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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1 21:07 수정 : 2009.04.21 21:43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한·중·일과 대만의 329명이 참가한 14회 엘지(LG)배 세계기왕전 통합예선전이 20일 끝났다. 본선 진출자는 한국 9명, 중국 7명, 일본은 0명. 세계 바둑계의 판도가 점점 한-중전이 돼가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16명을 가리는 예선 결승에서 한-중전은 5판이었고 한국의 3승2패였다. 특히 김승재 2단과 강유택 2단 등 어린 신예들이 중국 기사를 물리치고 본선에 오른 것은 큰 수확이었다. 중국의 기사들은 대부분 속기로 일관했고, 감각이 좋지만 집요하게 수를 읽어가며 끈기있게 두는 면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내가 예선 준결승에서 이긴 중국의 황이중은 2년 연속 세계대회 4강까지 진출한 강자인데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김지석 5단에게 진 세계대회 우승 경험의 뤄시허도 그랬다. 김지석은 국후에 “저런 스타일은 두기가 편하다”고 했다. 물론 셰허, 추쥔, 저우허양 같은 진중한 스타일의 기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중국 기사들이 감각에 의존했다.

세계대회 가운데 엘지배나 삼성화재배, 비씨카드배 같은 통합예선전은 한·중·일 3국의 젊은 기사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다. 누구에게나 참가 자격이 있는 예선전과, 수없이 이뤄지는 국제 격돌, 그리고 시합이 끝난 뒤 식사를 같이 하는 등의 교류까지. 그렇기 때문에 중·일의 기사들은 떨어진 뒤에도 귀국을 미룬 채 관전을 하기도 한다.

내가 20일 저녁 예선 결승 16판의 마지막 대국과 복기를 마친 시각이 7시. 최철한 9단이 일본 기사들과 함께 있다며 빨리 한국기원 근처 식당으로 오라고 전화했다. 이미 원성진·박영훈·목진석 9단 등 한국 기사들이 자리를 잡았고, 고노 린 9단을 비롯한 많은 일본 기사들이 불고기에 맥주를 곁들이며 즐겁게 어울렸다.

과거에는 중국 기사와의 교류가 많았다. 그러나 중국 기사와는 팽팽하게 대립하는 형국이어선지, 요즘은 일본 기사와 더 친하게 지낸다. 잘생긴 얼굴의 쓰루야마 6단은 한국의 여성 기사들이 권하는 잔을 거절하지 못하고 5~6잔을 마신 뒤 정신을 못 차린다. 한국의 젊은 기사 가운데 가장 술을 못 마시는 이영구 7단이 “나보다도 약한 것 같아”라고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이런 자리에서도 바둑 얘기는 나오기 마련. 일본 기사들도 “중국 기사들은 한국과 일본에 견줘 착점 속도가 빠르다”는 평을 내놓았다. 보는 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중·일 3국의 기사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최철한 9단이 응씨배 결승 대국(23일)을 위해 새벽같이 출국해야 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일본 기사들은 “최철한 파이팅!”을 외치며 건배를 했다. 한국 기사들도 우승하거든 크게 한턱 내라고 압력을 가했다.

한·중·일 프로기사들은 늘 전선에서 만나는 적이다. 한 수 한 수에 온 힘을 쏟는 지옥의 승부사들이다. 그러나 마음을 풀어놓고 상대방을 품평하는 고즈넉한 순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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