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7 17:46
수정 : 2009.01.2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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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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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오늘부터 박정상(25) 9단의 ‘흑돌백돌’을 연재합니다. 바둑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박 9단은 발랄하고 젊은 감각과 발빠른 필치로 바둑세계의 이면과 에피소드, 때로는 명장면을 그려냅니다.
현재 한국 바둑계에서 부동의 랭킹 1위를 고수하며 세계 바둑계의 정점에 서 있는 이세돌 9단. 그의 날카로운 수읽기와 폭발적인 중반 운영력은 전세계 기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내가 세돌이형을 처음 본 곳은 2000년 프로 입단 직후로, 젊은 기사들이 연습하는 충암연구실에서다. 형은 당시 이미 32연승을 기록하며 한국 바둑계 4대 천왕(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을 위협하는 신예군의 선두주자였다. 자주 충암연구실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성적 좋은 기사들과 속기로 연습바둑을 두었다. 막 프로에 입단한 나는 항상 구경만 하는 쪽이었는데, 2001년 3월쯤 형이 나에게 연습바둑을 두자고 말해 기뻤던 기억이 난다. 어떤 날은 4~5명의 기사들과 같이 밤새우며 아침 7시까지 연습바둑을 두고 아침 먹으러 간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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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형과 있었던 일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5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엘지(LG)배 세계기왕전 8강전 때의 일이다. 같은 해 5월 서울에서 벌어진 32강, 16강전에서 이창호 9단이 중국의 16살 천재소년 천야오예에게 지는 등 중국의 거센 돌풍에 휘말렸다. 8강전에 남은 한국 선수는 나와 세돌이형뿐이었다. 일본 기사는 전멸했고, 나머지 6명은 중국 기사였다.
한국이 두 명밖에 남지 않아 매우 부담스러운 대국이었다. 8강전 대결 가운데 세돌이형이 왕위후이에게 가장 먼저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나는 재중동포 박문요(퍄오원야오)에게 패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는 패배의 아픔을 견디기 힘들어 술잔을 기울였고 세돌이형이 같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약간의 취기가 돌 때 형이 나에게 말했다. “오늘 네가 대국하는 걸 보니 너무 경직돼 있더라. 부담 되는 싸움일수록 과감하고 대담하게 두어야 해!” 또 “난 당장은 약간 손해 같아 보이더라도 상대가 어려워할 만한 수, 응수하기 까다로운 수를 찾아서 둬. 난전(亂戰)이면 자신 있으니까.” 그때 해줬던 충고는 지금도 나의 방향키가 돼주고 있다.
언젠가 대낮에 연구실에 있던 몇명을 불러 호프집에 앉혀놓고 “나 결혼한다”고 해서 매우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뒤 세돌이형은 결혼했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4년 전, 파마했던 나에게 나이 들어 보인다고 놀리셨던 형수님, 그리고 귀여운 딸 혜림이와 함께 마냥 행복한 표정이다.
형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세계 속의 한국 바둑을 이끌며 계속 전진했으면 좋겠다.
세돌이형은 선배님들한테는 자랑이요, 후배들한테는 늘 이뤄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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