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37)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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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솔저 같은 사람” “종반·끝내기 분야 개척
그가 신세계를 열었다” 이젠 ‘1인자 장기집권’ 어려운 시대 바둑 전문가 10명에게 물었다. 누가 역대 최강의 국내 기사인가? 기준은 기보나 전적 등 기술적 통계나 자료가 아니었다. 누가 당대 바둑계의 분위기를 장악했는지, 누가 가장 강력한 충격파로 남아 있는지를 물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주관적인 이미지를 평가의 잣대로 삼았다. 두명을 추천하면 각각 한표씩으로 처리했다. 결론은 이창호(37·사진) 9단이었다. ■ 10명 중 7명 “이창호가 최강”
백성호 9단은 이렇게 말했다. “오청원(우칭위안), 조훈현, 이창호가 20세기 바둑의 최고봉이다. 그러나 국내로 한정한다면 이창호다.” 부연 설명을 들어보자. 그는 “이창호는 거의 25년을 군림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젊은 후배들이 슈퍼컴퓨터처럼 기계적 계산과 승부에 강하다면, 이창호는 바둑의 도를 지키며 싸우는 마지막 솔저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조훈현과 이창호 두 사람이 전성기 때 서로 겨룬다고 가정하면 결과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성기가 조금 길었던 이창호 9단이 역대 최강이라고 본다”고 했다. 인터넷 바둑사이트인 ‘사이버오로’의 정용진 이사는 이창호의 혁신을 강조했다. “이창호 9단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초·중반 패러다임은 있었지만 종반·끝내기 부분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이 종반·끝내기 분야를 개척하며 신세계를 열었다.” 덧붙임도 극찬이다. “이창호 9단 이후에 입단한 기사들은 종반과 끝내기에서 이창호 9단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혜택을 누렸다고 말할 수 있다.” ■ “반짝반짝” 조훈현은 4명 지지
한철균 8단은 “조훈현 9단의 바둑은 반짝반짝한다. 얼마나 감각이 빠르면 ‘조제비’ ‘속력행마’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천재성으로 말하자면 역대 최강”이라고 했다. 통산 2500전 이상을 치른 조훈현(59) 9단은 49살 때 삼성화재배 세계대회 우승, 50대에 국내 시니어대회 우승 등 나이의 하중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차민수 4단은 “불모지의 한국 바둑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00년에 한번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1989년 필마단기로 출전해 응씨배를 쟁취한 것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권갑용 8단은 “서봉수와 조훈현이 있지만 조훈현이 모든 것을 겸비했다. 한국 바둑이 스타일에서 한 단계 올라선 것은 조훈현의 힘”이라고 했다. 최규병 9단은 “최강 기사 한명을 꼽는 것은 조금 애매한 것 같다. 조훈현 9단은 빠르고 날카로움을 대표하는 천재형이고, 이창호 9단은 둔탁한 둔도(무딘칼)형이지만 세계를 제패했다”며 공동 1위로 꼽았다. ■ 사이클이 팍팍 달라진다
조훈현과 이창호 9단은 장기간에 걸친 철권으로 일인자의 이미지를 굳혔다. 하지만 앞으로 한 명의 기사가 장기집권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국내 랭킹 1위도 어느덧 이세돌 9단에서 박정환 9단으로 바뀌었다. 중흥기의 중국 바둑은 10대 초반의 기재들을 대거 배출하고 있다. 기보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정보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권력이동은 더 잦아졌다. 서봉수 9단은 전성기 때 이창호를 두고, “이창호를 이길 사람은 이창호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창호가 졌을 때 대국장 밖은 “박수로 넘쳤다”는 일화도 있다. 이창호가 신이 아님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윤현석 9단은 “모든 기사가 이창호만을 쫓던 시대가 있었다. 적수가 없는 독보적 질주 시대였다. 이제 그런 전설은 과거의 일이 됐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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