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주씨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밥상을 차린다. 이씨가 지난 2일 밤11시 자신의 가게 주방에서 정성껏 반찬을 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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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서 ‘주점’ 하는 이순주씨 이순주(42)씨는 ‘마음대로’ 산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세 개다. 그는 “밥집 주인”이다. 홍대앞의 주점 ‘하회마을’을 12년째 운영한다. 밥과 술과 안주를 팔지만 정작 그는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중학교 때부터 잠은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 그렇게 생활한지 20년이 훨씬 넘었다. 올해 들어서는 일이 많아 하루 1~2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그래도 멀쩡하다. 친구들은 그에게 ‘귀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8시간 이상 자고, 하루 세 끼를 먹는 것도 사람들이 마음 속에 만든 틀입니다.” 이씨는 굶기를 밥먹듯이 한다. 몸이 아프거나 집중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아예 단식을 한다. 1년에 7~8번은 곡기를 끊는다. 집이나 식당은 물론이고 지갑에도 단식 때 장청소에 쓰는 약이 들어있다. 그는 병도 마음으로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1월 그는 자궁에 근종이 생겼다. 3월이 되자 근종은 점점 자라 손으로 만져질 정도가 됐고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병은 몸에 대한 경고나 무엇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병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20여 일간 단식과 몸에 마음을 쏟은 결과 지금은 근종이 사라졌다. 그가 먹고 자는 일에 ‘소홀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텔레비전을 보면서 받았던 충격 때문이다. “슬픈 일을 당한 주인공이 때가 되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먹었어요. 인간의 처지가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씨는 “마음 속에 먹고 자는 데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공부든 놀기든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몰두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빨대’다. 빨대 구멍으로 세상을 보듯 집중한다는 뜻이다. 2003년 여름에는 40일 동안 단식을 했다. 나이 마흔. 이유없이 살아온 삶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나가 있음을 알게 됐고 고요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이뻐보였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밥과 술을 판다고 ‘밥집주인’…하루에 2시간만 잔다고 ‘귀신’
일에 미친듯 빠진다고 ‘빨대’ …별명이 세 개예요
돈도 마음도 풀어 놓으니 이젠 ‘바다’ 라고 부르네요 그는 압력 솥, 냄비, 프라이팬 등 주방의 물건을 사람처럼 대한다. “한번도 물건으로 여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압력 솥이 터져서 주방이 난장판이 되면 그는 압력 밥솥에게 “왜 또 삐졌어?”라고 말을 건넨다. “마음이 통해서 그런지 한 달에 한 두번 압력 밥솥이 터지지만 한번도 다친 적이 없다”. 음식도 마음을 담아 만든다. 먹는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라며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든다. 그의 대표 요리는 닭 매운탕. 닭과 야채만으로 만드는 이 요리는 조류 독감으로 닭값이 1만5천원까지 뛰는 등 재료 값만 2만원이 훨씬 넘게 들 때도 원래 가격 1만4천원에 손해를 보면서 팔았다. 그래서 그의 식당에는 단골이 많다. 그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다. 88년 졸업 뒤 전공을 살려 옷장사를 했지만 결혼 뒤 임신을 하면서 옷에서 나는 화학약품 냄새가 태아에게 해로울 것 같아 그만뒀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밥장사”를 시작했다. 하필 식당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들에게 밥을 해먹이고 싶었다”. 그는 돈 버는 재주가 있다. 옷장사때처럼 식당을 하면서도 큰 돈을 만졌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그렇게 번 돈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대박집’으로 방송에 소개될 정도지만 그는 여전히 월세 50만원짜리 단독주택에서 산다. “돈은 더 필요한 사람이 가져다 쓰는 것입니다. 200만원이 어떤 사람에게는 하룻밤 술값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임신한 아내를 위해 칼을 들고 담을 넘게 만들 정도의 절박한 돈입니다.” 이달에도 동생이 사고를 내서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친구에게 1천만원을,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여동생”이 신용불량자가 되면 회사에서 쫓겨난다는 얘기를 듣고 500만원을 만들어 부쳤다. “그렇게 쓰려고 빌린 돈은 벌어서 곧 갚게 되더라구요.” 이씨는 외할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젊어서 과부가 된 뒤 그를 외가에 맡기고 일을 다녔다. 외할머니는 무속인이었다. 갑부집 딸이라 돈은 아쉽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쓰신 분”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주고, 사람들의 병을 고쳐줬다. “주인의 안타까운 마음을 느껴보면 소가 어디에 있는 지 알게 되지.” 외손주의 물음에 답하던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그는 지금도 기억한다. 외할머니는 죽는 날을 미리 알았고, 앉은 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그런 경험으로 그도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위해 마음을 많이 낸다. 친구들의 고민을 자기 일처럼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도 해준다. 그의 기도는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며 배운 절이다. 친구들은 요즈음 그를 ‘바다’라고 부른다. 찾아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누구든지 마다않고 넉넉한 품으로 받아준다고 해서 지어준 별명이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그림은 처음 그렸는데 전시회 하자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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