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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4 10:28 수정 : 2019.04.04 16:10

김양이 자신의 일기장에 남긴 기록. 김양은 일기장이나 공책 가장 뒤에 피해사실과 심경 등을 적었다. 김양은 임 교감을 ‘뱀 교감’이라고 불렀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교감의 초등학생 성추행 사건
법원 전문심리위원 의견서 “성인지 감수성 부족” 비판
전문심리위원 제도 허점 지적도 제기돼

김양이 자신의 일기장에 남긴 기록. 김양은 일기장이나 공책 가장 뒤에 피해사실과 심경 등을 적었다. 김양은 임 교감을 ‘뱀 교감’이라고 불렀다.
지난 2월 말 손아무개씨는 법원 전문심리위원이 제출한 의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손씨의 딸 김은지(가명)양은 아동 성추행 피해자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김양을 돕겠다던 김양의 초등학교 교감 임아무개(57)씨가 상담을 빙자해 학교 곳곳에 김양을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씨는 현재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살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관련 기사 : 성폭력 피해 10대 온갖 정보, 가해 교감에 넘겨준 ‘법’)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정신과 전문의 허아무개씨에게 사건 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김양의 심리 분석을 의뢰했다. 그런데 허씨가 작성한 의견서에는 “원고(김양)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적혀있었다. 앞서 경찰과 검찰에서 진행된 2차례 진술 분석에서 내려진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과 반대되는 결과였다.

허씨는 김양이 어머니 손씨의 영향을 받아 거짓 진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허씨는 △김양이 학교폭력 피해는 말하면서도 추행 사실은 숨겼던 점 △김양이 피해를 호소하며 사용하는 어휘 수준이 나이에 견줘 높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정신과 전문의 등 전문가들은 허씨의 의견서가 성폭력 피해자의 처지에서 사안을 살펴보는 성 인지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먼저 허씨는 김양이 느낀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김양은 경찰 조사에서 애초 추행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엄마, 아빠, 친척들을 다 죽일 것 같았고 절 납치하거나 더 끔찍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추행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허씨는 김양의 설명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으며, 따라서 그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초등학생 피해자가 교감에게 당한 추행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원장은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사회 성도덕이나 순결주의, 피해자의 공포나 외상으로 인해 나중에야 입 밖으로 나온다”며 “우리 사회 일련의 ‘미투’들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에 대한 허씨의 이해가 매우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김양이 사용한 어휘도 문제 삼았다. 허씨는 “피해를 호소하는 아동의 진술 시 ‘공포감, 수치심, 모욕감, 굴욕감, 방관, 훈육, 성추행, 진실 모면’ 등 또래 아동들에 비해 한자어나 개념적인 단어 사용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은지의 진술은 은지모(손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하지만 어휘력은 개인마다 편차가 있고, 이를 근거로 진술에 어머니가 영향을 끼쳤다고 일방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의견서를 검토한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또한 “진술 중간에 어머니가 개입하는 장면이 1곳 있다”며 진술이 오염됐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어휘 수준을 문제 삼진 않았다. 상담심리 연구자 ㄱ씨는 “지능검사에서 어휘력을 측정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이 진행됐는지 의문”이라며 “인터넷을 통해 학습했을 수도 있고 아동의 어휘력이 좋을 수도 있는데 어머니의 압력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허씨 의견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양의 일기장 일부. 김양은 평소 일기에 날씨를 쓸 때도 ‘내 눈이 인상을 찌푸릴 만큼 더운 날’ 등 다양한 표현을 썼다. 손씨 제공
의견서 구성 비율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허씨가 제출한 의견서는 25쪽 가운데 60% 이상이 학교폭력에 대한 내용을 중심이다. 반면 김양의 경찰 진술 뒤 작성된 전희재 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의 의견서는 모두 20쪽으로 모두 추행 사건에 대한 진술과 분석을 담고 있다. 전씨는 ‘언어 및 인지 특성’ ‘심리, 정서 상태’ 등을 차례로 분석한 뒤 진술 내용을 중심으로 신빙성을 따졌다. 안주연 원장은 “학교에서의 갈등과 상호작용을 살펴보는 내용 자체는 필요하지만 이 내용이 전체 감정문에 견줘 너무 길고, 비중이 크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허씨가 학교폭력을 분석한 의견서 내용도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허씨는 김양의 어머니 손씨가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반성과 사과, 훈육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에 대해 “불가능한 요구”하고 지적하면서 “상대(가해자)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경우, 진정한 ‘화해’를 기대할 수 없다”거나 “화해는 강제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임상심리 연구자 ㄴ씨는 “만약 이런 기준을 갖고 피해자들을 상담한다면, 내담자들이 큰 상처를 받을 것”이라며 “기준 자체도 문제지만, 의견서 전체가 마치 사실을 자신의 주장에 끼워맞추기 위해 작성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법원 전문심리위원 제도의 허술함에 대한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심리위원은 법원이 전문적인 분야 사건을 심리할 때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지정해 소송절차에 참여하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법원을 제외하고 원고나 피고 쪽 당사자들은 전문심리위원에게 어떤 자료가 넘어가는 지도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실제 안희정 전 도지사의 성폭력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1심 재판부에서도 자체적으로 전문심리위원인 ㅈ교수에게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빼고 안 전 기사 쪽이 제시한 증거만 제공하는 등 자료를 편파적으로 제공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심지어 검찰은 1심 판결이 끝난 뒤에야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뒤늦게 항소 이유에 ‘심리 미진’을 추가했다. 손씨는 허씨 의견서 역시 비슷한 경우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안희정 재판부, 심리전문위원에 안희정 쪽 증거만 보냈다’)

지난 25일 검찰은 교감 임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1심 선고는 오는 17일이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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