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왼쪽), 백홍석(오른쪽)
|
프로바둑 고수들의 실수
최근 중국리그서 해프닝조, 팻감 안쓰고 패 따내
백, 복기 정확히 못해 혼선
알고보니 기록원의 실수 ‘투혼의 승부사’ 조치훈(56) 9단은 완전무결을 추구한다. 공부 한길을 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은 신경도 안 쓴다. 그 무결점주의와 절대몰입은 때로 해프닝을 낳기도 한다. 7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중국 을조리그. 10일 안쪽의 단기 일정으로 열리는 리그여서 외부 기사가 초대손님이나 용병으로 참가한다. 한국에서는 이세돌 9단 등 9명이 참여했고, 일본 쪽도 모처럼 합류했다. 여기서 ‘조(치훈)-백(홍석)’ 사건이 터졌다. 인터넷 사이트 ‘사이버오로’는 중국 ‘시나바둑’에 실린 에피소드를 전했다. 비씨카드배 우승자 백홍석 9단은 더저우 장하영화팀 주장으로, 중·일우호팀 주장으로 나선 조치훈 9단과 2라운드에서 맞섰다. 260수를 넘긴 막판 패싸움. 흑을 든 조치훈이 팻감을 쓰지 않고 곧바로 패를 따내는 실수를 했다. 백홍석은 규칙 위반을 지적했고, 조치훈은 바둑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항복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곧바로 실격패지만 중국 룰은 1벌점을 주고 한 수를 굶게 한다. 그러나 고수바둑에서 한수 허수는 사망이다. 꼼꼼한 조치훈은 방에 돌아와 몇번이고 기보를 확인했다. 그런데 기보 수순엔 자신의 실수가 없었다. 다시 백홍석을 불러 몇번 복기를 했는데, 이번엔 백홍석이 수순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의심은 더 커졌다. 보통 프로는 100% 복기를 해낸다. 국내 랭킹 1위 박정환 9단은 1년 전 대국의 전 과정을 복기할 수 있고, 박영훈이나 박정상 9단은 5~10개의 포석 기보만으로 언제 누가 둔 대국인지를 기억해낸다. 천하의 백홍석이 귀신에 홀렸다. 다행히 다음날 대회 주최 쪽이 대국 막판 사진을 입수하면서 오해는 풀렸다. 기록자가 엉뚱한 곳에 한 수를 기입했던 것이다. 조치훈 9단은 “오해가 풀렸다. 아무런 의심이 없다. 이 사건은 모두 내 탓이다. 백홍석을 탓하지 말라”고 사과를 표했다. 조치훈은 과거에 패를 잘못 따낸 경험이 있다. 1980년 일본 명인에 도전할 때다. 도전 7번기 3승1패로 앞서가던 조치훈은 완승 국면으로 가던 5국에서 팻감을 쓰지 않고 패를 따냈다. 당연히 반칙패지만 상황은 복잡했다. 조치훈 9단은 두기 전에 계시원한테 “내가 패 딸 차례인가” 하고 물었고, 정신나간 기록원은 “그렇다”고 했다. 일본기원은 긴급 이사회를 열고 무승부로 결론지은 뒤, “이후부터는 계시원에게 묻든, 묻지 않든 반칙패”라는 새 규정을 만들었다. 고수들이라도 착각은 종종 나온다. ‘전투의 신’ 조훈현 9단은 2003년 바둑돌을 놓을 수 없는 곳에 둬 실격패한 적도 있다. 15기 현대자동차배 기성전 16강전. 조훈현 9단은 최철한 5단과 초반부터 치열한 난전을 벌였으나 105수 만에 반칙패를 당했다. 조훈현 9단의 흑번으로 진행됐던 대국의 승부패는 좌하귀에 있었다. 그런데 조훈현은 승부패가 시작되는 순간 상대방 백돌로 둘러싸인 한집에 돌을 놓았다. 이른바 착수금지 지역에서 자폭한 것이다. 2010년 1월 에스티엑스(STX) 여류명인전 도전 1국에서도 실수가 나왔다. 당시 국내 여자바둑의 ‘여제’ 루이나이웨이 9단은 팻감을 쓰지 않고 패를 따내는 바람에 다 이겼던 1국을 조혜연 9단에게 내줬다. 이외에도 끝내기 공배를 메울 때 실수로 빅이 난 곳에 가일수해 몰살한 경우, 한-중 대결에서 사석을 상대편 돌통에 넣어줘 생긴 반집차 패배 등 실수의 사례는 여럿이다. 정동환 한국기원 홍보부장은 “패는 천변만화를 일으키는 요술쟁이인데, 때로는 대국자의 실수를 유도해내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