기억도 안 나는 텔레비전도 보고 싶었다. 애가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었다. 제발 2시간만이라도.

하루는 애가 물었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 헉. 뭐가 되고 싶냐고? 문득 기쁨이 휘몰아쳤다. 아. 드디어 내가 다섯 살짜리와 고차원적 대화를 하는구나. 기특했다. 함박웃음을 짓고 내가 애한테 물었다. “이교는 뭐가 되고 싶어?” 애가 1초도 걸리지 않고 냉큼 대답했다. “공룡.” 할 말을 잃었다. 자기가 물은 거엔, 지 엄마가 대답하지 않은 걸 기억해낸 아이가 물었다. “엄만 뭐가 되고 싶어?” 내가 말했다. “응. 사람이 되고 싶어.”

조은미 불량품주부 coolhotc@hotmail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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