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과 여성학을 전공하고 2002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했던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원장이 지난 3일 서울 은평구 진흥로 원장실에서 취임 1돌을 맞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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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나윤경 원장
교육학과 여성학을 전공하고 2002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했던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원장이 지난 3일 서울 은평구 진흥로 원장실에서 취임 1돌을 맞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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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남성성 특징 소외 받아
‘여성차별 주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
‘시스템 실패·기성세대 실수 탓’ 진단 설득 언어·성인지 콘텐츠 다양화 추진
유엔 ‘위민트레이닝센터’ 지부 유치 나서 그는 앞서 지난달 27일 열린 취임 1돌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린 적이 있다. 능력주의를 맹신하고, 다양성을 보장하거나 존중하는 대신 차별을 정당하게 여기는 사회가 된 것은 “시스템의 실패”이자 “기성세대의 실수”라고 했다. 그의 인식은 ‘양평원’ 누리집의 인사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사회는 실질적 민주화, 일상의 민주화, 관계의 민주화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앞두고 있”고, “국가와 민족 등 거대 서사가 지운 개인적 차원의 정의로움, 관계 안에서의 정의로움에 대한 추구가 모두의 숙제”가 됐기 때문에 여성주의가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양평원’의 변화도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언어를 개발하고 이를 위한 성교육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연세대 대학원 문화학협동과정과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교편을 오래 잡은 그이지만 공공기관은 처음이다.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양평원’은 공무원에게 성인지 정책 교육을 하고 양성평등교육 전문강사를 양성한다. 나 원장이 지난해 6월 부임한 뒤엔 ‘맥락적 성인지 교육 콘텐츠’ 개발을 중점 사업으로 삼았다. 성희롱·성폭력은 어떤 개념인지 알려주는 일차원적인 교육 콘텐츠를 벗어나 연령이나 직군별로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다고 했다. 젠더 감수성이나 페미니즘과 관련해 여러 이슈가 터져나오는 시점인데도 성인지 교육은 늘 같은 이야기만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인지 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바뀌었잖아요. 사람들의 수준도 높아졌고요. 국·영·수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프로그램이 달라지는데 성인지 교육만 늘 개념 수준에 머무를 순 없잖아요.” 성인지 교육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도 꼬집었다. 그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르친다는 건 ‘거짓말 하지 마라’라는 것과 똑같은 층위의 이야기이지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독 이 분야에선 몰라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지식인들도 다르지 않다. “대학 교수들도 ‘나는 부엌에 들어가면 혼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이야’라며 (자신이)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죠. 그럼 이렇게 답해요. ‘교수인데 모르는 게 자랑스럽나요? 모르면 배우세요’라고요.” “교육은 자신의 삶을 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나의 살갗에 닿는 것처럼 일상과 밀접하게 결합해야 한다는 얘기다. 콘텐츠 개발 과정에서 현장 교사나 군인을 직접 불러 함께 교육안을 만든 이유다. 모든 교과 수업 안에서 성인지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집중했다. 실제로 교사들이 참여해 ‘양평원’에서 만든 과학·진로교육안을 보면, 와이파이를 발명한 헤디 라머나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를 발명한 이희자씨 등 여성 과학자와 발명가를 함께 소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과학자는 주로 남성”이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하반기엔 아시아의 젠더 트레이너(젠더교육 전문가) 40명을 초청해 유엔 여성기구와 함께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번 교육을 계기로 유엔 기구인 ‘위민 트레이닝 센터’의 아시아지부를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서구 페미니즘 이론은 ‘고부갈등’을 이야기하지 않는데 사실 한국이나 일본에선 이 문제를 빼고 여성주의를 실생활에서 실천하기 어렵죠. 유엔의 축적된 경험과 자료를 아시아권의 맥락에 맞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활약상을 공유하고 아시아 여성들에게 축적된 여성주의적 활동과 지식·경험을 상호 교류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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