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0 18:32
수정 : 2009.03.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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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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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프로기사들도 나라를 대표해 세계대회에 나가는 것은 꿈이고 목표다. 나 역시 어린시절부터 그것을 꿈꾸며 연습해왔고, 지금껏 13번 한국대표로 세계대회에 출전했다. 보통 7~8명의 한국대표 기사들이 참가하는데, 다같이 호텔방에 모여 대국을 준비하며 포석연구나 최신기보 검토를 하는 경우가 많다. 매우 수준 높은 연구가 이뤄지는 만큼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밖에 나가면 언제나 박영훈 9단의 방에서 모이곤 했는데 “왜 매번 내 방에서만 모이는 거야! 방이 너무 지저분해지잖아!”라고 불만을 쏟지만 다음날에도 영훈의 방에서 모인다. 산책을 하거나 간단한 보드게임을 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일본에서 열린 도요타덴소배 세계바둑왕좌전 때는 호텔방에 모여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 일본전을 보았다. 이승엽 선수의 역전 투런 홈런에 목진석 9단과 얼싸안고 괴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도요타배 1회전 시합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쿠바와의 결승전을 시청했다. 나와 영훈이, 진석이 형이 흥분상태로 보았고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 한상훈 3단은 조용히 시청했다. 하지만 9회말 쿠바의 병살타로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에는 ‘돌부처’를 포함해 다같이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2006년 9월 대전에서는 삼성화재배가 열렸다. 16강전을 마치고 주최쪽에서 마련한 만찬회가 있었는데 내 옆에 중국의 구리 9단, 앞에 창하오 9단이 앉았다.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재학중인 나는 그전부터 알고 지내던 구리에게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창하오(당시 30살)는 우리랑 나이 차이가 조금 나잖아. 넌 어떻게 호칭하니?” 그러자 구리가 말을 했다. “오리!” 바로 창하오의 별명이었다. 중국기사들은 10살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어도 별명을 부르고 장난을 친다고 했다.
몇 번의 건배로 얼큰해진 나와 구리는 맥주 한병을 들고 일본의 기성 야마시타 게이코 9단에게 갔다. “한-중 기사들은 경기를 떠나서도 교류가 많은데 일본 기사들과는 별로 어울린 적이 없어요!” 라며 따지듯 묻는 우리들. 야마시타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일본에 오면 좋은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전날 밤 실례를 범한 것 같아 얼굴을 붉혔음은 물론이다.
우리들끼리도 더 잘 알게 된다. 2007년 8월 대만 중환배 때다. 8강전이 끝나고 호텔 5층 야외 풀장에 갔다. 나와 이창호 9단, 조한승 9단, 최철한 9단, 박영훈 9단과 참관하러 온 한해원 3단, 이민진 5단이 함께했다. 잠수대결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자꾸 코에 물이 들어가서 수영하기 힘들다는 이창호 사범의 모습에 모두들 즐거워했다.
세계대회는 좋은 승부뿐 아니라 즐거운 추억을 많이 남긴다. 더욱이 세계의 일류기사들과 교류를 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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