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02 18:31
수정 : 2009.06.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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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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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10년 전만 해도 프로 바둑기사가 저녁 9시에 시합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바둑리그가 생겨나면서 바둑TV 생방송으로 저녁 7시, 9시에 대국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졌다.
지난달부터 2009 한국바둑리그가 8개월 동안의 열전에 돌입했다. 2004년부터 시작했으니 어느덧 6회째다. 올해는 경제 한파로 인해 한 팀이 줄어든 7개 팀으로 개막을 하게 되었으나, 각 팀 감독님이 모두 우승을 자신할 만큼 치열한 승부를 예고한다.
초기 한국바둑리그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참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바둑리그는 단체전이지만, 초창기에는 개인전에만 익숙했던 프로기사들이기에 6명으로 구성된 ‘팀’ 보다는 ‘개인’ 이 먼저였다. 팀워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팀원이 시합일 때 응원하러 오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어떤 선배 기사는 팀이 몇 대 몇 상황인지 모르는 채로 시합에 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2006년부터는 ‘감독’의 자리가 생겨났다. 또 주장은 주장과, 두 번째 선수는 상대 2장과 순서대로 싸우던 룰을 벗어나, 대국 개시 일주일 전 감독의 오더 제출을 통해 대전 상대가 정해지게 됐다. 각 팀의 보유선수도 한 명씩 늘어서, 컨디션에 따라 출전선수를 가리는 것도 감독의 몫이다. 감독은 회사와 선수와 가교 역할도 해야 하고 팀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에 능력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2006년 영남일보는 꼴찌의 수모를 겪었으나 사령탑을 최규병 감독님으로 교체한 뒤에는 2007·2008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팀의 기량이 셌지만 어렸던 팀원들을 똘똘 뭉치게 한 최 감독님의 리더십이 더 큰 평가를 받았다.
2006년 내가 소속됐던 지에스 킥스(GS Kixx)의 팀 분위기가 매우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성적으로 나타나 정규리그 1위로 바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고, 플레이오프를 통해 올라온 한게임 팀과 우승을 다투게 됐다. 당시 우리 팀은 백성호 감독님을 필두로 84~85년생 또래들로 구성돼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결승 3차전까지 2 대 1로 앞선 채 홍민표 6단이 우리 팀의 4번째 주자로 나섰다. 마지막 기사인 나는 민표가 대국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가기 전 “네가 끝내고 올래, 아니면 나에게 기회를 줄래?”라고 물었다. 민표가 웃으며 “그냥 내가 끝내고 오지 뭐”라고 했다. 이 대화는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시합에 나갈 수 있었던 팀 분위기의 단면이다. 민표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며 우리 팀의 우승을 확정 지었다.
올 바둑리그에서도 우승을 위해선 ‘실력과 팀의 단합’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한 한국바둑리그가 연말에는 어떤 성적표를 남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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