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0 21:16
수정 : 2009.02.1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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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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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2004년 3월2일 오후 6시.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제47기 국수전 결승 도전 5번기의 최종 결과가 나왔다. 수많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은 이는 세계최강 이창호 9단을 3대2로 누르고 새로운 국수에 등극한 ‘독사’ 최철한이었다. 한달 뒤 기성전에서도 이창호 사범을 누르고 단박에 2관왕이 됐다. 이창호 일인천하에 제동을 건 최철한의 등장은 이처럼 선이 굵었다.
최철한 9단은 심성이 곱고 여리다. 하지만 바둑판 앞에서는 상대를 처절하게 몰아붙인다. 연구생 시절에도 나와 박영훈, 송태곤 등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빛처럼 빠르게 전진해 만 12살에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2000년에는 농심배 한국대표로 선발되는 등 한국바둑의 차세대 기대주였다.
2001년 초 소소회(젊은 프로바둑기사 연구모임) 모임 전까지 최철한에 대한 인상은 ‘말이 없고 늘 인상쓰고 있는 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달랐다. 본인은 “원래는 그랬는데 워낙 시끄러운 소소회 친구들에게 물들었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주요 타이틀을 따낸 철한이는 세계대회에 도전했다. 그런데 유독 중국기사를 만나면 성적이 좋지 않았다. 2004년 5회 응씨배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 9단에게 패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4회 대회까지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가 석권한 대회. 철한이는 당시 누리꾼들의 원성을 샀는데, 마음 여린 철한이는 바둑뉴스 댓글을 보며 가슴아파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슬럼프가 있었다. 막 입단한 신예기사에게 자주 지는 모습을 보였고, 1~3위를 유지하던 한국랭킹도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잊혀져 가는 것인가라는 걱정이 생겼다. 그러나 최철한은 죽지 않았다. 맹독에 날카로운 이빨을 더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장기인 공격력은 더 강렬해졌고, 수읽기는 깊어졌다.
지난해 응씨배(6회) 대회가 부활의 무대였다. 최철한은 16강전에서 중국의 최강자 구리 9단을 녹다운시켰고, 8강전에서 중국의 박문요 5단에 완승을 거뒀다. 4강부터는 한이 맺힌 듯 응씨배에 모든 초점을 맞추며 준비를 했다. 지난해 9월 타이에서 열린 4강전 상대는 중국의 류싱 7단. 류싱은 “최철한의 최근 2년의 시합을 모두 검토해 보았다. 사고방식이 매우 단순하고 변화가 없다”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응씨배에 모든 걸 걸고 싸운 철한이는 2대0으로 완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이 매우 좋았으며, 철한이의 부활이 내 일처럼 기뻤다.
이제 응씨배 결승(3월 초)에서 이창호 9단과 ‘형제대결’을 앞두고 있다. 요즘 매일 철한이와 연습대국을 하는데 응씨배 결승에 임하는 그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한국바둑리그에서 2년동안 같은팀 선수로 있었던 이창호 사범님께는 죄송하지만, 난 철한이가 응씨배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완전부활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최철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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