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0 17:18
수정 : 2006.01.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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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아줌마 최윤희·오은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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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촉망받는 배우였던 전업 주부 마리 테레스 크뢰츠-렐린은 성질 까다로운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주부혁명닷컴’이란 웹사이트를 만들고 유명해졌다. 그는 주부와 돼지에게 공통적인 억울함이 있다고 했다. ‘똑똑하지만 알아주지 않고, 깨끗하지만 더러운 곳에서 살아야 하고, 스트레스에 짓눌려있고, 매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희망과 꿈이 있는 한, 인생의 2막을 올릴 수도 있는 법. 여기, 두명의 주부들이 있다. 이들은 꿈과 용기를 모두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에 과감히 탈출구를 만들고 ‘주부혁명’을 이뤘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펴낸 책에서 새해 희망과 용기를 발견해보자.
바닥을 치면서 용기를 얻다= 인기 강사 최윤희씨(56)는 최근 <당신의 인생을 역전시켜라>(여성신문사)는 책을 냈다. 지금에야 텔레비전 주부 프로그램 패널로 유명한 그이지만 한때 인생의 바닥을 치면서 용기와 기회를 얻었다. “고된 경험은 자산”이라고 얘기하는 그의 성공 열쇠는 특이하지 않다.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아줌마 정신인 따뜻한 가슴을 갖고서.” 그는 15년 동안 전업 주부 생활을 했다. 남편의 부도로 생짜로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되었다가 겨우 월세방 한칸을 얻었을 때 그의 눈앞에 ‘주부경력사원모집’ 공고가 보였다. 두 아이 엄마로 38살에서야 직장에 첫 출근했다. 주변의 도움을 얻어 경력증명서를 ‘위조’해 얻은 직장이었다. 카피의 ‘ㅋ’자도 모르고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해 구박의 연속이었다. 상사는 그에게 온갖 잔심부름을 시키면서 일을 주지 않았다. 그는 ‘아줌마’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따뜻한 가슴으로 동료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상사에겐 용감무쌍한 직언도 마다하지 않으며 점점 신임을 얻었다. 늦깎이인만큼 피나는 노력은 필수. “식음을 전폐하며 일에만 매달렸던 결과” 최고의 카피라이터가 됐다. ‘행복학’ 강사로 유명해진 요즘도 그는 매일 4시에 일어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시간 동안 산행을 한다. 위기가 닥칠 때는 세상의 모든 힘센 구호들을 총동원한다. 아자! 빠샤! 화이팅! 덕분에 지금은 하루에 2~3개씩 강의를 하면서 매일 10개 정도의 강의요청을 거절해야만 하는 ‘인기 강사’가 됐다. “인생 3대 못난이는 후회, 걱정, 포기예요. 스스로 늘 한계를 시험해보세요. 바보, 울보였던 저도 해냈잖아요.”
울보였다던 주부 15년차 최윤희씨…
노력끝에 최고 인기강사로 뜨고
아이 둘 데리고 유학간 오은하씨…
한때 ‘인생 종쳤다’고 생각했다
저절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잘 나가는 여자의 우쭐한 성공기가 아니다. 유학생 엄마의 고군분투 인생역정 개척기다.
<매일경제>와 <씨네21>의 기자로 일했던 오은하씨(38)가 펴낸 책 <내 꿈이 뭐였더라?>. 이 제목은 “애 키우고 살림하다 인생 종쳤나 싶을 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었다. 5년 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다 삶의 분기점은 2002년, 월드컵 독일전을 앞두고 왔다. 신생아인 둘째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세상 밖으로 혼자 쫓겨난 듯한 느낌”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순간, 화면 가득 깜짝 놀랄 글귀가 나타났다. 꿈★은 이루어진다. “아니, 근데 내 꿈은 뭐였더라?” 그에게는 말도 못하게 큰 포부가 있었다. “세상의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꿈이었다. 아이들 둘을 데리고 장학금 받아 유학을 가겠다는 포부를 갖고 공부한 결과 2003년 ‘대한민국 전업주부 사상 최초’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는 끊임없이 ‘삽질’을 했다고 고백한다. 낯설고 물 선 데서 오는 온 가족의 좌충우돌 고행은 말하나 마나. 아내를 따라 미국으로 와 1년 동안 아내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던 남편에게는 전업주부의 긍지를 끝없이 심어줘야 했다. 아이들 영어? 절대로 저절로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주눅 든 아이의 기를 살려주려고 엄마는 언제나 ‘울트라 수퍼 메가톤급 히로인’이 돼서 백인들 앞에서도 당당한 체 폼을 잡아야만 했다. 학생과 엄마 구실을 오가며 그는 아직 미국에서 고군분투중이다. 텍사스주립대 라디오-텔레비전-필름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생이며, 오스틴의 한 교회에서 한글학교 선생님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 그는 그냥 ‘유색인종’이지만, 세상을 다 줘도 안 바꿀 꿈을 먹고 사는 대한민국 주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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