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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1 12:02 수정 : 2005.10.11 17:13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왼쪽에서 두번째) 등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지난 4월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보육의 공공성 강화와 무상보육 실현을 위한 특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황석주 기자

임산부들에게 들어본 정부 대책의 체감온도


“말로만 저출산 대책이예요. 마음에 와닿는 것은 하나도 없죠. 기대가 깨져버린 지금은 바라는 것도 없어요. 저출산 대책이라고 나오는 것 그냥 무시해 버려요.”(서울시 구로구 김아무개·31)

저출산 대책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해찬 총리는 10일 ‘임산부의 날’을 맞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부처가 출산장려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한덕수 부총리도 가세했다. 한 부총리는 출산지원 목적세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도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무주택 가정에 국민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등 저출산 대책을 크게 강화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부 내용을 보면, 0~4살 저소득층 아동의 보육료 지원대상을 현행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60%에서 2009년 130%까지 늘리고, 취학 전 5살어린이 무상교육 및 지원대상도 평균소득 80%에서 13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또 두 자녀 이상 가정의 경우 둘째에 대한 보육료 지원을 확대하고, 두 자녀 이상이 대학생일 때는 학자금 대출을 허용하며, 자녀가 3명 이상인 무주택 가정에 대해서는 국민임대주택 특별공급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또 시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유아 민간보육시설에 대해 2010년까지 국·공립 보육시설 수준으로 지원하고 육아휴직제도 활성화를 위해 대체인력 채용 장려금의 지원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육아휴직 장려금도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 애 낳지 않는 사회, ‘경제적 이유’가 본질적

출산으로 지불해야 할 대가 지급해야


그러나 정작 수혜대상인 여성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부의 대책을 별 실효없는 선심성 공약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정부가 올해부터 지급하기로 했던 20만원의 출산장려금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무기한 연기된 전례가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6월3일 펴낸 ‘인구구조 고령화의 경제적 영향과 대응과제’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정부의 출산지원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경수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저출산 현상은 25∼29살 여성의 급격한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와 출산에 따른 기회비용(출산으로 지불해야 할 대가) 증가에 기인하지만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다른 분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효과가 떨어진다”고 분석, 정부대책이 ‘빛 좋은 개살구’라고 지적했다.

“셋째 낳으면 공공임대주택 우선입주권을 준다고요? 출산시 장려금을 주고, 보육시설 비용을 전부 지원해 준다죠? 좋다고요. 그런데 요즘 누가 셋째 낳아요? 대부분 둘째까지 낳고 말지요. 코딱지만한 지원금 받으려고 셋째까지 낳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아이 두명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요. 만약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양육비가 지원되면 셋이고 넷이고 낳겠어요.”(경기도 부천시 박아무개씨·30)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박씨의 경우처럼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크다. 임신-출산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수백만원에 달하고, 출산 후 육아(기저귀, 분유값 등)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만약 맞벌이 부부라면, 0~1살의 영아를 보육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에 맡겨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수십만~백만원에 달하는 양육비를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출산휴가 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마음고생을 했다는 이아무개(32)는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떠나 1살 미만의 영아를 맡아주는 곳이 거의 없었다. 24시간 어린이집 역시 2살 미만은 해당이 안됐다”며 “결국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맡겼는데, 한달에 70만원을 준다”며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구로구의 김아무개씨 역시 “보육시설 확대나 세금 및 세액 공제 같은 정책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어차피 정책만 남발해 놓고, 결국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폐기할 것 아니냐. 그동안 정부가 외쳤던 보육시설 확대만 해도, 시민단체 발표를 보니까 국공립이 아니라 민간만 늘었더라”며 “지금 당장 필요한 보육비, 기저귀나 분유값, 예방접종 및 병원비 등 현실적인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지난 4월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가 기자회견을 열어 아동의 사회적 보호와 일자리 확충을 위한 보육공공성 확대 전국공동행동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셋째아이 육아 지원…사실상 유명무실

지난 1월 한국여성개발원이 낸 연구보고서는 이러한 여성들의 ‘항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이 ‘경제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 것이다. 당시 한국여성개발원은 ‘저출산 시대 여성과 국가대응전략’ 설문조사 결과, 여성들은 저출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을 묻는 질문에 ‘경제위기로 인해 기혼 남녀의 취업 및 직업이 불안정하기 때문’(21.0%), ‘자녀양육비 부담 때문’(19.7%), ‘자녀를 교육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15.8%) 등을 꼽아, 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주로 경제적인 문제에서 찾고 있었다. 기혼자들 역시 향후 출산할 의사가 없는 이유로 가장 많은 비율(28.0%)이 ‘자녀 교육비가 부담스러워서’라고 답했고, ‘경제력이 없어서’(27.8%), ‘양육비가 부담스러워서’(13.3%) 등 경제적 이유 때문에 여러 명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봐도, 결혼 후 1~2명의 아이를 낳겠다는 응답이 대부분을 이룬다.

그러나 정부나 각 지자체의 저출산 대책은 셋째 아이 보육비 지원이나 출산비 지원, 세금감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98년 1월 이후 출생한 6세 이하의 직계비속이 있는 모든 근로자와 사업자는 1인당 연 100만원의 자녀양육비 공제받도록 했다. 또 영유아에 대한 추가공제와 교육비 공제를 중복해서 받을 수 있으며,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원하는 출산·보육수당에 대한 소득세도 월 10만원 한도 안에서 비과세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이 1명 내지 2명의 아이를 낳는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지금 첫아이가 9개월이고, 조만간 일자리를 찾을 겁니다. 그동안 마이너스 통장 잔고만 늘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요. 둘째는 낳지 않을 생각이예요. 제 주변에도 두명 이상의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셋째 낳으면 보육비 전액을 지원해 준다고요? 당장 둘째 아이 보육비가 걱정인데, 셋째 아이 보육비 지원받자고 무작정 낳을 수는 없어요.” (서울 장충동 안아무개·30)

안씨는 셋째 아이에 대한 지원 확대보다 첫째나 둘째 아이 양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주문했다. 그는“출산시 출산장려금 지급이나 가족수당을 비롯한 첫째아이 양육비 지원의 확대, 예방접종 등 소아에 대한 의료보험 확대, 분유나 기저귀값 지원 등 경제적인 지원만 있으면 둘째가 아니라 셋째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세제지원보다 실질적 경제지원 해달라” 이구동성

잡링크가 지난 8월 20~40대 남녀 10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8.4%가 양육비가 지원되면 아이를 낳겠다고 답했다. 보통이라고 답한 34.6%를 포함하면 73%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많은 여성들은 안씨의 경우처럼 경제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아이를 낳겠다고 밝히고 있다.

5개월 된 딸을 두고 있는 김아무개씨의 육아비용을 들여다 보자. 한달 50만원의 양육비, 분유와 기저귀값 10만원, 예방접종 등 기타 10만원 등 최소 70만원이 들어간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어린이집이나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려 했으나 0~1살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고, 대기자가 밀려 들어갈 수 없었다. 한달에 한두번꼴로 맞는 예방접종의 경우도 간염, 디피티 등 일부만 보건소에서 무료로 놓아주지만, 뇌수막염이나 폐구균 등은 일반 소아과에서 14만원까지 들여야 했다.

신생아실 전경. 강서미즈메디병원 제공.

그는 “비싼 분유값과 기저귀값 지원은 고사하고, 예방접종도 무료로 놓아주지 않는다”며 “세액감면이나 세금감면보다 더 시급한 것은 실질적인 경제지원”이라고 말한다. 그는 “보육시설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고 하지만, 갓난애들의 경우 맡아주는 곳이 없어 대부분 친지나 이웃에게 맡긴다”며 “자녀양육비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가정에 직접 현금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구로구의 전업주부 이아무개(32)씨 역시 “아이 옷은 아는 집에서 얻어다 입고, 아이의 건강 외에 분유나 기저귀값을 아끼기 위해 모유를 먹이고, 천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이 직장생활하는 점을 감안하면, 맞벌이 부부들은 분유나 기저귀값 부담이 클 것”이라며 육아비 개념의 가족수당을 늘려달라고 주문했다.

◇ 육아휴직 당연시하고, 육아휴직 급여 확대해야

정부의 이번 저출산 대책에는 육아휴직 문제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육아휴직제도 활성화를 위해 대체인력 채용 장려금의 지원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육아휴직 장려금도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데, 정작 당사자들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도 회사나 직장동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직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월 중앙고용정보원의 분석결과를 보면, 2003년 출산해 같은 해 출산전후 휴가를 사용한 근로자는 3만4천841명이며, 이 중 지난해 말까지 육아휴직을 쓴 근로자는 전체의 22.7%인 7천912명이었다. 출산휴가를 쓴 여성 중 육아휴직을 한 경우가 5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서울디지털대 황인태 교수가 기혼 직장여성 83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1.0%가 ‘육아휴직제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51.4%는 ‘회사에서 육아휴직제를 쓸 수 없다’고 대답해 이 제도가 기혼 직장여성들에게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다섯살된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는 배아무개(31)씨는 “육아휴직 비용 확대는 환영할만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여성이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분위기 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출산휴가처럼 육아휴직이 당연시되는 사회-기업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하며, 제도적으로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계안, 이경숙, 김현미, 이인영 의원 등 우리당 ‘육아지원정책기획단’ 소속 의원들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영유아 보육료·교육료 지원대상을 중산층 이상까지 확대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기본보조금 지원 ▲민간자본 참여뒤 정부 임대 방식의 육아지원시설 확충 ▲현재 40만원 정액으로 지원되는 육아휴직급여를 임금대비 비율로 적용 지원 ▲맞벌이부부 보육료 지원 ▲양육을 원하는 미혼모에 대한 정부 지원 ▲농어촌 지역 특성에 맞는 육아지원 정책 등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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