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03 19:36
수정 : 2011.05.0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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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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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 동갑’ 한-중 1인자
결승5국까지 가는 명승부
이세돌 “질 수 없다” 역전승
중국세 저지하며 자존심 회복
2년전 엘지배 패배도 되갚아
비씨카드배 ‘2연패’ 기염
2001년 2월, 당시 18살 이세돌은 5회 엘지(LG)배 세계기왕전 1, 2국에서 절대강자 이창호 9단을 꺾는 돌풍을 몰고왔다. 비록 3, 4, 5국에 져 미풍으로 끝났지만, 이 대결은 이세돌을 일약 전국구로 띄우는 계기가 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1년 4월28일. ‘개성파’ 천재 이세돌이 한국 바둑의 명승부에 다시 한번 화룡점정을 찍었다. 시즌 첫 세계대회인 3회 비씨(BC)카드배에서 극적인 3-2 역전승으로 중국의 영웅 구리 9단을 침몰시킨 것이다. 한-중 일인자이며 28살 동갑내기가 벌인 자존심 대결에 조마조마하던 팬들은 승리를 향한 이세돌의 집요함에 열광했다. 최병규 9단은 “집중력에서 이세돌이 앞섰다. 이세돌을 정점으로 세계바둑이 정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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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기에 눌린 구리 이세돌은 평소 “구리와 바둑을 두면 즐겁다”고 말해왔다. 진정 고수들의 세계에서 나올 법한 얘기다. 그러나 태양은 하나다. 더욱이 이세돌은 2년 전 엘지배 세계대회 결승에서 구리에게 진 악연이 있다.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이 패배 이후 6개월간의 휴직 등 파란을 겪었다. 이번엔 앙다문 입술이 상징하듯 결연한 각오가 드러났다. 1국 패배 뒤 2, 3국을 연속으로 제압했고, 4국에 주춤했지만 5국에 불계승으로 판을 갈랐다. 김만수 7단은 “바둑 전체의 내용은 구리가 좋았다. 하지만 승부욕과 이기겠다는 의지에서는 이세돌이 앞섰다”고 평했다. 박치문 <중앙일보> 전문기자는 “이세돌의 바둑은 단검 하나만 들고 화살이 비오듯 하는 적진을 돌파하는 것 같다. 상처를 입어도 결국엔 적장의 심장에 일격을 날린다”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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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대결의 내상은 크다 큰 경기 패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준다. 1989년 1회 응씨배 결승 5국에서 조훈현 9단에게 2-3 역전패를 당한 녜웨이핑 9단은 잊혀졌다. 대륙의 천재 마샤오춘 9단도 동양증권배, 후지쓰배, 엘지배,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에게 완패하면서 일어서지 못했다. 1991~2002년까지 이창호 9단의 대 마샤오춘 9단 전적은 25승6패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구리가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구리는 이번 대회 이전까지 세계대회 결승 7전7승 가도를 달렸다. 웬만해선 돌을 던지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성향도 강하다. 하지만 비씨카드배 5국에선 1집반 차이가 나자 돌을 거뒀다. 정동환 한국기원 기전팀 차장은 “워낙 치열한 접전이었기 때문에 패배한 구리는 심리적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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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힘은 무엇인가 이세돌은 유행하는 중국식 포석도 거부하고, 남들이 잘 두는 행마도 거부한다. 오로지 자기류의 길을 가는 그의 바둑은 초반이 취약하다. 하지만 중후반 강력한 흔들기와 정교한 수읽기, 형세판단 능력으로 판을 뒤집는다. 물론 이번 싸움은 쉽지 않았다. 이세돌의 누나인 이세나 아마 5단은 “동생은 구리가 예전의 컨디션을 되찾았다고 했다. 웬만한 상대는 중반 가면 1~2번 뒤집을 기회가 오는데 구리한테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이세돌은 평소 “판의 유불리를 떠나 언제나 최상의 수를 찾는다”고 말했다. 한 대회 우승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실전은 가장 큰 스승이다. 이세나씨는 “동생이 올해 목표로 내세운 ‘중국세 저지’ 약속을 지킨데다 엘지배 결승 패배의 설욕, 세계 최강 자존심 회복까지 세마리 토끼를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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