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제1회 국제결혼여성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여성들이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격려사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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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1세대들 처음으로 모여 혼렬인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수정돼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사회의 결혼 가운데 11%는 국제결혼이고, 다른 나라 사람과 결혼해 외국에 사는 한인 여성들만 해도 30만명을 헤아린다. 1947년 최초로 국제결혼을 한 한인여성이 태평양을 건너간 지 꼬박 반세기만의 일이다. 지난 17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외국에 살고 있는 국제결혼 여성들을 초청해 이들의 신산한 마음을 보듬는 행사가 처음으로 열렸다. 제1회 세계국제결혼여성대회. 한미여성회총연합회와 국제결혼가정선교전국연합회가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12개국 100여명의 국제결혼여성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의 곁으로 서양인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여럿 있었다. 혼혈인 2세들이었다. 겉으로 외국인인 듯 보이지만 분명 한국인의 핏줄을 이어받은 이들이다. 남과 다른 외모로 외국에서는 한국인이었고,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던 이 ‘이방인’들이 이날 행사장에서만큼은 ‘한국 사람’임을 과시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여성들은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외국인 남편과 결혼한 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뚫고 살아온 한인 여성들이었다.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내로라하는 국내 저명인사들이 단상 위로 올라가 “여러분이 지난날 우리나라의 힘이었다”고 할 때마다 이들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적시기도 하고, 힘차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 행사를 제안한 이는 서진옥 대회준비위원장. 그는 지난 80년대초 한명숙 국회의원과 함께 공해추방운동시민협의회(공민협)를 만든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선두주자다. 목사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지난 91년 캐나다로 이주했다가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01년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쉼터인 ‘무지개의 집’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부와 빈곤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오가는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을 만나며 새로운 구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됐다”고 했다. ‘딴 나라 남자’와 결혼해 다양한 차이를 생활 속에서 극복한 이들이야말로 “협상의 대가이며 평화의 일꾼”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비행기 삯을 스스로 내며 ‘친정’에 모인 까닭은 따로 있다. 자신들이 터득한 삶의 지혜를 서로 나누는 한편, 국제결혼 여성들을 세계적으로 조직화하기 위해서다. 남성 중심의 성윤리와 가부장제 탓으로 국제결혼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편견을 알리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은 물론 한국 안에 있는 혼혈인들에 대한 모든 차별 행위를 금지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로 했다. 국제결혼여성의 연대를 보여주려고 20일에는 한국인 아내를 토막 살인하고서도 5년형의 가벼운 형을 받은 영국인 남편의 처분에 항의하는 뜻으로 영국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서명운동을 펴기로 했다. 이들은 19일 혼혈인 차별철폐 입법안을 전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하고 행사 마지막날인 20일에는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국제결혼 여성들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요지의 공개 편지를 보낼 예정이다. 행사를 연 한미여성회총연합회는 이미 올해 초 미국에서 한국계 등 아시아 5개국 혼혈인에 대한 자동 시민권 부여법안의 의회 통과를 위한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이 단체의 실비아 패튼 회장은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관념 때문에 혼혈인에 대한 50년대식 편견을 아직도 강요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 내 혼혈인들의 지위 향상과 인권 회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첫날 열린 시상식에서는 주미 한미여성회총연합회를 만든 송전기(미국명 에드워드 전)한미여성회 추진위원회 고문과 간병서비스 회사인 암스트롱홈케어의 대표인 김예자(미국명 리아 암스트롱)씨가 각각 인권상과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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