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경공업 위주 정책으로 손빠르고 값싼 노동력이 필요할때 여성 노동자들은 착취에 착취를 당했다.” 지난 14일 미국 사회락회가 주는 ‘2005 최고의 책’ 상을 수상한 전순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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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사회학회 ‘2005 최고의 책’ 에 선정 국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가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참여성노동복지터 전순옥(51) 대표가 쓴 책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한겨레신문사·원제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가 지난 14일 미국 사회학회가 주는 ‘2005 최고의 책’상인 ‘명예로운 노동사회학 서적’으로 선정됐다. 이 책은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에서 발간된 노동사회학 분야 책을 추린 후보작 46권 가운데 2번째 주목할 만한 저작으로 손꼽혔다. “지난날 여성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노동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은 이루어질 수 없었어요. 사회 민주화 과정 속에서 민주노조 운동에 미친 여성노동자들의 활동도 인정받지 못했죠. 여성노동자들이 재평가돼야 했습니다.” 70년대 한국 여성노동운동과 민주노조 운동을 다룬 이 책은 지난 2001년 영국 워릭 대학에 제출한 전 대표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심사위원들에게 ‘최고의 논문’이란 찬사를 들으며 그들의 추천으로 책을 펴낸 영국 사회과학서적 출판사 애쉬게이트는 이번에 미국 사회학회의 권유로 다시 한번 책을 출간했다. 그의 수상은 오빠인 고 전태일이 평화시장, 통일상가, 동화시장의 고용실태에 관한 “고생스러운 조사”에 착수한 지 35년만의 일이다. 당시 전태일은 위 세 군데의 시장에서 일하는 고용인 총수가 2만68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70년 노동청 연례보고서는 각 공장이 법정 최고인원인 16명의 고용인원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 전태일의 조사는 이보다 3배가 넘는 노동자들이 좁은 공장 안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오빠 전태일이 그랬던 것처럼, 전 대표 역시 정부가 발표하는 고용통계를 믿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통계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조사자의 의도가 담긴 통계는 실상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는 논문을 쓸 때처럼, 지금 벌이고 있는 창신동 고용실태조사에서도 직접 면접과 집중 인터뷰 방식을 주로 쓰고 있다. 현장 조사 때문에 40대의 나이로 현장에 직접 들어가 다시 봉제일을 하기도 했다. 동생뻘인 여성노동자들이 비인간적 노동상황에 시달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실태조사를 시작한 오빠의 작업을 동생이 완성한 것이 아니냐고 묻자 전 대표는 “완성은 아닐지라도 재조명의 기회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끝나지 않은 시다의 오래> 에 실린 70년대 여성 노동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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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전 오빠 전태일 뜻 이어 발로 뛰며 힘든 실상 전할터” “70년대 경공업 위주 정책에서 손빠르고 값싼 노동력이 필요할 때 여성노동자들은 착취에 착취를 당했어요. 지금도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여전히 파트타임 노동자로, 비정규직으로 노동조합원이 되지도 못한 채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날 노동조합의 구실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노조가 이익집단화, 귀족화할 때 정부에 노동자 탄압의 빌미를 주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며 “노동조합은 기득권을 버리고 약자들을 대변한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뼈아픈 충고도 잊지 않았다. 몇 년에 걸친 여성노동자들의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복지문제를 고민하던 전 대표는 2년 전부터 참여성노동복지센터 부설 방과후 공부방 ‘참 신나는 학교’를 열고 월요일마다 직접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왔다. 창신동 봉제공장에 다니는 여성노동자 아이들이 수혜자인 복지사업이다.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45명. 월 5000원에서 2만원씩 받고 있지만 2만원을 내고 있는 부모들은 그나마 두어 집 정도에 불과하다. 한부모 가정 아이들 같은 빈곤가정 아이들이 많아 모자라는 운영비는 후원금으로 메우고 있다. “아이들 가운데 20%가 한부모가정 아이들이에요. 폭력적이고 알콜중독인데다, 모은 돈을 한꺼번에 날리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 여성 가장이 대부분이지요. 남편과 같이 살면 아이를 키울 수도 없거든요. 그런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의료, 교육, 거주 시스템이 절실하죠.” 그는 앞으로도 영세사업장의 여성노동자들을 집중 인터뷰해 이들의 실상을 바깥에 알릴 생각이다. 이제는 40대가 된 70년대 경제성장의 주역들이 여전히 하루 15~16시간씩 일을 하면서 부르는 ‘시다의 노래’가 끝나지 않는 한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가’로서 그의 구실도 계속될 것이다.(후원계좌: 국민은행 031637-04-00170, 예금주 참여성노동복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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