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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1 18:51 수정 : 2019.11.22 08:50

[짬] 르완다 여성모임 의장 안젤리크 튜이센지

르완다 커피협동조합 ‘뷔샤자’의 여성 농부 모임 ‘쿵가하라’를 이끌고 있는 안젤리크 튜이센지 의장이 지난 9일 ‘월드 커피 리더스 포럼’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아름다운커피 제공

2018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성평등한 나라 115위’의 후진국이다. 하지만 6위 꼽힌 아프리카의 르완다에서도 여성의 노동은 남성보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커피산업이 대표적이다. 르완다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노동력의 70%는 여성이지만, 커피는 ‘남성의 작물’로 여긴다. 밭에 나가 실제로 커피나무를 키우고 커피콩을 따는 일은 여성이 하는데 이를 판매하는 단계부턴 남성의 몫이 되고, 이 때문에 여성에겐 적절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르완다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성 농부들이 모여 농업에 대해 논의하는 ‘쿵가하라’(풍요로운 삶을 위하여·Kungahara) 모임이 생기면서다. 지난 9일 ‘월드 커피 리더스 포럼’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근에서 쿵가하라의 의장 안젤리크 튜이센지(28)를 만났다.

‘생산 노동력 70% 여성-판매는 남성’
커피협동조합 소속 여성 농부 260명
아름다운커피와 함께 ‘쿵가하라’ 결성

공동투자·교육·생산관리·인증 등
“모든 과정 여성들 스스로 의사결정”
자체 생산 커피 ‘솔브’ 최근 한국 수출

“사실 ‘쿵가하라’ 모임을 만들기 전까지 여성 농부들은 수줍어서 나서기를 주저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여성은 어떤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일을 잘 하지 못했죠. 그럴만한 동기부여도 받지 못했고요.”

르완다에서 대개 차, 커피, 바나나처럼 ‘돈이 되는’ 농업은 남성들이 도맡아 운영해왔다. 여성은 노동력만 투자할 뿐 소득을 가져가지 못한다. 콩이나 수수처럼 판매하기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곡물 정도만 여성들이 관리한다. 안젤리크 역시 커피 생산과정에서 어머니가 중요한 일을 담당해도 소득을 얻는 활동은 매번 아버지의 몫이 되는 상황을 보고 들으며 자랐다. “2011년부터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상황은 똑같더라고요. 온전히 내 시간을 할애해도 수익은 내가 아닌 남편에게 갔죠.”

그가 올 2월 한국의 비영리 재단법인 아름다운커피와 함께 ‘쿵가하라’ 모임을 만든 건 “이런 불공평한 상황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쿵가하라는 르완다의 커피협동조합 ‘뷔샤자’(Biwshaza) 안의 여성농부 모임으로 206명이 속해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3개의 소모임으로 나눠 운영하는데, 모임에선 커피 농사에 대한 교육이 이뤄진다. 어떻게 씨를 뿌리고 가지를 쳐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비료를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 정보와 경험을 나눈다. 농산물우수관리제도(GAP·굿 어그리컬쳐 프랙티스) 인증을 받기 위한 업무도 진행한다.

뿐만은 아니다. 이들은 정부의 여성 정책에 대해, 여성이 스스로 발전하는 방법에 대해,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의견이 모이면 각자 투자가능한 규모의 돈을 모아 공동투자를 하기도 한다. 땅을 빌리거나 추가 수익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축을 사는 일에도 투자금이 쓰인다. 이 때 중요한 건 “모든 의사결정권을 여성들이 행사하는 것”이다.

안젤리크는 “여성 농부들이 깨어났다”고 표현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털어놓고 공론화하면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길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커피는 여성의 역량강화와 경제적 접근성 확대를 위해 쿵가하라가 만든 커피 ‘솔브’를 수매해 지난 13일 한국에 출시하기도 했다.

“수입이 생기면서 여성 농부들이 커피 농사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됐죠. 자신이 만든 커피가 세계적으로 어떻게 팔리는지 알게 되면서 더 활동적으로 변했고요. 아이 양육 등 가족을 위한 일에도 보탬이 되니까 자랑스러워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직접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도 주체적인 존재가 된 거죠. 그 점이 상당히 기뻐요.”

쿵가하라의 등장은 여성에게만 좋은 변화일까? 안젤리크는 “커피 생산성과 품질 향상, 커피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수입이 생기면서 더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여성의 자발적,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성의 노동에 합당한 대우와 보상이 왜 산업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지, 르완다 여성들이 실증하고 있는 셈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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