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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1 06:00 수정 : 2019.03.05 16:26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보고서 뜯어보니
“20대 남성의 공정성 개념 축소…사회적 배려심 낮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일부 민간 위원들이 청년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을 내부적으로 정리한 자료로서 정책기획위원회의 공식 자료가 아님”

27일 국정과제 자문기관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정책위) 내부에서 작성된 ‘20대 남성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서가 논란이 되자 정책위는 부랴부랴 이런 입장을 내놨습니다. 정책위가 밝힌 것처럼, 해당 보고서가 정책위의 공식입장으로 확정된 사안은 아닙니다. 다만 한 정책위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각 분과에서 (이번처럼) 현안보고서를 작성하고 (위원장 보고를 거쳐) 분과 차원의 보고서가 청와대에 보고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체 15페이지에 이르는 이 보고서를 아주 ‘가볍게’만 볼 건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여성민우회, 여성의전화 등 36개 여성단체는 28일 이 보고서에 대해 성명을 내고 “(해당 보고서는) 20대 여성을 왜곡·폄하하고 있고,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현실인식과 이를 해석하는 관점이 부재하다”며 “대통령의 국정 방향을 자문하고 기획하는 중요한 위원회의 논의자료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 점은 충격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사실 이 보고서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20대 여성을 “집단이기주의”로 표현한 부분 외에도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20대 남성에게 ‘공정성’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절차적 공정성’으로 축소”됐다며 “심지어 기간제 교사,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도 불공정한 것으로 인식하는 등 사회적 배려심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술한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이같은 인식은 최근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발언과도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앞서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20대 지지율 이탈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교육 탓’이라는 취지로 말했고, 같은 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한 토론회에서 20대의 보수화를 이전 정권의 ‘반공 교육’에 원인을 돌렸습니다. 마치 20대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거나 또래 세대 간의 젠더 갈등, 이전 정권의 교육 등 ‘남 탓’으로 책임을 돌리는 해석이 반복되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두 명의 정책연구·실무자와 해당 보고서를 꼼꼼하게 들여다봤습니다. 이들은 “20대는 소위 ‘586세대’와 완전히 다른 세대인데 이에 대한 인식 부족이 드러난다”, “성차별 현실에 대한 오염된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 내용을 두 연구자의 반론, 통계 자료 등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20대는 “사회적 배려심이 낮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20대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란 새로운 주체다. 소위 ‘586세대’와는 인식체계가 완전히 다른데 정부는 (20대 문제를) 계속 ‘586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정책을 시행하는 거다. 대표적인 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을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신규 채용이 줄고 취업시장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들에게는 날벼락인거다. 이건 20대의 배려가 부족하다고 볼 게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봐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필요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부작용을 고려해서 (이전과는 다른) 세심한 접근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이 새로운 주체들은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가장 높고 ‘내가 노력한 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 체계여야 하는데, 정규직화 이후 취업문이 더 좁아지면서 20대에겐 지원 자격조차 안 주어지게 됐다. 이런 좌절감에 대해 (정책위가) 성찰했어야 한다.” (연구자 ㄱ씨)

■ 성평등이 “여성편익정책”?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누군가의 편익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사회적인 균형을 이뤄가는 어떤 정책도 할 수 없다. 노동자, 장애인, 아동 등을 위한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가나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분배를 공정하게 하기 위한 건데 그런 (공정을 위한) 조치를 다 ‘편익’이라고 하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나마 개정된 법이 데이트폭력이나 불법촬영 관련된 쪽인데 이건 ‘여성 편향적’인 정책이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보완입법이다.” (연구자 ㄴ씨)

“보고서가 ‘젠더편향적 정책행보’의 근거로 꼽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남성에 대한) 처벌법이 아니라 ‘성별에 기반한 폭력’에 대해 규정한 기본법이고, 현행 법률로도 남성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충분히 가능하다.” (연구자 ㄱ씨)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를 적용해 추가 합격한 5·7·9급 공무원과 외교관 수는 2015년을 기점으로 남성이 앞섰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해당 제도의 혜택을 받은 여성은 75명, 남성은 90명이다. (인사혁신처 ‘2018 균형인사 연차보고서’ 통계 재구성)

■ “15살∼30대, 일괄적인 청년정책 어려워”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청년정책을 따로 다루는 부처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그나마 여성정책 담당자가 청소년 정책을 함께 챙기는 수준이었다.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국회에선 이미 2017년 청년미래특별위원회가 출범해 활동했고 청년기본법 등을 발의했다. 이 법은 현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관인데 문제는 여가위가 독립된 상임위원회가 아닌 겸임 상임위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도 (규모가 가장 적은 부처로) 청년정책까지 포괄할 수 있는 인력이나 자원이 부족하다. 그런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15살부터 30대까지 획일적인 정책 안에 넣을 수 없는데 모두를 포괄한 ‘청년정책 재프레임화’로 접근하는 것도 위험해 보인다.” (연구자 ㄴ씨)

■ “성격차 지수·통계 차이 이해 못해”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 갈무리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8년 세계 젠더(성)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전체 149개국 중 115위로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러있다. 성별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 통계를 집계한 2000년 이후 단 한 번도 1위를 놓친 일이 없다. 공공기관, 민간기업 할 것 없이 채용단계에서부터 남성을 뽑기 위해 최종 합격자 성비를 결정한 뒤 점수를 조작해 우수한 여성지원자를 탈락시켜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여성 국회의원 수는 전체 국회의원의 17%에 불과하다.” (28일 36개 여성단체 성명)

“하위권인 성격차지수(GGI) 외에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하는 ‘성불평등지수’(GII)가 있는데 그건 한국이 10위(2018년 기준)로 높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개발도상국보다 청소년 출산율이나 모성 사망률은 낮고, 중등교육 이수 비율이 높기 때문이지 여성의원 비율이나 경제활동참가율은 여전히 낮다. 두 지수의 차이나 내막에 대한 이해 없이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연구자 ㄴ씨)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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