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서면 부작용 줄어든다? 성과는 놀라웠다. 1960년대 5명 안팎이던 자녀 수는 70년대 중·후반 2∼3명으로 확 줄었다. 가난한 집 엄마들이 가장 큰 수혜자였으나 동시에 피해자였다. 이들의 몸은 질 낮은 불임수술과 선진국에서 검증되지 않은 피임약제의 ‘실험장’이 돼야 했다. 허리 통증과 하혈, 구토와 어지럼증이 속출했지만, 당국은 출산 억제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여성들의 안전은 깊이 살피지 않았다. 대신 부작용을 호소하는 여성들에게 ‘마음의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 “…가족을 조절하기 위해 (약을) 먹어야 되겠다는 정신이 선 다음에 복용한다면 이런 현상(부작용)이 훨씬 적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가정의 벗> 1970년 8월). 1968년에는 마을별로 ‘계몽된 어머니들’ 중심의 가족계획어머니회가 조직됐다. 이들은 피임과 불임의 전도사로 활동하며 ‘자발적 호응’을 유도했다. 실적에 따라 지원 규모를 달리한 결과,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세를 불려 회원 수는 1970년대 말 75만여명으로 불어났다.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이해와 권리 개념은 싹부터 잘렸던 셈이다. 1980년대로 넘어가면서 출산억제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다. 구호도 “둘도 많다”로 바뀌었다. 전국 주요 도시에 인구 시계탑을 세워 한반도가 곧 폭발할 것 같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불과 십수년 만에 출산율 저하에 따른 대책 마련에 이제 정부는 물론 온 사회가 분주하다. 계획 없는 가족계획의 후유증이다. <한겨레21>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한겨레21>은 장장 60쪽에 이르는 ‘박정희 표지특집’을 선보인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26년이 흘렀지만 그는 지금도 살아 한국 사회에서 활개친다. 한-일 협정 문서 등 ‘박정희 시대’의 비밀도 하나둘 밝혀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밝혀질 예정이다. 1979년 10월26일을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도 개봉된다. 2005년, 우리는 왜 박정희인가. <한겨레21> 기자들이 총동원되어 ‘박정희 시대’와 그가 남긴 유산을 취재했다. 22면 우리가 몰랐던 ‘인간 박정희’ 여자 문제에서 기자에게 박치기를 했던 에피소드까지. 한때 막걸리를 즐겨 마시며 서민의 표상이 됐던 그가 시바스리갈을 마시며 망가지기까지. 당시 김재규쪽 변호사와 청와대 출입기자의 증언을 토대로 ‘우리가 몰랐던 박정희’를 재구성해본다. 32면 대통령이 남긴 흔적들 박정희는 18년간 전국 각지에 친필 서예작품 1200점을 남겼다. 1주일에 한번씩 휘호를 남긴 셈이다. 이는 그 어느 명필이나 임금을 능가하는 숫자다. 그는 왜 그토록 많은 글씨를 남겼나. 그 솜씨는 어떠했나.“서예가 소전에게 지도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36면 박정희와 한나라당 파워게임 박정희의 유산을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그와 절연할 것인가. 박정희와 어떻게 관계맺을 것인가는 한나라당 내 대권게임의 전초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2007년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에겐 과연 유리한 것인가. 66면 설날 퀴즈큰잔치 내가 쏘면 퀴즈 개시야, 땅! 박정희 특집호의 하프타임에 찾아온 2004 설 퀴즈큰잔치. 자동차, 노트북, 대형TV…. 그 시절 각하의 하사품같이 푸짐한 퀴즈 경품이 쏟아진다. 너무 어려운 문제도 없다. 그때 그 시절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세 가지 퀴즈, ‘하면 된다’ 정신으로 잘 풀어보세~. ▶[한겨레21] 바로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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