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1.03 19:54 수정 : 2006.01.04 13:59

사춘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60년대 어느 날 밤, 남도 한 시골 마을에서 누룽지를 오물거리며 라디오를 듣던 나는 충격적인 노래를 만났다. 조영남 아저씨였다. “밤 깊은 골목길 그대 창문 앞 지날 때, 창문에 비치는 희미한 두 그림자…”로 시작하는 노래. 사랑의 배신 앞에 치를 떠는 한 남자의 처절한 심사라니. 그의 불안정한 고음은 뭔가 저지를 것 같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너무 맘에 들었다.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다. 이미자처럼 신파조 없이도 펄펄 끓는 격정을 담을 수 있었다니, 오, 나는 감전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내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다.

내 작은 아이의 사춘기가 몇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중1 무렵 어느 날 저녁, 불도 안 켠 방문을 열고 나온 녀석이 불쑥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사달라고 했다. 앗, 사춘기의 징조. 그때부터 녀석은 몇 시간이고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게임을 하거나 판타지 소설에 파묻혀 대부분의 주말을 보냈다. 함께 축구를 하자거나 과학전시회를 구경가자는 아빠의 요청은 퇴짜맞기 일쑤. 녀석은 점점 더 혼자만의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나를 포함한 가족 일동은 외식을 거절하는 녀석의 짜증 섞인 말대답에 번번이 열을 받았다. 정말이지 사춘기 아이들의 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영장류 한 수컷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이렇게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해도 되는 일인가? 사춘기란 마냥 까불고 놀던 어린 날들이 끝나고 문득 몸 내부에 성을 지닌 인간임을 인식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 프로그램이 깔리는 동안 몸 속 화학공장은 풀 가동을 하게 된다. 이 기간, 사춘기 호르몬의 절대 지배하에 놓인 그들은 자주 주위를 곤혹스럽게 한다. 때론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일 수도 있고 대개는 가족에게 말문을 닫는다. 대한민국의 널뛰듯 바뀌는 대입제도 또한 대한민국 사춘기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공신일 터.

아들이 원하는 대로 그저 방관하다시피 지낸 지 몇 년, 녀석은 조금씩 가족 안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자주 웃고 단답형이던 대답이 조금씩 길어 진다. 아빠와 책방에도 동행해 아빠를 감격케 한다. 그 요동 치며 빛나던 사춘기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인가? 아이들의 사춘기에 대처하는 엄마의 매뉴얼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나라도 써볼까? 사춘기의 동물 생태를 이해하고 그들이 무사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할 수 있도록 사춘기 맞춤 백신 프로그램을 실행해 줄 엄마가 있다면 아이들의 사춘기가 덜 고통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이해 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에 속수무책일 때, 가끔 나는 오래전 내 ‘사춘기의 추억’을 떠올렸다. 봄의 황사처럼 건조하고 비릿한 바람이 머릿속을 꽉 채웠던 그 무렵, 무협지와 홍콩 무협영화의 도움없이 내가 그 시기를 통과해 나올 수 있었을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자란다. 눈물겹다.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m@empal.com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