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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0 17:35 수정 : 2005.09.21 14:04

■ 4박5일 북한 여성삶 둘러보니

결혼·출산 당연, 이혼은 수치…세쌍둥이는 국가적 경사
다양한 탁아소 여성활동 지원

북쪽 여성들 역시 남쪽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훌륭한 어머니가 되고, 직장에서는 성실한 노동자로 일해야 하는 이중의 짐을 지고 있었다. 사진은 평양 수예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북쪽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지난 10~14일 평양과 묘향산 등지에서 열린 ‘2005 남북여성통일행사’(이하 남북여성행사). 남쪽 100여 명, 북쪽 300여 명이 참가한, 분단 이후 가장 큰 여성행사지만 “여성이 통일에 기여하자”는 공동합의문을 발표한 것 말곤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잡히지 않아 아쉬움을 줬다. 남과 북 여성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힌 건 남북의 공동합의문도, 무표정한 악수도 아니었다. 아이들이었다. 지난 13일, 평양 모란봉 제1중학교를 나올 때였다. 학교 참관 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남쪽 여성들에게 손을 흔들자 눈물 바람이 확, 번지기 시작했다. 남쪽 여성들의 눈물은 금세 북쪽 여성들에게 전염됐다. 창광유치원에서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웃음, 눈물, 까닭 모를 탄식은 4박5일 내내 일행을 따라다녔다. 북쪽 표현대로라면 ‘어머니 마음’이고, 남쪽에 따르면 ‘배려와 돌봄에 익숙한 여성의 심성’때문이었을 것이다. 남과 북 여성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협곡을 메울 것은 오직 시간인 듯 싶었다. 남쪽 여성들은 잠시나마 북쪽 여성들의 삶과 생각을 알고 이해하게 된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조명애는 없다= “조명애가 누구입니까?” 북쪽 여성 그 누구도 단박에 조명애를 알지 못했다. “남쪽에서 인기 많은 북쪽 무용수”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그제야 “아~”하는 이가 몇 있었을 뿐이다. 실지로 북쪽에서 선망하는 여성은 조명애가 아니었다. 그들이 첫 손에 꼽는 닮고 싶은 여성들로는 “아이들을 많이 기른 ‘모성 영웅’”이 있었고, 북쪽 여성의 기상을 전 세계에 알린 “유도선수 계순희”가 있었고, “일 솜씨가 좋은 여성들에게 붙이는 별명인 ‘준마 처녀’”가 있었다. 이상적인 여성상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났다. 여성은 대개 “여자는 세찬 데가 있어야 한다”고 한 반면, 남성은 “여자는 숭이 세면(기가 세면) 안 되고, 마음이 고와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의 임무= 나이가 차면 ‘준마 처녀’도 시집을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은 가정의 세포이고, 가정은 또 사회의 세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이기적인 사람”이란 놀림을 받았다. 조선민주여성동맹 박순희 위원장을 비롯한 북쪽 여성들은 특히 어머니 역할을 여러 번 강조했다. 33명의 고아들을 데려다 길러 유명해진 ‘모성 영웅’ 서혜숙씨는 “시집 가서 아이 잘 낳고, 자식 많이 낳는 게 여자의 본분”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은 남북여성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숙제’인 셈이었다. 반면, 이혼은 남쪽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김경옥 여맹 부위원장은 “이혼을 수치로 생각하며 부모도 승인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저출산 고령화 위기 경계= 여성전문병원인 평양 산원 관계자는 “북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면, 여맹의 한 관계자는 “아이를 한 명에서 두 명 정도 낳으려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북쪽의 출산율 추이를 정확하게 알 길을 없었지만 아이를 적게 낳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북쪽 여성들이 “아이를 1~2명 낳는 것은 국가발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국가에서 아이들의 교육비를 부담하는 의무교육 기간이 11년(유치원 1년,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이나 되는데, 아이를 안 낳는 것은 이기심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이상적인 아이의 수는 3~4명. 한 20대 북쪽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으면 고령화, 인구 고갈상태에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해 그 곳 역시 고령화 위기를 경계하고 있음을 전했다.

출산과 육아, 사회의 몫= 평균 초산 연령은 2003년 남쪽 통계청이 28살이라고 보고한 것보다 다소 낮아보였다. 여성전문병원인 평양산원의 신예수 고려부인과 부원장은 “보통 24~26살 때 첫 아이를 낳는다”고 일러주었다. 특히 세쌍둥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비교적 높아 세쌍둥이를 낳을 때 헬기나 비행기가 산모를 병원까지 데려오는 ‘특혜’를 준다고 했다.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국가적 경사”로 인정하는 한편, 옷감과 영양식품, 금반지 등이 주어지며 양육비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탁아소는 일탁아소(일탁), 주탁아소(주탁), 월탁아소(월탁)가 분리돼 있다. 800여 명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평양 창광유치원(주탁)의 교원은 150여명. 류진숙 원장은 “교원은 3년제 사범교육을 받은 교원대 졸업자들로, 8시간씩 3교대로 일한다”며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보장하려고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평양/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뼈에 가죽붙은 아이들 살리려 피 3번 뽑아”

고아 33명 키운 ‘모성영웅’ 서혜숙씨

만경대 기념품공장 강사 서혜숙(48)씨는 지난해 12월 ‘모성영웅’칭호를 받은 북한 사회의 ‘유명인사’다. 지난 13일 ‘2005 남북여성통일행사’ 만찬장인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 연회장에서 그를 만나 30여분 동안 얘기를 나눴다. 그는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고아 33명을 데려다 키워 ‘영웅’의 칭호를 받았다”고 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가방 속에서 사진을 꺼내보여주며 자식 자랑부터 했다.

“맏딸은 32살입니다. 결혼해 5살짜리 아이를 낳았습니다. 제가 벌써 할머니가 됐습니다. 막내는 9살입니다. 소학교 3학년인데 얼마나 예쁘고 착한지 모릅니다.”

아이들 입양 동기는 “1992년 평양시 한 유아원에 들렀다가 고아를 데려다 키우면 국가가 소학교(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얘기를 듣고부터”였다고 했다. 아이들 이름을 붙일 때 통일의 염원을 담아 ‘조국통일’(조숙이, 국일이, 통일이, 일심이)로 짓기도 했단다.

“먹을 것, 마실 것, 신을 것이 없었을 때보다 더 힘들었을 때는 아이들을 엄마 마음처럼 좋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라면 집을 뛰쳐나가 며칠씩 안 들어왔습니다. 무척 속이 상했습니다.”

특히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를 데려왔을 때는 마음 고생이 무척 심했다고 했다. 그는 “엄마 젖을 잘 못 먹어 뼈에 가죽이 붙은 것 같은 아이들을 데려와 아이들이 정말 잘 못 되는 줄 알았다”면서 “아이들을 살리려고 내 피를 3번이나 뽑아 아이들을 줘서 살린 뒤에 소학교에 들어갔을 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는 친근하지만 엄격한 엄마라고 했다. 머리가 굵어 아이들이 대들면 어쩔 수 없이 매도 든다고 했다.

“친 엄마도 아닌데 왜 남의 자식을 때리느냐고 대들면 ‘너희는 내 자식이다’라고 호통을 칩니다. 꼬맹이들은 대부분 제가 친엄마인 줄 압니다. 큰 아이들이 ‘엄마는 니 엄마가 아니다’고 하면, 제가 ‘아니다 나는 네 친엄마다’ 그럽니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다 알게 된단 말입니다.”

군대에 간 아이들과 결혼한 자식을 뺀 나머지 19명의 아이들과 방 4칸짜리 집에서 살고 있는 그는 조만간 2층 집을 지어 이사할 예정이라며 “꼭 다시 북을 방문해 집에 한번 오라”고 말했다. 평양/글·사진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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