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주옥(왼쪽에서 두 번째)씨는 빈그릇 운동을 시작한 뒤 음식물쓰레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게 됐고 생활비도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다. 세상에 ‘쓰레기’는 없다고 믿는 이들 가족은 빈그절약한 돈으로 북한 어린이 등 지구촌의 가난한 이웃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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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도 필요없고 생활비도 줄어 아낀돈으로 북한어린이 도우니
빈그릇으로 이웃을 돌아본다 길주옥(49·여)씨 가족의 밥상은 여느 집과 다르다. 길씨는 “빈그릇 운동을 시작한 뒤 생활 방식은 물론 가족들의 가치관도 환경과 가난한 이웃을 함께 생각하는 쪽으로 크게 바뀌었다”고 자랑한다. 빈그릇 운동은 수행공동체 정토회가 시작한 것으로 음식 남기지 않기가 그 뼈대다. 3일 오전 8시30분 서울 금천구 시흥2동 벽산아파트 505동 604호. 길씨 집은 공휴일이라 여유로워 보인다. 막내인 정훈(14)이는 여유있게 아침잠을 즐기다 아버지 양성운(53)씨가 깨우자 마지못해 일어났다. 9시쯤 양씨 부자와 큰 딸 지혜(22) 둘째 딸 종혜(18)는 아침을 먹으러 주방 바로 옆 마루로 모였다. 그런데 밥상 위에는 수저통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밥과 반찬은 저기 차려져 있어요.” 길씨가 싱크대를 가리킨다. 그곳에는 밥통과 김치, 고추 간장장아찌, 고들배기 등이 담긴 반찬 그릇이 줄지어 놓여 있다. 양씨와 아이들은 큰 접시에 밥과 반찬을 함께 담아 밥상에 둘러 앉았다. 길씨는 갈비탕을 국그릇에 담아 나눠줬다. “아빠가 어제 해놓은 밥인데 맛있어요. 우리 아빠 밥 잘하네.” 종혜가 아버지를 칭찬한다. 20분쯤 지나자 모두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양씨는 숭늉을 부어, 아이들은 물을 부어 접시를 닦은 뒤 그 물을 마셨다. 접시는 설겆이를 한 듯 깨끗하다. 음식물 쓰레기도 전혀 남지 않았다. 길씨 가족은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쓰지 않은 지 오래됐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고,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미나리나 오이 등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상자째 사오셨어요. 냉장고에도 음식이 그득그득 했구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지셨어요.” 큰 딸 지혜가 길씨의 ‘과거’를 말했다. 2003년 9월 빈그릇 운동을 시작한 뒤 길씨의 ‘주방 경영’은 크게 바뀌었다. 장보기에 앞서 필요한 물건을 미리 적어서 간다. 그는 장을 보러 갈 때면 과일용, 야채용, 생선 등 물기있는 찬거리용 등 4종류의 장바구니와 보자기가 든 ‘망주머니’를 늘 가져간다. 비닐을 쓰지 않기 위해서다. 음식도 먹을 만큼만 준비한다. 1주일에 한번씩 냉장고 안에 남은 재료를 모아 특별한 요리를 만든다. 고춧잎, 무말랭이, 깻잎, 김치, 양파 등을 한데 넣어 만든 모듬전과 밥에다 치즈 가루를 얹은 치즈밥은 가족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물론 요리를 하다보면 음식물쓰레기가 없을 수는 없다. 야채를 다듬고 남은 부분이나 과일 속 등은 베란다에 있는 지렁이 화분이 처리한다. 길씨 가족들은 화분 두 개에 깔끔이와 말끔이란 이름도 지었다. 세제도 쌀뜨물과 국수나 나물을 삶고 남은 물을 쓴다. 또 집에 온 우편물 가운데 이면지로 쓸 수 있는 것을 모아 메모지로 쓴다. 그렇게 사니 씀씀이도 크게 줄었다. 하루에 5천원꼴로 들던 식비는 1/3 수준으로 줄었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아이들도 절약이 몸에 배어 옷은 거의 사지 않고 군것질 거리도 사들이지 않는다. 식비를 제외한 생활비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우개를 살 때도 300원짜리 대신 200원짜리를 사서 아껴 써요.” 둘째 딸 종혜의 말이다. 길씨 가족은 그렇게 절약해 모은 돈을 북한 어린이 등을 돕는 데 보낸다. 가족 모두 돼지저금통을 하나씩 갖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하다보니 오히려 일이 줄어든 것 같아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서 시작한 빈그릇 운동을 통해 환경은 물론 지구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가족 생활도 행복해졌구요.”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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