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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0 17:44 수정 : 2005.09.21 14:04

텔레비전 드라마 속 부인들은 ‘시누이’를 ‘고모’라 하고 ‘시동생’을 ‘삼촌’이라 부른다. 아이들의 고모이며 삼촌이지만 그냥 고모와 삼촌이라고 불러댄다. ‘아가씨’와 ‘도련님’이라는 공식 호칭은 이미 실종했거나 사라지고 있다. 이건 텔레비전 밖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왜 일까? 손아래 가족 구성원들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시댁 식구라는 이유 만으로 꼬박꼬박 높임 호칭으로 불러야 하는 불편 내지는 아니꼬움을 모면하려는 편법일 것이다. 이는 손아래 처가 식구들을 ‘처남’, ‘처제’로 부르며 편하게 반높임말이나 반말을 쓰는 남편 쪽의 언어습관과 명백한 비대칭 관계를 이룬다.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결혼 제도 내부의 호칭 체계야말로 대한민국 가부장제도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일등 공신인 것 같다.

이미 20년도 더 지난 옛날 이야기 한 토막. 나이 서른에 결혼한 내가 결혼 후 방문한 시댁에서 첫날 벼락처럼 다가온 생각, ‘결혼은 미친 짓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 시누이까지 다섯 시누이가 모두 손아래였고 나이 또한 나보다 아래였다. 그들을 ‘아가씨’로 불러야 하는 것, 그리고 존댓말을 써야 하는 것이 내가 맡은 새로운 배역, 며느리의 도리였다. 결혼이 여성의 신분을 하향조정하는 정교한 장치들을 내장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폭발했다. 눈을 질끈 감고 그들 모두를 이름으로 불러제낀 나 때문에 시댁 식구들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들까지 모두 얼굴이 노래졌다. 내가 감행한 도발은 경상도 작은 마을 한 평화로운 가문에 폭탄을 던진 거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나의 평판은 “배운 게 없는 서울 며느리”로 정리되었다. 시어머니는 ‘시댁을 우습게 아는 서울 며느리’를 들였다는 이유로 온동네의 비웃음과 동정을 한 몸에 받게 되셨다. 그 뿐 아니라 나의 일방주의를 이해하고 수용하느라 혼자 속을 무던히 썩이셨을 터. 다섯 시누이들 모두 조금씩 불편한 마음을 삭히며 ‘새언니’인 내게 적응하느라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시댁 식구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걸 마다할 며느리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처갓댁 식구들에게도 합당한 예를 표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전통이 모두 미풍양속은 아니고, 한국의 결혼제도에서 호칭은 재조정되어야 한다. 결혼한 남성이 손아래 처남이나 처제에게 반존댓말이나 반말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여성도 손아래 시누이와 시동생에게 반존댓말이나 반말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불평등한 호칭체계를 바로잡는 일은 여성을 주눅들게 하고 순치시키려는 가부장제의 은밀한 음모를 뛰어넘는 일이다. 결혼은 상호존중에 기반한 사랑의 계약이므로.

박어진/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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