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이 끝나고 태어났다. 스무살이 되던 해, 실력만 있으면 유리천장쯤은 부술 수 있다는 ‘알파걸’이 등장했다. 서른이 되자 직장에선 자책감을, 가정에선 죄책감을 느끼는 ‘슈퍼우먼’ 선배들이 보였다. 여성의 생존과 성공에 대한 서사는 늘었지만,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판의 기울기는 변함이 없었다. 이 판 자체에 균열을 내는 방법은 없을까. ‘알파걸’도 ‘슈퍼우먼’도 주지 못한 답을 찾고 싶어, 또래 여성들을 만나러 나섰다.
2016년 테크페미를 함께 만든 옥지혜씨(왼쪽)와 김매이씨. 이들은 “여성들도 회사 밖의 동료들과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 함께 성장하고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촬영 황금비 기자
우리는 어쩐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본사에서 테크업계 페미니스트 모임 ‘테크페미’를 만든 옥지혜씨(30·‘띵스플로우’ 프로덕트 매니저), 김매이씨(31)를 만난 자리였다.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서른 문턱을 갓 넘은 참이었다. “엄마가 지금 내 나이께 나를 낳았다”는 것, “2019년을 사는 우리로선 상상조차 잘 안 되는 삶을 엄마들은 견뎌냈다”는 걸 새삼 깨달을만한 때다. 페미니스트로서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딸과 오랜 시간 가부장제 안에서 가정을 꾸려온 엄마, 둘 사이의 거리는 참 가까우면서도 멀 수밖에 없다고, 서로의 경험담에 우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고한 체제를 두고 모녀 간 간극을 좁혀보려는 시도를 하다가 때론 부딪히고, 때론 원망했던 경험을 모두가 몸으로 체득해왔던 것이다. 애초 계획에도 없던 이야기 주제였지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야도, 전공도, 살아온 삶도 각각 달랐지만 ‘페미니스트’, ‘여성’, ‘딸’이란 정체성을 모두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슷한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건 단단한 연대를 만들어내는 단초가 된다. 그리고 연대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다. 변화를 바라는 여성들의 삶이 연결되는 게 중요한 이유다. 2016년 12월 탄생한 ‘테크페미’의 목표도 ‘연결’에 있다. 테크업계에 종사하는 페미니스트·여성들이 회사 밖에서 “같이 만나고, 경험을 나누고, 함께 성취하는 느슨한 연대체”가 ‘테크페미’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1. 여자니까 해라, 여자니까 하지 말아라―안녕! ‘테크페미’는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는지 소개해줄래?지혜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야. 회사 다니면서 (여성으로서) 분노하는 지점도 물론 있었지만 매번 일일이 대응하기는 어렵잖아. 그런데 사건 이후엔 (성차별, 여성혐오 등에 대해)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알음알음 사람을 소개받았어.
매이 사건 이후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테크업계의 여성들도 화나는 일이 많지 않나.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글을 올렸어. 30명이 모여 각자의 경험을 말하는데 이야기가 끝나질 않는거야ㅎㅎ 모두가 여성으로서 살아오면서 속상하거나 가슴 무너지는 일, 화나는 일들이 있었던 거지. 함께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느슨한 연대체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했어. 지금은 단체 채팅방에서 함께 하는 인원만 160여명이야.
어떤 죽음을 잊지 않는 것, 더 나아가 그것이 헛되지 않도록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가장 최선의 애도인지도 모른다. 강남역 사건 3주기를 맞는 올해 5월17일까지 ‘테크페미’가 만들어 온 발걸음이 바로 그렇다. ‘테크페미’는 출범 이후 폭력과 차별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2017년 2월 업계 안에서 발생한 사이버불링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업계 동료 400여명의 연명을 받아 발표했다. 같은 해 5월에는 ‘강남역 1주기 추모 웹페이지’(https://remember-160517.com)를 만들어 누구나 추모의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테크페미의 초기 콘셉트 시안. 모든 건 이 종이 한 장에서 비롯됐다(!) 테크페미 제공
‘테크페미’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할 때도 차별과 폭력을 금지하는 것이 원칙이기도 하다. ‘테크페미’ 구성원 중 일부는 팀을 이뤄 오프라인모임·이벤트 중개 플랫폼 ‘밋고’(https://meetgo.kr)를 만들었다. 2017년 8월 같은 업계 스타트업 대표와 투자자가 성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이 발생하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밋고’를 통해 이벤트를 개설하고 참여자를 모집하려는 이들은 해당 이벤트 안에서 어떤 형태의 폭력도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밋고’는 또 “성별, 성정체성, 나이, 성적지향성, 장애 여부, 외양, 체형, 인종, 민족, 종교,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참가자가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이벤트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성적인 농담과 이미지 및 상대를 괴롭게 하는 언사는 발표, 워크샵, 뒷풀이,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삼가달라”는 운영 원칙도 공표했다.
테크업계 안의 페미니스트·여성이 회사 밖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2017년∼2018년 개최한 ‘여성기획자 컨퍼런스’(이하 ‘여기컨’)가 대표적이다. 여성 기획자들을 연사로 초청해 창업과 이직 경험, 기획 노하우, 페미니스트 기획자로서 일하는 법 등을 공유한 이 자리에는 500여명이 참석했다.
―‘여성기획자 컨퍼런스’ 행사를 두 번이나 개최했잖아. 어떤 계기로 기획하게 된 거야? 지혜 아까 말한 것처럼, 일을 하다 보면 여성으로서 화나는 지점들이 생기곤 했어. (화를 내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걸 어떻게 바꿔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 기획한 행사야. 사실 테크업계에서 기획자의 직무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고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거든. 개발자나 디자이너에 견줘 구체적으로 ‘기술’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다 보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문제는 이 직무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이 여성인 경우가 많아. 그럼 ‘페미니스트·여성 기획자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같이 나누고 싶었던 거야.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컨설팅이 2017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영국 테크업계의 관리자급 여성 비율은 5%에 불과하고, 여학생 4명 중 1명은 “남성지배적인 문화 때문에 테크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을 꺼렸다”고 밝혔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육아, 경력단절, 유리천장 등으로 10∼20년차 이상의 여성 기획자가 드물고, 업계 안의 여성 롤모델도 적다. ‘여기컨’은 이런 환경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들이 품고 있는 고민을 서로 나누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2018년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에서 개최한 두번째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 모습. 테크페미 제공
#2. ‘일하는 여성’의 생존법―테크업계의 성비는 어때? 그 안에선 어떤 차별에 부닥치게 되는지 궁금해.지혜 개발 직군은 압도적으로 남초고, 디자이너 직군은 압도적으로 여초야. 그런데 사실 어떤 직무건 관리자급은 남성이 많지. 내 직무는 개발·마케팅·디자인 직군 등과 함께 서비스를 기획하며 시장 상황을 판단하고 어떻게 수익을 낼 지 결정하는 일인데 사실 처음엔 무언가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게 나도 낯설었어. 의사결정권자가 여성이 되는게 나조차도 익숙치 않았던 거지. 또 나는 수익을 내는 서비스에 관심이 많았거든. 그런데 으레 “여자니까 이런 걸 잘하겠지”라며 뭔가 아기자기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업무가 주어지는 거야.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해야할 땐 “‘어린 여자’인 너가 발표하면 잘 되겠다”거나 반대로 “‘어린 여자’라서 발표를 맡으면 안 된다”는 말을 둘 다 들어보기도 했고.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젊은 여성’이란 정체성으로 평가를 받은 셈이네. 사실 스타트업은 대기업 같은 곳보다 아무래도 더 평등하고 개방적인 조직문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데. 지혜 대기업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곳과 비교해보면 뭔가 대놓고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건 덜 해. 하지만 잘 포장되서 교묘하게 이뤄지는 차별이 있달까? 그 교묘함 때문에 너무 많은 갈등이 생기는 거야. 나는 어떤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꼈는데 이게 나의 개인적인 감정인지, (‘여성’이란 것처럼) 내게 달려있는 꼬리표들로부터 오는 차별인 건지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 그런 고민을 할 때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때론) 퇴사도 했고.
매이 가부장적인 기업문화에서 오래 버틴 여성 선배로부터 차별의 경험이 오는 경우도 있었어. “잘 버텨야지”, “너가 잘해서 증명해내야지”라는 식으로. 그러다보니 내가 실패하면 다른 여성들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까봐 무섭기도 했어. 외국계 기업에서도 잠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도 차별은 존재해. 지혜가 말한대로 조금 더 교묘하게 이뤄질 뿐이지. 그런 회사에선 오히려 겉으로 다양성이나 평등을 내세우니까 차별이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여겨지는 것 같아. 그러다보니 ‘나만 이런가’ 싶어 더 외롭기도 했고. 이런 점이 ‘테크페미’와 같은 모임을 하게 되는 이유기도 해. 비슷한 고민을 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거든.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임포스터 신드롬’(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임포스터 신드롬’은 자신의 성공이 노력이 아닌 운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심리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는 “성공한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여성들은 자신이 과대평가 받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며 지나칠 정도로 근면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업계의 다른 여성들과 고민을 나누며 비로소 “나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란 걸 알고 안정감을 느꼈다고 했다.
테크페미는 테크업계 안에 종사하는 페미니스트·여성들에게 심리적인 지지대와 울타리를 만들어준다. 테크페미 제공
―또래 여성직장인들을 만나다 보면 ‘여성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고민이 많이들 있는 것 같아. 여성이 사회에 많이 진출했다고 해도 관리자급엔 남성이 다수고, 가부장적·남성중심적 문화를 가진 조직이 여전히 많다 보니까 괴리감을 느끼는 거지.지혜 그래서 회사 밖의 동료들을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인데 심지어 페미니스트라면 ‘만사 오케이’ 잖아. 예전에는 소위 ‘네트워킹’을 한다는 게 뭔가 권력이나 명예욕과 연결되는 단어인 줄 알았고, (젊은 여성인) 내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연결될수록 같이 성장한다는 확신이 생겨. 무조건 나를 응원하고 등을 떠밀어주는 사람이 업계 안에 친구로 있다는 건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
―사실 조직 안에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여성이 말하면 뭔가 덜 합리적이고 더 감정적이란 편견도 존재하잖아. 그런 편견이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지혜 맞아. 나도 뭔가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팀원의 적절치 않은 행동을 지적할 때도 있는데 그 지적이 혹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을 했어. 결국 내가 지금 하는 말에 “감정적인 부분이 없다”는 걸 솔직하게 같이 설명을 하는 수밖에 없었어. 사실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환경조차 내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
매이 나는 사실 말투가 ‘씩씩하다’, ‘당차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인데 이런 말투 때문인지 “너는 일하는 게 여자같지 않아서 좋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 페미니스트라면 당연히 “여자다운 것, 남자다운 것이 뭐냐”고 반박해야겠지만 그 상황에서 (매번) 정색을 하면서 따져묻는 게 참 애매하고 어렵더라고. 상대방은 나름의 칭찬이라고 한 말에 나는 기쁘지 않은데, 이럴 땐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그 답은 사실 여전히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
여성 직장인으로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야하나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그 고민 역시 함께 하는 동료가 있어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촬영 황금비 기자
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테크페미’ 안에서는 이런 부가적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또는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나의 실제 능력이나 의도와는 무관한 평가를 받을까봐 신경을 곤두서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는 ‘테크페미’라는 연대체에선 “감정에 솔직해져도 일에 방해가 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테크페미’가 심리적 지지대와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든 사안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최저선’이 지켜진다는 느낌이 있어. 내가 불편하고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나를 응원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는 관계여서 좋아.” (옥지혜)
#3. ‘페미니스트 딸’, 그리고 엄마
두 사람에게 ‘페미니스트 모멘트’를 물었다. 옥씨는 대학교에 입학한 뒤 첫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새터)이라고 했다. 여고를 졸업한 그는 새터에서 ‘오빠’라고 불러보라거나 애교를 요구하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그날의 불편함은 학내 여성학 동아리에서 페미니즘 언어를 접하면서 비로소 설명되기 시작했다. “여성학 동아리 안에선 가족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순간을 얘기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옥씨는 말했다.
김씨는 강남역 사건을 꼽았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계속 일하면서 4남매를 키우신 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를 따라 ‘일하는 여성’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페미니즘이든 자유주의든 어떤 ‘이즘’(주의)에 매몰되면 안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강남역 사건 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여성으로서 나는 실존적인 위협을 겪고 있는데 한 발짝 물러나 우아하게 바라봐도 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는 거다.
‘오빠’라고 부르고 애교를 부릴 것을 요구하는 대학교 새터가 당혹스러웠다고, 옥지혜씨는 말했다. 그래픽 황금비 기자
―둘 모두 가족의 영향을 이야기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어?지혜 부모님이 두 분 다 경상도 분이야. 어렸을 때부터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거나 “여자애가 왜 이렇게 목소리가 크냐”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 그 때마다 “날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답하면서도 한편으론 보수적인 아빠의 잔소리를 듣는 딸이 되고 싶지 않아 노력하곤 했지ㅎㅎ
매이 우리집은 아들을 낳기 위해 자녀 수가 많아진 전형적인 사례야ㅎㅎ 딸 2명에 남자 쌍둥이가 있는데 내가 그 중 첫째고. 그럼에도 자라면서 남녀차별을 경험하지 못한 건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과 학업을 지속한 엄마 덕이 컸다고 난 생각해. 사실 그 때의 엄마의 삶을 상상해보면, 30대 때 애가 넷인데 직장을 다니면서 논문을 쓴다고? 난 도저히 못할 것 같아ㅎㅎ 내 나이 때 엄마가 얼마나 친구들이랑 놀고 싶었을까 생각하기도 해.
―나도 그래ㅎㅎ 내 나이 때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나갔을까 생각하면 아득하거든. 엄마의 그 시절에 대해 혹시 함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어?매이 응, 있어. 사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엄마를 줄곧 ‘롤모델’이라고 생각해왔거든. 엄마를 따라서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기도 하고. 그런데 페미니즘을 접하면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 ‘슈퍼맘’으로 살아온 엄마가 고맙고 존경스러우면서도 ‘2019년을 사는 여성들의 삶은 조금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다 드는 것 같아.지혜 나도 달라진 점이 있어. 예전엔 페미니즘을 배웠으니 (페미니스트로서) ‘옳은 것’과 ‘아닌 것’을 나눠야 한다고만 생각했거든. 엄마가 나를 키우기 위해 희생했던 것들을 자각한 뒤에도 가부장제 안에서 엄마의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려 들려고만 했어. 그런데 그게 완전 잘못된 전략이었다는 걸 깨달았어ㅎㅎ
―그럼 요즘은 어떤 전략을 쓰고 있어?ㅎㅎ지혜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로서 가지는 경험을 하나로 이어가는 과정’임을 납득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던 것 같아. 집에서 페미니스트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아빠가 엄마에게 뭐라 할 때 무조건 ‘엄마 편들어주기’를 하기로 바꿨거든. 그러면서 엄마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고, 중장년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 것 같아.
모녀관계 역시 여성 간의 연결과 연대란 관점에서 살펴보게 됐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테크페미’ 활동을 통해 쌓인 경험이다. “여성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응원하고 성취하는 경험이 마치 ‘복리’처럼 불어났다”고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입을 모았다. “주인공이 아닌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모였을 때 제일 좋은 건, 함께할 때 생기는 힘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는 것”이라고 옥씨는 말했다. 그래서 ‘테크페미’의 목표는 무리하지 않고, 소진되지 않고 “오래오래 버티는 것”이다. 더 많은 여성 동료들이 함께 살아남아 연결될 수 있도록, 여성의 성취경험이 ‘복리’처럼 불어나 더 풍성한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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