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27 20:10
수정 : 2013.01.2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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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입단제도를 통해 최초로 프로기사가 된 신민준(왼쪽), 신진서 초단이 어깨를 잡고 천진하게 웃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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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영재-정상 바둑대회서
이창호 이긴 ‘리틀 이세돌’ 신진서
최철한 꺾은 ‘작은 이창호’ 신민준
중국과 교류전서도 정상급 승부
“바둑리그서 강자들과 겨루고파”
꼬마라고 얕보지 마세요.
2013 한국 바둑계에 ‘양신’ 바람이 몰아쳤다. 300명 가까운 프로 기사 가운데 나이는 가장 어리다. 그런데 실력은 어린이 만화 ‘머털도사’ 급이어서 신동이라 불린다. 최근 이벤트 대회에서는 이창호, 최철한 9단이 급소를 맞고 쓰러졌다. 화제의 괴물 소년인 신민준(14), 신진서(13) 초단을 중국 원정 뒤 귀국한 25일 전화로 만났다.
“올해 바둑리그에 출전해 강자들과 붙어보고 싶어요.” 첫마디부터 팽팽한 기운이 감돈다. 겁없는 호랑이 새끼랄까. 바둑리그는 10개 실업팀이 벌이는 국내 최고의 기전으로 한국 랭킹 50~60위 이내의 강자만 나온다. 지난해 7월 입단했으니 갓 6개월차 된 소년들의 배포가 대단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들은 한국기원이 인정한 영재다. 입단 관문이 너무 좁아 기재가 뛰어나도 16살 이상이 돼야 입단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입단자 7명의 평균 나이는 20.6살이다. 한국기원은 지난해 7월 최초로 14살 미만 둘을 입단시켰고, 영재입단 방식으로 매년 2명씩 뽑는다. 중국 90후 세대의 등장에 대비한 조기교육 체계다.
신민준, 신진서 양신의 자신감을 보면 일단은 성공이다. 둘은 “평소 텔레비전으로만 봤던 선배들과 경기를 하게 돼서 가슴이 뛴다. 대국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실제 11~12일 한국기원에서 열렸던 영재-정상 바둑대회에서는 각각 최철한과 이창호를 꺾었다. 애초 공식 대국으로 기록하려 했으나 정상 쪽에서 반대한 만큼 고수들이 부담을 느끼는 대회였다. 15~23일에는 중국 베이징과 항저우에서 동료 기사 42명과 함께 교류전을 펼치고 돌아왔다. 신민준은 8승12패, 신진서는 12승8패를 기록했다. 원정단을 이끌었던 김성룡 9단은 “신진서는 재능이 이세돌 급이다. 다른 기사들과 비교 불가능한 번뜩이는 천재성이 있다. 신민준은 밸런스가 뛰어나다. 재능은 신진서에게 뒤지고, 체력은 변상일에게 뒤지고, 공부량은 이동훈에게 뒤지지만, 동시에 어느 하나 부족한 것도 없이 모두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둘의 스타일은 다르다. 신민준이 발이 느리지만 두터운 바둑을 구사한다면, 신진서는 빠르고 날카롭다. 최철한 9단은 “신민준은 예전 이창호 9단의 어린 시절이 연상된다”고 했고, 한종진 8단은 “신진서의 날카로움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이세돌 9단을 닮았다”고 했다. 신민준이 일찍이 2008년 엘리트 코스인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온 데 비해, 신진서는 고향인 부산에 머물면서 전국대회를 휩쓸다 2011년 연구생으로 들어왔다.
존경하는 기사는 기풍과 상반된다. 두터움의 신민준은 “이세돌 사범님을 가장 존경한다. 이세돌의 전투적인 기풍과 뛰어난 정신력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반면 발빠른 신진서는 “이창호 사범님은 뛰어난 실력에도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 이창호 사범님처럼 실력뿐 아니라 인품에서도 존경받는 기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똑같은 점은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 신민준을 지도한 옥득진 7단은 “신민준은 평소 밝고 명랑한데 바둑을 둘 때는 독할 정도로 승부욕을 보인다”고 전했다. 한종진 사범 아래서 배운 신진서는 평소 온순한 성격이지만 대국에만 나서면 돌변한다. 이번 중국 교류전에서는 아쉽게 패하자 분한 마음에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다고 한다.
신민준-신진서, 양신의 새해 목표는 비슷했다. “많이 경험을 쌓아서 실력을 늘리고 싶다.” “세계대회 본선에 진출하고 싶다.” 이런 각오라면 원하던 바둑리그에 특별 선수로 영입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성룡 9단은 “한국 바둑이 중국 바둑에 쉽게 잡히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창호-이세돌의 ‘양이’처럼 때맞춰 등장하는 재능들 때문인데 이번에 양신이 나타났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천진한 소년 기사 둘이 한국 바둑의 새로운 피가 돼 돌풍을 몰고올지 궁금하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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