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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7 18:49 수정 : 2005.12.28 14:19

지난 3월2일 호주제 폐지안을 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본회의장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여성계 인사들이 기뻐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자료사진

여성계 2005년 되돌아보니

올해는 여성의 권리가 한층 높아진 해였다. ‘출가외인’과 ‘삼종지도’를 내세운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밖에도 여성을 가문의 종중원으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는 등 양성평등의 기본을 이루는 제도적 성과가 줄을 이었다. 반면, 여성들을 심란하게 한 움직임들도 많았다. 저출산에 따른 출산 장려운동, 건강가정기본법을 둘러싼 논란, 실험용 난자 제공에 대한 갑론을박 등은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이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폭넓게 확인시켜줬다.

호주제 폐지, 계속되는 논란

만세! 국회에 여성들의 ‘우렁찬’ 환호가 울려퍼졌다. 국회는 3월2일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여성계의 50년 숙원’이라 불리던 큰 숙제의 매듭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호주제는 그간 양성평등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재혼 가족, 한부모 가족, 입양 가족 같은 다양한 가족의 존재를 부정해 비판을 받았다. 개정안에 따라 2008년부터는 현행 민법 중 호주제 관련 규정이 없어지게 됐다. 하지만 호적이 없어지면서 새로 시행할 신분등록제 관련 법안은 여전히 ‘합격점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1월 법무부가 마련해 입법예고한 ‘국적 및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안’이 또 다시 인권침해 논란을 낳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법무부안이 호주제 못지않게 개인정보가 많이 노출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1인1적제(개인이 중심이 되는 신분등록부)는 가족 해체가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시민단체는 법무부의 신분등록제 관련 법안으로 호주제가 이름만 바뀐 ‘눈가리고 아웅’식이 되지 않을까 안절부절하고 있다.

‘딸들의 반란’ 성공

호주제 폐지가 절반의 성공이라면, ‘딸들의 반란’은 대성공이었다. 7월21일 대법원은 용인 이씨 사맹공파와 청송 심씨 혜령공파 출가 여성들이 종친회를 상대로 각각 낸 종회회원 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성년 남자만이 종중의 회원이라는 관습법을 인정한 1958년의 대법원 판례를 47년만에 깨뜨린 것이다. 용인 이씨 사맹공파 출가 여성 5명은 99년 3월 종회가 종중 땅을 팔아 생긴 350억원을 성년 남성에게는 1억5천만원, 결혼한 여성에게는 2200만원씩 차별해 나눠주자 소송을 냈다. 청송 심씨 혜령공파 출가 여성 3명도 종중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었다.

건강한 가정? 다양한 가족?

재작년 연말부터 새해 벽두까지 울려퍼진 ‘가족 친화적’ 씨엠송.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 노래에 딴죽이 걸렸다. 아빠 없는 아이들은 어쩌나?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을 외치는 <곰 세마리> 노래도 ‘가족 차별적 노래’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부모 가정, 부모 없는 공동체 가정의 수많은 애기 곰들은 어쩌라고? 올해 1월1일부터 시행한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에 대한 정의를 ‘혼인·혈연·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규정해 오늘날 ‘다양한 가족’ 시대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 10월 국가인권위원회도 ‘혼인·혈연·입양 관계가 없이 다양한 가족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 및 가정에 대한 정의가 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법을 고치고 법률 명칭도 중립적으로 바꾸라고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결혼은 맘대로 해도 이혼은 안 돼!

올해 이혼 숙려제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17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주최 ‘이혼은 가족해체인가’ 토론회의 한 장면. 〈한겨레〉자료사진

6월23일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바뀌면서 올해를 ‘가족 정책의 원년’으로 삼았다. 이혼가족, 재혼 가족, 한부모 가족, 심지어 1인 가족까지 ‘다양한 가족’에 대한 지원을 늘이겠다는 여성가족부의 호언장담은 곧 기세가 꺾였다. ‘가정 해체’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위세를 떨쳤기 때문이다. 11월에는 이혼숙려제를 담은 ‘이혼절차에 관한 특례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혼숙려제는 협의 이혼 당사자들이 법원의 이혼절차 개시일부터 일정 기간 동안 법률적으로 ‘숙려기간’을 갖게 하는 제도다. 기간은 3개월. 이혼 전 상담에는 유료 상담도 포함돼 논란이 됐다. 이 법안은 이혼을 가정 해체로 보며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발생시켜 국가의 건강한 발전에도 장애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이 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낸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은 “이혼숙려제도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보다 더한 악법”이라며 “차라리 결혼숙려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구호만 요란했던 출산 장려운동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와 한국모자보건학회의 ‘1·2·3 운동’도 시대착오적이라는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는 출산 장려운동을 빗대 누리꾼들은 ‘그렇게 하면 40대에 파산, 50대에 병들고, 60대에 골로 간다’며 ‘차라리 1·2·3·4·5·6 운동을 하라’고 비아냥거렸다. 8월엔 지난해 합계 출산율(한해 탄생한 아기 수를 가임 여성(15~49살)의 수로 나눈 것)이 1.16명인 것으로 나타나 인구 감소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정부는 저출산종합대책을, 은행은 출산장려용 은행저축상품을 내놓았다. 언론은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는 가정을 ‘모범 가정’으로 치켜세웠다. 같은 달, 한 보수적인 여성단체는 여성가족부 후원으로 전국 여성대회를 열면서 ‘인력은 국력, 출산은 애국이다’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출산율 감소를 “퇴폐적 상황”이라며 규정한 이 단체는 “결혼이 선택이 될 수 없고, 출산은 여성의 창조적 의무”라 규정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실험용 난자 제공 논란

‘여성의 몸’에 대한 논란은 연말까지 끊이지 않았다. 11월 황우석 교수팀의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여성 연구원의 난자가 사용됐다고 <피디수첩>이 폭로했다. 그 뒤 생명윤리에 대한 점검보다 먼저 난자 기증 운동이 이어졌고, ‘생명윤리’와 ‘국익’의 논란이 팽팽하게 맞섰다. ‘생명윤리’쪽의 손을 든 여성계는 “자본과 과학이 몸집을 불리려고 생명공학 기술을 발전시키려 할 때, 인간의 몸은 도구가 된다”고 지적했다. 11월 초엔 난자를 매매한 일당이 경찰에 처음으로 적발됐다. 이래저래 공분에 찬 여성계는 1월부터 시행중인 생명윤리법에 대한 개정과 관련법 제정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인공수정, 대리모, 제대혈 관리, 난자, 배아 관련 제·개정법안이 마련되고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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