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18 18:09
수정 : 2011.05.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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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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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대회 시드 못받고
예선뛰며 자존심 상처
4월 엘지배서 백의종군
최근 한달 12승1패 승률
무관 탈출, 서서히 시동
서울 강남 일원동 집 뒤의 대모산에 오르는 일이 일주일에 2번. 부인 이도윤씨와의 부부동반 산행을 하면 머리에 열이 오르는 상기증도 가라앉는 모양이다. 고도의 집중력 싸움엔 체력이 기본이다. 대국 수가 줄어들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것도 도움이 됐다. 몸의 리듬을 회복하면서 바둑도 더욱 환해진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지난달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던 이창호 9단이 반등을 시작했다. 최근 12승1패의 승률은 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 백의종군의 힘인가 22년 만에 정상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이창호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굵직한 대회에 시드를 받지 못하고 예선부터 뛰어야 하는 점이다. 첫 시련은 2월에 펼쳐진 후지쓰배 예선전. 3차례 대회 우승의 화려한 경력은 100분의 1집의 효용도 없었다. 다만 랭킹 9위여서 본선(32강) 진출을 위해 예선 두판만 통과하면 되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하지만 첫판에 나가떨어지면서 쓴맛을 봤다. 비씨카드배도 32강전에서 탈락했다. 진짜 백의종군은 4~5월 엘지(LG)배 예선. 본선(32강)에 들기 위해 치른 5차례 예선에서 이창호는 박영찬 4단, 오야 고이치 9단, 스웨 5단, 리허 3단, 홍성지 8단을 모두 제압하며 본선에 올랐다. 아내 이도윤씨는 “등산 외에 특별한 운동을 하는 것은 없다. 운이 따른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 낯가림과 해외원정 징크스 없다 엘지배까지는 독기의 힘이라고 여기는 기사가 많았다. 그러나 이달 5~15일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중국리그(을조)에서도 상승세는 이어졌다. 8개월간 이뤄지는 갑조 리그와 달리 을조 리그는 열흘 만에 끝나 부담이 적은 장점이 있다. 날로 강자가 출몰하는 중국의 신예들과 바둑을 둘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을조 광저우팀의 주장 이창호는 7차례 대국에서 6승1패로 제몫을 톡톡히 하며 30만위안(5000만원)의 가외수입도 올렸다. 정동환 한국기원 기전팀 차장은 “그동안 밖으로 나가 두는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이번 을조 리그를 통해 해외 원정과 새로운 얼굴과 맞서는 부담감을 털어냈다”고 말했다.
■ 이젠 다시 국내 무대다 ‘국보’ 이창호를 아끼는 바둑계의 애정은 은근하다. 이달 시작된 2011 KB국민은행 한국리그에서 이창호는 넷마블팀의 주장이다. 랭킹 9위로 8개팀이 겨루는 리그에서 주장 지명이 안 될 수도 있었지만 동갑내기인 양건 감독은 이창호를 택했다. 바둑계에선 “이창호가 살아나야 한다”는 걱정이 넘친다. 이제 국내대회에서 실력으로 부활 선언을 해야 한다. 예선 없이 세계대회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9위인 랭킹을 바짝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자존심 회복을 위한 무관 탈출도 발등의 불이다. 이창호는 엘지배와 명인전, 올레배, 국수전, 물가정보배 본선에 올라 있다. 25일 벌이는 물가정보배 홍성지 8단과의 대결은 탄력받은 이창호 9단이 넘어야 할 첫 관문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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