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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05 19:55 수정 : 2011.04.05 20:59

박지은 9단

학벌·간판보다 실력 중시…중학교 중퇴 뒤 프로 입단
연구생 1조 첫 여성 ‘등록’
“남녀 성적차는 노력 차이…한국 바둑기풍 ‘이창호류’”
매서운 지적 쏟아내

정관장배 우승 이끈 박지은 9단

학교 꼭 가야 하나?

당돌한 중학생 아이는 아버지부터 설득했다. 성공. 그러나 학벌이나 간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세태가 두려웠던 어머니는 반대했다. 그래도 특기생으로 고교, 대학 가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아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 진짜 프로 돼서 효도할게요.” 그렇게 뜻을 관철한 지 1년, 아이는 프로에 입단했고 이후 한국 여자 바둑 최강자가 된다.

1997년 입단 뒤 2008년 국내 최초로 여자 입신(9단)에 오른 박지은(28·사진)은 이단아다. 부드러운 미소 뒤엔 차돌멩이 같은 옹골참이 있다. 지난달 28일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 최강전에서 벼랑 끝에 몰린 한국에 우승을 안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선수 3명을 잇달아 꺾고 질주하던 중국의 주장 루이나이웨이 9단의 기세도 강단있는 박지은 앞에선 미풍이었다. 지난해 대회 때 막판 4연승으로 정관장배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을 기억하는 팬들은 듬직한 ‘맏언니’에 반했다.

1일 한국기원에서 이 괴력의 주인공을 만났다. 버거운 상대를 이긴 비결을 묻자, “이기려고 하면 잘 안된다. 진짜 이긴다는 생각 안했고, 욕심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대회까지 포함해 세계 최강 루이와의 맞전적은 9승14패. 반타작도 안 되지만 국내 여기사 가운데는 수준급 승률이다. 그는 “후배들이 긴장한 것과 달리 큰 대회 경험 덕분인지 차분하게 두었다”며 “최근 2~3년 동안 주요 대회에서 난적 중국에 우리의 힘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한국 대표팀에 합류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당시 탈락의 아픔을 겪었던 박지은은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상비군 훈련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나중 선발전에서 떨어진 것은 아쉽지만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전사’란 별명에, 눈빛이 매서운 박지은은 공격적 기풍의 소유자. 애초 한국기원 연구생 1조에 여자가 들어간 것은 전무후무한 일. 그는 남자들과 한솥밥을 먹은 이때 가장 많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지은의 프로 입단 이후 연구생 제도는 남녀가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지은은 “프로에서 경쟁해야 한다면 연구생 제도도 남녀 구분하지 않고 과거처럼 단일리그로 편성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입단 때만 성적을 분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강성은 기전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과 연결된다. 그는 “남녀의 성적 차이는 결국 노력의 차이”라며 “열심히 하면 남자를 이기지 못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일부 여기사들은 “남녀가 똑같은 무대에서 경쟁하는 바둑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상반된다. 그의 독창적인 시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박지은은 현재 한국 기사들의 바둑 기풍이나 문화를 ‘이창호류’라고 정의했다. 근 20년간 일인자로 군림했던 이창호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사들은 알게 모르게 이창호를 닮아갔다”는 것이다. 당대 일인자가 끼치는 바둑계 전체의 영향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다. 그는 “체력이 부치면서 이창호 사범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승부사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한국 여자 바둑 최후의 수문장이며 자존심인 박지은도 약점은 있다. 국내 3대 여류대회 타이틀이 없기 때문이다. 또 루이 9단한테는 강하지만, 조혜연 9단한테는 약하다. 비교적 낙관파여서 앞서다가도 역전패당하는 경우가 있다. 박지은은 “과거에는 속기파에다 손이 빨리 나가 경솔했지만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다”며 “마무리 능력을 보강하고 있으며, 더 노력해서 타이틀을 꼭 따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홍익대 부근에 개인 연구실을 차린 박지은은 “하루 2시간씩 집중적으로 바둑 연구를 한다”고 했다. 박영훈 9단이나 김승재 4단, 김미리 초단이 공동 연구하는 친한 후배들이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트레이너와 일대일로 체력을 단련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기분 전환을 위해 가끔 국가대표 축구 경기도 본다고 하는데, 이청용(23·볼턴 원더러스)이 “귀엽다”고 했다. 그런데 박지은이야말로 중장년 바둑팬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귀염둥이 아닐까. 여리여리하면서도 보이시한 매력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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