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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4 16:49 수정 : 2005.06.14 16:49



“미치지 않고서야 제대로 살 수 있나

박영숙(65)씨. 80년대부터 일찌감치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아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사진을 찍어온 이다. 여성단체 ‘또 하나의 문화’와 ‘여성문화예술기획’ 등에서 활동한 페미니즘 문화운동계의 1세대이기도 하다.

그가 요즘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특이한 이름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미친년 프로젝트 2005’. 전시실에 걸린 사진은 6년간 매달려온 ‘미친년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다. 박씨가 1999년 여성미술제부터 시작한 ‘미친년 프로젝트’는 사회적 억압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미친년’들의 내면과 삶을 앵글에 담는 작업이었다. 그의 작품에 대해 미술비평가 백지숙씨는 “이런 ‘좆같은’ 세상에서 여성이 멀쩡한 정신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19일부터 열리는 세계여성학대회와 때를 맞춰 문을 연 이번 전시는 ‘미친년’이 주는 유혹과 해방의 이미지를 함께 담았다. 전시회장 1층에 선보인 작품들은 비교적 최근 작들로 꽃과 ‘미친년’들의 모습이 어우러졌다. 담장 밖으로 핀 복숭아꽃을 잡고 담장 안을 슬쩍 넘겨다보는 중년 여성, 진달래가 만발한 들판에 서서 넋나간 듯 웃고 있는 여성, 목련꽃잎이 흐드러지게 떨어진 땅에 누워 허공을 응시하는 여성. 이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있는, 폭발하기 일보직전인 열정과 생명력을 어렴풋이 보여준다.

“꽃이 여자를 미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봤어요. 꽃은 유혹이고, 본질적으로 생명을 잉태하는 상징입니다. 유혹은 대개 부정적 이미지가 담겨있기 마련인데 저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었어요.”

2층에 전시된 작품들에는 ‘내 안의 마녀’란 제목을 달았다. 페미니스트 신학자 현경 교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출연했던 배우 김지숙·예지원·서주희씨가 ‘마녀성’을 상징하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그의 카메라 앞에 섰다. 여성이 가진 ‘기, 끼, 깡’의 상징인 그들은 현실에서도 자신의 욕망과 열정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왔다.

욕망따라 사는 ‘마녀들’사회적 억압 맞서다 뭇매
숨막히는 가부장제 육망 거세당한 일상

폭발 직전 열정적 시선…
정신 놓아버린 무심한 시선
섬세한 카메라로 위무

진정 자유로워진 여성
미래 딸들에게 숙제로

“중세 유럽에서 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는 얘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똑똑하고 현명하고 지혜를 가진 여성들이 죽음을 당했던 거죠. 여성들에게는 ‘영매기질’이 있는 셈인데 저는 그것을 ‘여신성’ 또는 ‘마녀성’이라 부릅니다.”

3층에 전시한 작품들에선 생활 속에서 욕망이 거세된 여성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충격적이면서도 사실감있게 다가온다. 섬세한 눈길로 잡아낸 흐트러진 집안 풍경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시스템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전에서 관람객들은 서사와 함께 삶의 통찰을 읽어낼 수 있다. 베개를 껴안고 서있는 여성의 모습을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에서 사람들은 그를 억압한 가부장 문화를 함께 떠올린다. 자신에게 주어진 폭력을 방관했던 세상을 향해, 세상이 자신에게 그랬듯 ‘미친년’은 무심한 시선을 던진다. 이혼과 더불어 빼앗긴 아이를 잊지 못해 정신을 놓아버린 젊은 여성의 사진은 옛날 꽃방망이를 들고 동네 뒷산에서 나타나 길가는 이들을 소스라치게 놀래키던 ‘미친년들’이 우리 주위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도처에 은밀히 숨어있는 ‘미친년들’은 그의 사진 속에서 비로소 살아나 모습을 드러낸다.

“억압을 만들어낸 사회 구조에 반기를 들고 ‘미친년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것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입니다. 이를 통해 여성들의 내면에 쌓여있는 억겁의 기억들, 그리고 이야기들의 타래를 풀어내보고 싶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억압과 분노를 뛰어넘어 내면을 비워냄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진 여성의 이미지를 이 작품전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작업은 후세에게 그가 남겨주고 싶은 숙제일는지도 모른다. “미래의 딸들이 이어갈 이야기에는 밝고 명랑한 이야기만이 담겨지기를 기대한다”고 박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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