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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가면> ⓒ 노유다, 움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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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오빠 성폭력 사건의 공통 레퍼토리 “딸이 거짓말”
부모는 가해자 감싸고 피해자 딸들은 집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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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가면> ⓒ 노유다, 움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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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개월 사이 ‘#미투 오빠 성폭력’ 고발에 용기를 낸 세 명의 생존자를 만났다. 16살 Y 사건은 수사 중이다. 21살 P와 K도 고등학생 때 오빠 성폭력을 신고했다. P의 오빠는 4년형, K의 오빠는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세 사람의 가정형편과 성폭행 당시 정황, 현재 처한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두 가지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세 명 모두 보호자인 부모가 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는 집을 나오고 가해자인 오빠는 부모의 보호를 받았다. 친족 성폭력 관련 수사·상담·치료·지원 전문가들은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거의 모든 오빠 성폭력 사건에서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오빠_성폭력_미투 자해 청소년 Y
학업 스트레스, 편애… 자해 이유는 그뿐이 아니었다
“있잖아요… 난 어릴 때부터 모든 걸 부정하려 했어. 엄마아빠가 때리고 소리 지르고 욕하는 것 모두 내가 잘못해서라고 생각하려 했어. (중략) 엄마아빠가 자고 있을 때, 나가 있을 때 오빠가 나한테 저지른 짓이 절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오빤 그저 장난치는 거라고 부정하려 했고, 엄마아빠가 날 포기한 거 같을 때 버려진 게 아니라고, 오빠만 챙겨줘도 같이 살고 있는데 버려졌을 리가 없을 거라고 부정하려 했어.
그래서 혼자 곪아갔어. 완벽할 정도로 혼자서 곪았어.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잘 사는 듯 우울함 따윈 하나도 없는 듯 잘 지내면서, 속으론 ‘다 놓아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아무리 고통스럽게 죽어도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보단 덜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고 나를 포기해가듯 서서히 빨간 줄을 내 몸에 하나씩 늘려갔어. 더 이상 줄이 아니라 구멍이 될 때까지. 꼬(꿰)매야만 할 정도로까지. 수십 바늘을 꼬(꿰)맬 때까지. 근데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서, 어차피 더 무너질 곳도 없는데 또 숨겨서 뭐하나 싶어서 의사쌤한테 결국 말했어. 엄마아빠도 오빠도 전부 다 싫다고. 오빠가 신고되고 (중략)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알릴 거야.”
지난해 ‘청소년 자해 3부작’(제1237~1239호)을 취재하면서 만난 Y가 6월 초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Y는 4년 넘게, 너무 괴로워 자기 자신을 해할 지경이 되도록 깊숙이 숨겨온 비밀 하나를 꺼냈다. 청소년 자해 취재 때 Y는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편애, 가정폭력, 그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만 자해 원인으로 언급했다. Y는 실명을 공개해도 좋다고 할 정도로 거리낌 없이 자해 사실을 드러냈지만, 자해에 이르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던 셈이다.
갑작스러운 ‘#미투 오빠 성폭력’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진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고의무제로) 경찰에 신고된 후에는 더 잃을 게 없으니까… 물러날 곳이 없는데 혼자만 알고 당하고 있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이라도 알고 있으면 그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명 한명한테 ‘카톡’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인스타’에 태그 ‘좌라락’(주르륵) 걸어가지고 알리는 게 차라리 나을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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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가면> ⓒ 노유다, 움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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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이라는 아빠는 현관 비밀번호 바꿔
6월 Y가 카톡으로 다시 기자에게 말을 걸었을 때, Y는 한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에 있었다. 집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 입원을 고집했다고 했다. 진료받던 중 “얼떨결에 의사쌤에게 ‘오빠와 있었던 일’을 말해버렸다”고 했다. Y에게는 두 살 터울 오빠가 있다. 청소년 자해 취재 때 “부모님이 오빠만 편애한다”고 속상해했던 모범생 오빠다. Y는 12살 무렵 오빠가 자신의 몸을 만졌다고 했다. 너무 어릴 때 시작된 일이었다. 오빠가 동생 몸을 만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고 했다. “오빠가 만져도 제가 이상하단 걸 몰라서 거부를 안 하니까… 뭐 그 이상까지가… 그런 거쥬(죠)… 안 알려져서 그렇지 그런 사람 많아유(요).”
두려운 마음을 덜어보려는 듯 Y는 장난스러운 말투를 썼지만,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신고의무제 때문에 의료진은 Y의 일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확인해보니, 서울경찰청 여성대상범죄특별수사팀에서 Y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수사 초기여서 아직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7월 초 Y는 “이제 만날 수 있다”며 다시 연락해왔다. 6월 말 퇴원하고 청소년 일시보호소에 머물던 일주일 사이 극도의 불안 증세로 두 번이나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6월 말 경찰 조사에서는 진정제 주사를 맞은 뒤에야 침착하게 진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은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담담했다.
Y는 “이상하단 걸 알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고 했다. 성추행으로 시작된 일이 성폭행으로 이어진 지 이미 오래됐다는 것이다. 말하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성폭력) 피해자한테도 잘못이 있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누군가 저한테 ‘왜 처음부터 얘기 안 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제가 더럽다는 생각도 들고… 저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고… 게다가 오빠랑 어려서부터 스킨십도 많은 편이고 그랬어서….”
Y는 장기간 심각한 ‘리스트컷’(손목긋기)을 반복하며 마음에 남모르는 고통이 있다는 무언의 호소를 해왔다. 부모는 Y의 자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해 시작 시기는 Y가 주장하는 오빠 성폭력 시점보다 한참 뒤라는 입장이다. 또 그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오빠 성폭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Y의 아버지는 <한겨레21>에 “(피해를 주장하는) 딸도 (가해를 부인하는) 아들도 믿을 수 없다”고 괴로움을 토로하며 “중립적인 입장”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Y가 엄마·오빠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 현관문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바꿨다. Y는 “퇴원하는 날, 아버지가 집에 있는 옷가지 등을 챙겨 병원으로 가져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겨레21>에 “Y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외할머니댁에 가 있으라고 말했고, Y가 지낼 집을 알아보고 있다”며 “Y를 내보내거나 버린 것이 아니라 Y가 집에 오기 싫어했다”고 강조했다. Y는 이 상황을 “가정폭력만 얘기할걸, 괜히 오빠 일까지 말하는 바람에 엄마아빠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라고 이해했다.
“구멍에서 나와 어떻게든 이겨낼 거야”
수사가 시작된 이후 Y 아버지는 기자를 찾아왔다. 처음 만나는 기자에게 힘든 가족사를 털어놨다. 끊임없이 오빠에게 시비를 걸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Y의 태도, 이어진 Y의 자해와 자퇴 등으로 오히려 가족들이 고통받았다고 했다. Y에게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막막하다고도 했다. 반면 “아들은 부모 말에 순종적이고 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고 했다. Y 아버지는 아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정상군’으로 분류된 아들의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 안내문’을 가져와 보여주기도 했다. 부모에게도 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항변인 셈이다. Y는 ‘시비’에 대해 “오빠가 부모님 뒤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고 부모님한테도 말씀드렸지만 믿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반항’과 관련해선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는 제 성격을 부모님은 반항으로 받아들이셨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6월 말 퇴원한 Y는 한 달 넘게 청소년 일시보호 쉼터와 친구 집을 돌고 있다. 집 현관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Y에게 말 그대로 ‘비밀’번호다. 성폭력 피해자 쉼터 등 Y 같은 청소년들을 장기적으로 보호해주는 시설이 있다. 입소자 보호와 공동생활 관리를 위해 지켜야 할 규율이 엄격한 편이다. 저녁이 되면 휴대전화를 반납해야 하고, 통금 시간을 지켜야 하며, 외박은 금지된다. Y 역시 장기 쉼터에서 상담받았지만 “답답할 것 같다”며 입소하지 않았다. 단기 쉼터는 Y의 자해 문제 등으로 보호를 꺼렸다. 경찰 관계자는 미성년자 피해자 보호 책임과 관련해 난색을 표했다. “쉼터가 보호하지 않는 게 아니라 Y가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쉼터나 경찰을 탓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일리가 없지 않으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다스리고 통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오래 참아주고 치료를 도와야 하는 안타까운 질병이다.
Y는 6월 초 인스타그램 글에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난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으니까 어떻게든 그 구멍에서 나올 거야. 그 과정은 힘들 거고 날 또 좌절시킬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은 물러설 곳도 없고 더 이상 얽매이기도 싫어. (중략) 그래서 이겨내려고. 어떻게든 이겨내서 잘 살아보려고. 그리고 생각보다 주위에서 도와주겠단 사람도 많아. 예전처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잘 이겨낼게.”
그러나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Y는 부모도 정부도 버거워하는 ‘상처 입은 고슴도치’가 되어 떠돌고 있다. “친구들이 놀러 갈 계획을 짜는 동안, 있을 곳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가장 괴롭다”고 했다. Y는 하루빨리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길 바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법적으로 가려지면, 부모도 피해자인 자신에게 최소한의 양육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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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성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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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_성폭력_미투 엄마와 1년6개월째 절연한 P
아무리 씻어도 몸이 더럽다는 생각뿐
P는 7월 중순 인터뷰 내내 “가족 전체가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알코올중독 아버지는 술자리에서 비명횡사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그날, P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숨져가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간호조무사로, 택배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지만 “한숨만 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숨지게 한 혐의로 감옥에 다녀온 엄마의 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
10살 위 언니는 P를 못마땅해한다고 했다. 자신은 칼을 든 아빠한테 “같이 죽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생했는데, 어린 동생은 “하고 싶은 거 다 한” 것이 싫다고 했다. “도대체 내가 뭘 다 했다고 그러느냐”고 따지니, P가 어린 시절 운동과 미술 학원에 다닌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8살 터울 오빠. P는 손가락을 관자놀이 옆에서 뱅뱅 돌리며 “오빠는 돌았다”고 말했다. 오빠는 아무 일도 안 하고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사는 “도태된 ××”였다. P가 중2 때 오빠가 중2랑 연애하는 걸 보고는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 미친 오빠, 도태된 ××가 P의 몸에도 손을 댔다. 중학생 때였다. 언니가 외박한 날, 문을 닫으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외딴 방에서 몇 차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오빠가 너무 싫어서 “인간아, 왜 사냐”고 욕을 퍼붓기도 했지만, 엄마한테는 “차마 입이 안 떨어져서” 말을 못했다.
P는 중·고교 시절 내내 우울증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받았다. 씻어도 씻어도 더럽다는 생각이 드는 강박증도 심했다. 오빠 일로 ‘내가 더러워졌다’는 생각이 들고, 엄마의 애인이 머리를 쓰다듬은 게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였다. 중3 무렵 화장실에 뒹굴던 깨진 유리로 자해를 시작했다. 10층 집에서 뛰어내려 죽을까도 생각했다. 무서워서 죽는 것까지는 못했다.
‘오빠 탄원서’를 요구하는 엄마
특성화고 3학년, 믿었던 친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다행히 현장실습으로 3개월간 친구와 떨어져 지냈다. 그러다 실습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날, 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CPTSD)로 ‘멘붕’이 왔다. 아는 언니한테 말했더니 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하라고 조언해줬다. 친구 사건과 함께 오빠 사건도 그렇게 수사기관에 알려졌다. 학교로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쳤다.
P는 가정에서 분리돼 쉼터로 왔다. 엄마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너 거짓말인 거 다 안다, 뻥치지 마라”고 난리를 쳤다. “지금 당장 집으로 들어오라”고 협박도 했다. P는 엄마한테 “거짓말”이라는 소리를 들은 뒤 심각하게 자해했다. 결국 몇 달간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그 뒤로도 엄마는 “오빠 탄원서 좀 써달라”로 전화를 걸어왔다. “뭔 ×소리냐, 헛소리하지 마라, 절대로 안 써주겠다”고 소리쳤고, 끝까지 버텼다. 전화번호를 바꿔도 엄마는 끈질기게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결국 P는 통신사를 찾아가 비밀번호 잠금 서비스를 요청했다. 보호자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전화번호를 찾을 수 없도록 한 개인정보 보호 제도다. 그렇게 엄마랑 연락을 끊은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오빠는 다시 만난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P는 쉼터에서 ‘하루만 버티자’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산다고 했다. ‘오늘만 살다 오늘 죽었으면’ 할 때도 있고, ‘내일이 두렵다’고 느낄 때도 많다. 성인인데 쉼터에서 밤 10시 이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건 정말 불편하다. 웹소설 읽기와 게임이 취미인 ‘방구석 폐인’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불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개똥 밭에 굴러도 쉼터가 좋다”며 “‘혼파망’(혼돈파괴망각) 같은 집구석엔 다시는 안 들어가겠다”고 벼른다. 사실 쉼터가 없었더라면, 쉼터 선생님들이 보살펴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버틸 수 있었을지 스스로도 회의적이다. P는 “제가 저를 잘 챙길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두려워했다. 쉼터 관계자도 “P는 허락만 된다면 더 데리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규정에 따르면, P는 전문대를 졸업하는 반년 뒤, 쉼터를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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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게시판에 올라온 ‘오빠 성폭력’ 문의 글. 네이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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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_성폭력_미투 부모 편애 속에 고통 커진 K
신고했더니 동네에선 “저년이 저럴 줄 알았어”
K는 농촌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K와 4살 터울 오빠를 남긴 채 집을 나갔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새엄마 손에서 자랐다. 새엄마에겐 함께 살지 못하는 1남1녀 친생 자녀가 있었다. 새엄마는 그중에서도 공부 잘하는 친아들을 특히 사랑했다고 했다. 재혼 뒤에는 그 감정이 고스란히 K의 오빠에게 전이됐다. 새엄마는 K의 오빠를 친아들처럼 끔찍이 아꼈고 K에겐 온갖 궂은일을 시켰다. K는 “계모라기보단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가부장제 집안에서 아들만 예뻐하는 옛날 엄마 같았다”고 말했다. 아빠도 K를 미워했다. “이혼한 엄마를 닮아서”라고 했다. 심심하면 K를 때렸고 ‘담배빵’도 예사였다.
K의 시골집은 두 건물이 한 집을 이루고 있었다. 아빠와 새엄마가 본채를 쓰고 K와 오빠가 별채를 썼다. 부모님은 별채에 있던 방 중 하나만 K와 오빠에게 줬다. 나머지는 창고로 사용했다. K와 오빠 단둘이서 한 집, 한 방을 쓰게 된 셈이다. 해가 지면 부모의 발길이 끊기는 별채, 그 위태로운 방에서 오빠는 K를 상대로 손쉽게 범행을 저질렀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다. 자고 있는 K의 몸에 오빠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슴을 더듬는 정도였다. 삽입성폭행까지 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빠를 피하기 위해 온갖 구박을 받아가며 부모님 방에 끼어서 자보기도 했다. 오빠는 방으로 돌아오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한번 화가 나면 각목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들고 K를 때렸다. 오빠가 K의 머리를 변기에 찧는 바람에 머리가 찢어져 수술받은 적도 있다. 그 지경이 되도록 아빠는 무슨 상황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K는 “그 정도로 둔한 분”이라고 했다.
5년 가까이 부모님께 얘기하지 못하고 홀로 고통을 감내했다. 오빠가 말하지 말라고도 했지만, “자기 아들을 신고해 감옥에 보낼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싶었다”고 했다. 괜히 말했다가 아무런 보호 조처 없이 오빠와 다시 얼굴을 맞대는 상황이 더욱 두려웠다. 순식간에 천 리까지 이상한 소문이 나는 좁은 시골 동네 분위기도 K를 입 다물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K가 입을 뗀 뒤 결국 오빠가 수감되자 고향 마을엔 이렇게 소문이 돌았다. “K 엄마도 떠나고 새엄마는 죽고 결국 K도 떠났어. 여자가 살 수 없는 집이야.” “저년이 저럴 줄 았았어. 사건을 조작해서 오빠를 감옥에 보냈어.”
“합의해라” “용서해라” 피해자에게 오는 압박
너무 고통스러워서 목을 맨 적도 있다. 이상하게 죽어지지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세 차례 정도 가출도 해봤다. 기껏해야 동네에 숨어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티자’ 싶었다. 공부를 잘하는 K였기에, 고교만 졸업하면 집을 나가도 살길이 생길 것 같았다.
고1 때 새엄마가 당뇨 합병증 악화로 입원했다. 전교 1등 성적표를 보여줬더니, 새엄마가 다른 환자들한테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나를 딸이라고는 생각하셨구나’ 감사했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짜 엄마 같았던 새엄마는 “우리 K 아픈 거 엄마가 다 가져갈게”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새엄마까지 없는 집… K는 ‘탈출’을 감행했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경기도의 한 가출 쉼터로 도망쳤다. 쉼터 선생님은 울면서 K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경찰 신고를 도왔다. K의 아버지한테 오빠 성폭력을 알린 것도 이 선생님이었다. 아버지가 집기를 때려부쉈다고 했다. 오빠가 아니라 K한테 화가 나서. “K를 빨리 집에 데려오라”고 “죽여버리겠다”고 고함을 치셨다는 얘기도 전해들었다.
가해 사실을 부인하던 오빠는 경찰의 계속되는 추궁에 범행을 시인했다.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K의 일관된 진술, 해바라기센터 산부인과 검진 결과 등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였다. 오빠는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K에게 수시로 “합의서 좀 써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네가 뭔데 합의서를 안 쓰냐”며 윽박질렀다. 오빠 친구들까지 나서서 K를 압박했다. 학교를 마치고 휴대전화를 켜면 오빠 친구들이 보낸 문자가 40~50통씩 와 있었다. 처음엔 문자 한 통만 받아도 너무 무서워서 발발발발 떨었다. 나중엔 “한 번만 더 전화하면 없애버릴 거”라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담이 커졌다. 오빠도, 아빠도, 오빠 친구도… “용서하라”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있다. “니들이 똑같이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어린 시절, K는 수사기관을 믿지 못했다. 신고해봐야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할 거라고 지레 체념했다. 경찰은 최선을 다해 수사했고, 오빠는 1심에서 10년, 2심에서 8년형을 선고받았다. K는 쉼터도 믿지 못했다. 답답하고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막상 겪어본 쉼터는 K를 품어준 유일한 안식처였다. 우연히 쉼터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른 새벽, 쉼터 소장님이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 문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쉼터 선생님이 “월급 받으려고 하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사랑”이었다. 같은 상처를 가진 또래와 나누는 무심한 듯 편안한 대화도 K가 안정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 “너 맞았구나” “너도 당했구나” 특별한 위로가 없는 대화였지만 고통이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K는 “지금도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밤에 혼자 누웠다가 불쑥불쑥 그 일이 떠오를 때가 있다. 가끔 오빠 친구들이 “잘 살라”는 둥 감옥에 있는 오빠 얘기를 전해오면 미치게 화가 난다. ‘어떻게 감히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연락하나’ 싶다. 하지만 가끔일 뿐, K는 행복하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취직해 회계 업무를 하고 있다. 돈을 다루는 일이 적성에 딱 맞고, 오전 9시에 출근하면 밥 먹는 시간 빼곤 오로지 ‘일만’ 한다. 기본급 250만원에 수당과 성과급을 합치면 월 300만~400만원을 벌고 있다. 쉼터에서 자립지원금 500만원을 받고 나와 월세 28만원짜리 원룸에서 시작했는데, 2년도 안 된 지금 보증금 4천만원 ‘전세’로 옮겼다. 자립 초반, 평일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편의점에서 주말엔 식당에서 ‘일만’ 하면서 돈을 모은 결과다. 아들을 교도소에 보내고 홀로 남아 지병을 앓던 K의 아버지는 1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빠와 엮인 가족도 없으니, 조만간 오빠랑은 “호적을 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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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쉼터의 현관에 놓인 신발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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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멍든 날 보고 선생님이 신고해줬더라면…
K는 “신고한 걸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쁜 사람은 성실히 경찰 조사를 받게 해서 ‘감빵’에 넣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처음 성추행을 당한 6학년 때 알리지 않은 걸 후회한다. 스스로 ‘불행 기간’을 늘린 것만 같다. “그때 신고했으면 조금 더 빨리 행복해졌을 텐데….” K는 비슷한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을 향해 말했다. “처음엔 털어놓는 게 너무너무 두렵지만,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면 개운하다”고. 오빠 성폭력 가정의 부모들에게도 말했다. “일을 덮는다고 끝이 아니다. 한번 덮으면 일은 반드시 점점 더 커진다”고. 학교 선생님들한테는 정말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가 온몸에 멍이 들어 등교했을 때, 선생님이 ‘K가 사고쳐서 맞았다’는 아빠 말을 믿지 않고 제 손을 잡고 ‘같이 신고하러 가자’고 해주셨더라면….” 가족 자원이 척박한 오빠 성폭력 피해자 K에게 가장 절실했던 건 선생님과 이웃의 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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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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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오빠 성폭력 가해자는 거칠고 피해자는 주눅 들어 있다’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장형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거점) 부소장 겸 아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6월21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친족 성폭력이 발생한 대부분 가정을 들여다보면, 가해자가 훨씬 멀쩡하고 피해자가 천덕꾸러기(문제아)인 사례가 많다”며 “가족 등 주변인들은 당연히 좀더 괜찮아 보이는 가해자의 말을 믿게 된다”고 짚었다. 오빠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가정에서 오랜 기간 문제아 취급받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전형적인 메커니즘이 있다는 얘기다.
강자가 약자한테 폭력을 행사하면 약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분노와 불안 등 ‘심리적 후유증’이 남는다. 심지어 가장 믿었던 가족에게서 겪은 성폭력은 후유증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부정적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하면 다른 방향으로 표출된다. 피해자는 사소한 일에도 걸핏하면 짜증내고 울고 화내는 아이가 되어간다. 피해자에게는 ‘안 괜찮은 아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피해자는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믿고 가해자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해 점점 더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가 더욱 쉬워지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피해자의 자아상도 상처 입는다. ‘손상된 물건 증후군’(Damaged Goods Syndrome)이라고도 한다. 피해자는 ‘나는 더럽혀졌다’ ‘나는 더 이상 온전하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다’ 같은 부정적 자아상을 갖게 된다. 부정적 자아상의 영향 혹은 반발로 자기 몸을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양상이 있다. 하나는 자해고 다른 하나는 성매매 등 문란한 성생활이다.
장 소장은 “악마가 아닌 평범한 부모”가 오빠 성폭력 가해자인 아들을 감싸게 되는 심리적인 배경도 설명했다. ‘부모가 영문을 몰랐던’ 긴 시간 동안 딸은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천덕꾸러기였다. 그 기간에 아들은 ‘딸보다 자랑스러운 자식’으로서, 부모 정체성의 중요한 축이었다. 딸의 말이 믿기지 않을뿐더러 믿고 싶지도 않다. 천덕꾸러기 딸만 조용히 하면 모두가 편안한데, 공들여 키운 자랑스러운 아들의 인생에 ‘빨간 줄’이 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극히 드물게 부모가 딸을 지지하는 ‘결단’을 내리더라도 상황이 오래 유지되긴 힘들다.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적 문제는 잘잘못이 가려졌다고 해서 곧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딸을 위해 아들을 성폭행 가해자로 인정했을 만큼 ‘할 만큼 했다’고 느끼는 부모의 입에서는 여전히 방황하는 딸을 향해 비난의 말이 나온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니?”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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