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20 20:18
수정 : 2011.07.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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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14·충암중) 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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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옥션배 8연승’ 14살 프로기사 최정 초단
서봉수·오규철 등 9단 6명
잇따라 이기며 ‘반상 돌풍’
“잃을 것 없어 무식하게 싸워
루이나이웨이 닮고 싶어요”
한달 남짓 사이 여덟명의 ‘아저씨’가 그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 가운데 여섯명은 입신(9단)이었다. ‘소녀 검객’ ‘입신 킬러’ ‘바둑 천재’ ‘최연소 프로’…. 이제 겨우 14살 먹은 소녀를 두고 이렇게 많은 수식어가 붙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올해 한국 바둑계에서 최고의 화제인물로 떠오른 최정(14·충암중) 초단.
최정은 45살 이상 남자 시니어 대표 12명과 여자 대표 12명이 연승전으로 승부를 가리는 지지옥션배에서 최근 8연승을 거뒀다. 속기의 달인 서능욱(9단), ‘장비’ 장수영(9단), 백전노장 서봉수(9단), 스승 오규철(9단) 등을 잇따라 휙휙 쓰러뜨렸다. 8연승은 1997년 진로배 세계 연승바둑대회에서 서봉수 9단이 일궈낸 세계 최장 9연승에 1승이 모자란 대기록. 18일 시니어팀의 9번 주자 안관욱 8단에게 불계패해 9연승은 좌절됐지만, 거침없고 빛처럼 빠른 승부로 뭇사람의 시선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19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최정을 만났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잘 봤냐”는 물음에 대답 대신 멋쩍은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좋아하는 배우 ‘유승호’ 얘기가 나오자 살짝 여드름이 돋아난 얼굴이 빨개졌다. 아직 앳된 단발머리 소녀. 하지만 반상 앞에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천성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직은 잃을 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무식하게 싸우다 보니 되레 그게 무기가 된 것 같아요.”
최정은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이지만 승부의 세계에선 독종으로 변하는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다. 최정의 지도사범이었던 김만수 7단은 “수읽기가 빠르고 승부처에서 전투력이 돋보여 성인 기사들이 오히려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최정은 7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한 점 한 점, 골몰히 생각한 뒤 두는 게 너무 좋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유창혁(9단) 도장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입단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13살의 나이로 국내 최연소 프로기사가 되면서 ‘한국 여자바둑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본인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소심한 성격은 아닌데 상황에 따라 긴장을 많이 하는 것도 문제고요. 대표팀에서 만난 언니들의 집중력은 꼭 배우고 싶어요.” 최정은 여자 국가대표상비군 소속으로 매주 자체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7~8시간의 훈련. “자도 자도 피곤해요. 체력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죠.”
한참 연예인을 보며 열광할 나이지만 관심은 오로지 바둑에 있다. 방학을 맞아 놀러 다니는 또래 친구들이 부럽지 않으냐는 질문엔 “내 길이 있는데 부러울 게 없다”고 했다. 목표를 묻자 대뜸 “내년에 세계 타이틀을 따는 것”이라고 했다. 존경하는 기사로는 중국의 ‘철녀’ 루이나이웨이 9단을 꼽았다. “기풍을 떠나서 그분이 걸어온 바둑의 삶을 저도 밟고 싶어요. 지금도 저에겐 밤하늘의 별 같은 존재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이창호 9단처럼 세계적인 기사가 돼 한국 여자바둑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어른스럽다고 하자 “아직 사춘기도 안 지났다”며 샐쭉 웃어 보였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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