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21 18:51
수정 : 2019.08.21 21:18
|
유엔 성소수자 특별보고관 빅토르 마드리갈-보를로스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8회 국제성소수자협회 아시아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 중에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한국 일부 정치인, 종교인 차별 발언
매우 심각... 정부가 나서 역할 해야”
군형법 추행죄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강조
|
유엔 성소수자 특별보고관 빅토르 마드리갈-보를로스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8회 국제성소수자협회 아시아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 중에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혐오표현은 단지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잖아요. 누군가를 때리고, 배제하고, 학교에서 쫓아내거나 직장에서 잘리게 만드는 행위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분명히 한계는 있습니다. 혐오표현은 그 선을 넘어선 것이고요.”
21일 <한겨레>와 만난 빅토르 마드리갈-보를로스 유엔 성소수자 특별보고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한국에선 일부 정치인과 기독교인들이 공개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다. 그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혐오표현은 정부가 나서서 고심해야만 하는 영역”이란 것이다. 정부의 의무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정치인들이 혐오발언을 하지 않는 것은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시아 국가 첫 방문이다. 그는 이날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8회 국제성소수자협회 아시아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주요 인권 분야에서 특별보고관을 임명하는데, 성소수자 특별보고관은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이유로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폭력과 차별 사례를 연구하고 국제사회에 보고하는 역할이다. 그는 지난해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 조항에 포함한 충남인권조례가 폐지된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서한을 한국 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일부 종교인들이 차별에 앞장선다는 얘기에 그는 “변화를 향한 두려움, 많은 폭력과 차별은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고 짚었다.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 주어진 성역할에 충실하길 바라는 사회적 인식이 “힘의 구조가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키운다고도 봤다.
군내 성소수자를 처벌하는 군형법 추행죄(92조의6)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도 확고했다. “특정한 성정체성을 가진 인구를 선택적으로 구분한 뒤에 ‘합의된 성관계’를 처벌한다고요? 국제법 어디에도 이런 조항에 대한 근거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군의 기강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실제로 그 조항이 기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어요. 군 복무 중인 남성과 여성이 관계를 가져선 안 된다는 법 조항이 있나요?” 현재 이성인 군인 간 성관계는 법적 처벌이 아니라 내부 징계에 그친다. 그는 되물었다. “두 경우가 왜 달라야 하죠? 이 조항은 낙인과 차별을 영속화할 뿐이에요.”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건 결국 “교육과 의식”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국 정부와 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한국 상황을 완전히 연구하진 못했다”며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그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다. “법조계, 의료계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성정체성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요. 법이 필요한 건 바로 ‘존중한다’는 의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죠. 성소수자들이 직접 ‘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기도 해요.”
혐오발언을 하는 이들과 그는 기꺼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대체 왜 성소수자의 인권을 반대하는 일을 하는지 이해해보고 싶”어서다. “그 다음엔 제가 아는 것을 그들도 알게 해보고 싶어요. 성소수자의 일상을, 삶의 현실을 알려주면서요. 누구든 저와 말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 기쁘게 듣겠습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