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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09 20:20 수정 : 2011.11.09 22:05

생활속 바둑용어, 이렇게 많았어?
“아무개는 정치 9단”
“승부수냐 무리수냐”
“초읽기에 들어갔다”
바둑판이 세상 축소판

인터넷 라디오방송(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장안의 화제다. 꼼수란 ‘원래는 안 되는 수지만 상대를 속이기 위해 만드는 수’란 뜻으로 바둑에서 나왔다. ‘나꼼수’의 꼼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꽁수로 틀리게 쓰기도 하는데 꼼수가 바른 말이다. “수가 없다”라든가, 경지에 이른 사람을 “9단”으로 쓰는 것도 생활 속에 녹아든 대표적인 바둑 관련 표현이다. 대개 한 단어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생활 속의 바둑 용어는 꽤 많다.

■ 장고·포석·9단·악수… 가로 1자4치(42.42㎝), 세로 1자5치(45.45㎝)의 바둑판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희로애락이 난무한다. “장고하고 있다”, “사전 포석이다”, “아무개는 정치 9단”이라는 표현은 정치판을 설명할 때 많이 쓰인다. 복잡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일이 잘 풀리면 ‘묘수’라고 한다. 하지만 바둑에선 “묘수 세번 나오면 진다”는 격언도 있다. 가장 나쁜 수란 뜻의 ‘악수’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오래 생각하는 ‘장고’와 짝을 이룬다. 다음 수가 뻔한 장면에서 오래 생각하면 오히려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오게 된다. 바둑이든 세상사든 벼랑 끝에 몰리면 ‘무리수’를 두기도 하고, ‘승부수’를 띄우기도 한다.

경제에서는 거대 기업군의 영역 확장을 “대마불사”라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이미 실행된 일에서 교훈을 얻을 때는 흔히 “복기를 한다”고 한다. 이밖에 제 꾀에 제가 넘어갈 땐 ‘자충수’, 어떤 일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때는 ‘끝내기’라는 표현을 쓴다. 대국에서 생각시간을 다 쓰고 나면 통상 한 수를 둘 때 40초 3회, 혹은 1분 5회식으로 초읽기 시간을 주는데, 급박하거나 곧 해결될 것을 기대할 때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표현을 쓴다.

■ 수읽기·사활·돌부처·입신… 반상을 마주한 기사의 모습은 평화롭고 고상해 보이지만, 그들의 전투에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한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인 스포츠에 바둑 용어가 많은 이유다. 허정무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아마 4단으로 자신의 축구 철학을 바둑 용어로 비유한다.‘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는 내 집부터 살려놓은 뒤 상대 말을 죽인다는 실리 전법이다.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도 종종 ‘사활’이라는 말로 비장함을 표현한다. 인생에서 살고 죽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듯이 바둑에서도 사활이 가장 중요하다.

작전이 많은 야구에서는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타자와의 짧지만 강렬한 머리싸움을 ‘수읽기’로 표현한다. 과거 송진우나 구대성 등 수읽기에 능한 투수들은 모두 바둑 애호가다. 올해 삼성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마무리투수 오승환의 별명 ‘돌부처’도 이창호 9단에서 나왔다. 앞설 때든 위기에 몰릴 때든 표정 변화가 없고, 묵묵히 상황을 헤쳐 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바둑의 품계 중에서 최고단인 9단의 별칭인 ‘입신’은 한 분야에서 ‘최고수’에 이른 인물에게 바치는 찬사다. 야구계에선 선동열 기아 감독과 최근 타계한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을 투타에서 ‘입신의 경지’에 이른 인물로 뽑고 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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