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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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시간 5시간때 전성기
1~3시간 속기전 분발해야
이창호 ‘3가지 역경’ 넘어야 웃는다① 속기바둑제한시간 5시간때 전성기
1~3시간 속기전 분발해야
② 이창호 키즈
최철한·박정환 등 기대주
‘돌부처 바둑’ 너무 잘 알아
③ 심적 부담
응원이 되레 짐이 될수도
승부 즐기는 여유 필요해 “친근한 이웃이 이민간 것 같다.” 한때 13개 타이틀을 차지했던 이창호(36·사진) 9단이 무관이 되자 한 바둑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팬들의 가슴은 구멍이 뻥 뚫린 듯 허전하다. 첫 타이틀(1989년 바둑왕전) 이후 21년6개월 동안 워낙 견고했기에 충격은 컸다. 14일 최철한 9단과의 국수전 방어 4차전 패배로 무관이 되던 날, 한 팬은 “토끼해 액땜으로 심기일전하라”며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20일 비씨(BC)카드배 32강전에서 김주호 9단에 무너지자 아쉬움은 더 커졌다. 그런데 최규병 9단은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이창호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하게 무관심하라. 그럼 살아날 것이다.” ■ 승부사의 모진 운명 이창호 9단은 한국 바둑의 형식적 변화를 온몸으로 부닥치며 승부호흡을 이어왔다. 이창호보다 두살 적은 김만수 7단은 “70년대생이 공부할 땐 속기를 몰랐다. 초시계는 프로에 입문해서 알았다”고 했다. 이창호는 생각시간으로 5시간을 허용하던 때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1~3시간 정도로 짧은 속기바둑 추세가 일반화하면서 이창호보다는 젊은층 후배 기사들이 유리해졌다. 스튜디오 대국장도 조명 등으로 불편해졌다. 11살 입단해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서 대국을 했고, 저녁도 못 먹고 10시간 이상 앉아 있어야 했던 승부사의 길이 워낙 힘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버지가 모든 일정을 챙겨주다 몸이 불편해지면서 신경이 많이 분산된 것도 사실이다. ■ 외로운 싸움의 한계 욱일승천하는 최철한 9단, 차세대 기대주 박정환 9단 등은 모두 이창호 키즈다. 이창호는 모든 선수들의 이상이며 목표였다. 누구나 이창호를 공부했다. 인터넷을 통해 그의 기보는 모두 공개됐고, 철저히 연구됐다. 신예 기사들은 공동연구를 통해 감각을 벼리고, 심지어 이세돌 9단도 바둑교실에서 후배를 가르치면서 수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이창호는 철저히 혼자의 길을 걸어왔다. 제아무리 바둑의 신이라도 여럿한테는 당할 수 없다. 이창호한테 밀렸던 많은 기사들은 이창호 집중분석을 통해 그를 괴롭힌다. ■ 그를 편하게 둬라 최규병 9단은 “지금은 팬들의 시선이나 관심, 응원조차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섭섭할 정도로 이창호에게 무관심하라”고 주문한다. 전성기 때처럼 승부를 관조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의 회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최 9단은 “압도적인 일인자로서의 기억들을 버리고, 기대치를 좀더 낮추어서 이창호를 바라보면 더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성룡 9단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타이틀을 따는 것은 이전처럼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정상급 기사로서는 오래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승인 조훈현 9단은 모범이다. 이창호의 손에 권좌에서 물러난 조훈현은 20년 만에 무관으로 떨어진 뒤 세계대회에 집중, 8차례 정상에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아내 이도윤씨의 내조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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