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23 20:21
수정 : 2011.11.23 20:21
올레배 바둑오픈챔피언십 결승
이세돌과 내달 왕좌다툼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하늘로 날아오를듯한 기분”
무관탈출.
한때 13개 타이틀을 거느리다 올해 초 22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한 이창호(36) 9단에게 떨어진 특명이다. 11일 올레배 바둑오픈챔피언십 준결승에서 박정환 9단에게 불계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하던 날, 한 팬은 “토끼해가 저물기 전 토끼띠의 부활을 알려라”며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데 상대가 만만찮다. 하필 부동의 한국랭킹 1위 이세돌(26) 9단이다. 이세돌은 19일 열린 준결승에서 강동윤 9단을 꺾고 결승에 합류했다. 이로써 바둑계 슈퍼 매치 ‘양이 대결’이 여덟번째로 성사됐다. 둘은 다음달 6일부터 5번기로 결승전을 치른다. 우승상금은 1억원.
■ ‘무관탈출’ 이창호냐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은 “이창호에게도 이젠 여유가 좀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부터 급강하한 기력을 놓고 바둑계에선 일시적 ‘결혼 후유증’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새 사람을 맞으면서 신경이 분산되고, 머리가 복잡해진 탓이 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 결혼 1년을 훌쩍 넘기면서 안정감을 되찾고 있는 것 같다. 이창호는 최근 펴낸 자전 에세이 <부득탐승-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에서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라고 적었다. 부인 이도윤(25)씨는 지금 임신 5개월째.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편두통과 얼굴에 열이 몰리는 ‘상기증’도 결혼 초기에 견줘 많이 나아졌다는 게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김인 국수는 “이창호도 이제 불혹에 다가가고 있다. 승부를 관조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995년 20년 만에 제자 이창호의 손에 무관이 된 조훈현 9단은 그 뒤 세계대회에 전념하면서 동양증권배, 후지쓰배 등 8차례 국제대회를 거머쥐고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여전히 타이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예전엔 짐작하지 못 했던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지만, 이창호는 “나는 결코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승부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명예회복’ 이세돌이냐 승리의 열망이 솟구치기는 이세돌도 마찬가지. 이세돌은 6월 춘란배 우승 이후 국내외 대부분의 기전에서 중도탈락하며 내상이 깊게 패었다. 이창호가 선배 기사가 아니었다면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드라마 속 대사를 던졌을 법도 하다. 하지만 상대가 이창호라는 것이 부활을 ‘때깔나게’ 알리기에는 더 없이 좋은 먹잇감일 수 있다. 이세돌은 이창호와의 통산전적에서 25승31패로 뒤지지만, 최근 맞대결에선 4연승을 달리고 있다. 타이틀이 걸린 대국에서도 2승5패로 열세지만, 가장 최근인 2010년 9월 한국물가정보배 결승에선 이세돌이 웃었다. 그럼에도 이세돌은 ‘넘지 못할 벽’ 1순위로 여전히 이창호를 꼽는다. 물론 어지간한 바둑팬들이라면 이것이 ‘국보’에 대한 예우의 발언이라는 것도 안다.
극강은 벼랑 끝에서 강하다. 또 추락의 골이 깊을수록 반등은 더 높게 솟구친다. 하지만 웃는 사람은 한 명뿐. 이기면 재발진의 계기를 잡게 되고, 진다면 상처는 깊을 것이다. 바둑 전문가들은 “이창호와 이세돌은 목표가 있을 때 활화산처럼 폭발한다. 이번 대회가 기대되는 이유”라고 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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