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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02 17:39 수정 : 2009.11.02 17:39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1990년대 중반 무렵 세계 여자프로 바둑대회가 생기면서 한·중·일 삼국의 여류기사들이 자국의 명예를 걸고 맞붙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대회 판도는 중국이 단연 최강이었고, 일본이 두 번째, 한국이 가장 성적이 좋지 못했다. 한국은 1990년이 돼서 매년 여자 프로기사들을 뽑기 시작했다. 그전 여자 프로기사는 단 두 명뿐이었으니, 수십년의 준비 시간을 갖춘 중국·일본에 견줘 시간과 자원이 부족했다.

그런데 중국을 떠나 미국에 있던 세계 최강의 루이나이웨이 9단이 1999년 객원기사로 한국에 오게 됐다. 여자 프로무대를 휩쓴다면 큰일이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여자기사들이 루이 9단을 목표로 정진할 수 있다는 명분이 더 강했기에 받아들였다.

판단은 정확했다. 4~5년이 지나자 루이 9단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국내 선수들이 성장해갔고, 박지은 9단, 조혜연 8단의 쌍두마차를 필두로 해 세계 여자프로 바둑대회에서 한국이 우승을 거두기 시작했다.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90년대 중반의 멤버를 그대로 출전시킨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한국 여자기사들의 괄목성장에 자극받은 중국이 절치부심, 젊고 재능 있는 여기사 발굴에 노력을 기울였다. 남자 세계대회 우승자 출신 위빈 9단과 한때 중국랭킹 1위 왕레이 8단이 여자대표팀 코치를 맡아 하루 10시간 이상 훈련시켰다. 그 결과 최근 한국 여자바둑은 중국에 다시 최강자 자리를 내준 느낌이다.

한·중·일의 여자프로 5명이 나와 연승전 방식으로 벌이는 지난해 정관장배. 중국은 3명의 기사를 남긴 채 두 명만으로 우승을 거둬 한국에 치욕을 안겼다.

올 9월에 시작된 정관장배 대회 1라운드에서도 중국의 강세였다. 중국의 신병기 왕천싱 2단의 3연승 행진에 한국은 두 명의 기사가 탈락했다. 당시 경기를 지켜봤는데, 한국 여자 신예들의 바둑은 의욕이 앞서고 투박한 반면, 왕천싱의 바둑은 노련하고 영리했다. 대국을 지켜본 다른 남자 기사들도 한-중의 기량 차이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여자 국가팀 시스템이다.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감독·코치의 지도 아래 축구대표팀처럼 체계적인 훈련을 거듭했다. 합숙을 통해 바둑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고, 최상위권의 남자 일류기사들과 연습대국을 하면서 강팀을 만들어 냈다.

모든 스포츠에는 감독과 코치가 있고, 체계적인 훈련이 있다. 이제 바둑도 예외는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갈 필요가 있다. 다행히 한국기원에서 여자프로 훈련팀 창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훈련팀에서 체계적인 연습이 이뤄져 다시 세계 여자바둑계를 호령하는 날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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