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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4 17:00 수정 : 2005.05.24 17:00

최차란씨가 장작가마 앞에서 장작불로 구워낸 투박한 막사발로 말차를 마시며 웃고 있다.


장작 가마로 옹기굽는 도예가 최차란씨

경북 경주시 마동 토함산 기슭에 자리한 새등이요. 화단 속에서, 또는 풀밭에서 나무와 풀과 함께 나란히 아무렇게나 놓인 도자기들이 먼저 맞는다.

도예가 최차란씨(79)는 계란을 품은 어미닭처럼 가마 속 불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있다. 가스 가마가 등장한 뒤 찾아보기 어려운 장작 가마다.

옹기장이 3대인 최씨가 되살려 지킨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이곳에서 가마에 불을 때는 것은 1년에 2~3차례 뿐이다. 가마터를 찾은 19일은 운 좋게도 새등이요가 불을 넣은 지 이틀째였다.

최씨가 녹차가루를 물에 탄 말차를 건넨다. 최씨는 경주다인회장. 그런데도 그가 건넨 차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차를 담은 막사발이다. 사발의 입은 틀어지고 피부는 거칠고 투박하다. 이것이 사발의 생명력일까. 뜨거운 불가마 앞에선 매끄러운 찻잔보다 이 투박한 사발이 입술에 스미는 감촉이 더욱 신선하다.

지금 자궁 속 같은 가마에서 이런 생명이 익어가고 있다. 4박5일 간 이 자궁은 최씨의 생명들을 잉태할 것이다. 암으로 자궁까지 도려낸 최씨에게 이 가마야말로 진정한 자궁이다.

▲ 반듯한 도자기들 사이에 당당히 전시돼
있는 엉겨붙은 사발들.

4박5일 활활 타오르는 불에서
태어난 ‘생명’
‘불량’이라고 깨뜨리다뇨?

태어난 아이가 못생기고
손발하나가 없으면
죽이고 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건 어미가 아니다

20대였던 한국전쟁 때 좌우 대립 과정에서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낸 데 이어 젖먹이 둘째딸까지 영양실조로 잃어 그의 가슴은 숯검정이 된 지 오래다. 여러 차례의 암 투병으로 한쪽 폐와 자궁까지 도려내 그의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1974년 이곳에 자리 잡은 뒤 희나리가 된 장작이 다시 타기 시작했다. 71년 도쿄박물관에서 일본의 국보인 조선의 막사발을 본 뒤였다. 이가 빠지면 개밥그릇으로나 쓰던 막사발이 어떻게 일본 최고 박물관에서 보물 중 보물이 된 것일까. 이 화두를 안고 삶을 불사른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 그는 일본인마저 경외하는 이가 되었다. 가마에는 한국에 도예 전시회를 열러왔던 우치다, 스츠키, 이쿠미 등 일본의 세청년이 이곳에 와 며칠째 최씨에게 가마에 불 때는 법을 배우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 가스 가마는 90% 이상 하자 없는 도자기가 나오지만 장작 가마는 일체를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기에 그릇은 틀어지고 눌어붙고 잡티가 박히기 일쑤다. 상품성 있는 도자기가 나올 확률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도예가들은 형태나 빛깔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품을 깨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면 태어난 아이가 못 생기고, 손발 하나가 없으면 죽이고 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건 어미가 아니다.”

창졸간에 젖먹이 둘째 아이를 보낸 최씨지만 이제 그렇게 허망하게 자식을 보내는 일은 없다. 단지 그릇을 깰 수 있는 것은 불에 들어가기 전이다. 즉 생명이 붙지 않아서 곧바로 여전히 흙의 상태일 때만이다.

“작품인 그릇은 무엇이고, 작품이 아닌 그릇은 무엇이지요? 좋은 인간은 뭐고, 나쁜 인간은 뭐지요?”

주관과 선입견은 가마 속에서 온전한 생명으로 녹아버렸다. 그에게 온전한 생명이 아닌 것은 없다.

“그릇은 뭔가를 담기 위한 것이지요. 쓰임새를 살펴보면 다 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게 마련이지요.” 샴쌍둥이처럼 여러 그릇이 엉겨 붙은 도자기들이 다른 청자와 함께 이곳 전시관엔 어엿이 놓여있다. 말차가 담긴 투박한 막사발, 깨진 엉덩이로 풀 숲에 앉아 화단의 장식품이 된 도자기가 하나같이 떳떳이 웃고 있다. 경주/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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