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10 19:50
수정 : 2013.03.1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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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오른쪽) 9단이 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응씨배 결승 4국이 끝나고 자신의 패배를 확인한 뒤 머리를 감싸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상하이/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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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서 판팅위에게 1승3패
농심배 이어 중국 장기체류
체력 떨어져 감기·배탈 고생
후배 추격자와 싸움 부담도
“몸과 마음 강하게 관리해야”
쿵!
박정환(20) 9단의 6일 응씨배 결승 패배(1승3패)를 두고 한 바둑기사는 이런 표현을 썼다. 4년마다 돌아오는 40만달러 상금의 바둑올림픽 정상 문턱에서 떨어진 충격이 엄청나다는 의미다. 한국랭킹 2위에 절정의 기량을 자랑했지만 중국 상하이 3~4국에서 17살 판팅위 3단에게 내리 2판을 져 무너졌다. 준우승 상금은 10만달러.
세계적 기사여서 둘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다. 응씨배 우승을 차지한 판팅위는 중국기원 규정에 따라 9단으로 특별승단했으니 애초 9단과 3단의 차이는 표현의 차이지 기량차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승부를 가린 것일까?
프로기사들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지적했다. 김만수 8단은 “일류 기사들의 대국에서 컨디션이 승부의 90%를 좌우한다”고 했다. 마음가짐(멘털)은 흔히 기세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팽팽한 대결의 우열을 가른다는 얘기다. 박정환도 응씨배 2연패 뒤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박정환은 응씨배에 앞서 역시 상하이에서 열린 14회 농심배 최종주자로 나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상승세를 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응씨배 출전으로 체류기간이 연장됐다. 4일 상하이 잉창치(응창기)기금회에서 열린 응씨배 3국에 나갈 땐 감기 기운으로 몸이 안 좋았다. 음식도 맞지 않아 햄버거를 먹었지만 배탈이 나기도 했다. 6일 4국에서는 백을 잡고도 이기지 못했다. 응씨배에서는 흑에 8점을 공제(한국식으로는 7집반)하기에 백이 유리하지만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1989년 1회 응씨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훈현 9단이 중국 1~3국에서 1승2패로 뒤처진 뒤, 싱가포르에서 열린 4~5국에서 역전한 것과 비교된다. 조훈현 9단은 “당시 중국에서 4~5국을 뒀다면 졌을 것이다. 공안이 호텔을 감시하고 기분전환 할 것도 없는 갑갑한 상황에서 벗어나자 탈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환경 조건이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바둑 후배와의 싸움이어서 부담감을 많이 느낀 것도 지적된다. 정동환 한국기원 홍보부장은 “박정환은 국내에서는 주로 선배그룹을 물리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잠재적 추격자인 후배 기사를 만나면서 꼭 이겨야 한다는 집착을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최철한 9단은 환경적 측면을 지적했다. 2005년 5회 응씨배 결승에서 1승1패 뒤 중국 베이징 원정길에 오른 최 9단은 당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창하오 9단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최 9단은 “그때 베이징에서 음식이 안 맞아 식사도 제대로 못했고, 호텔은 공사중이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것도 기억이 난다. 상대도 마찬가지지만 어린 나이였고 경험도 부족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정환 9단에게 조언을 했다. 최 9단은 “정환이가 바둑에는 절대적으로 매진하지만 평소의 체력 관리나 컨디션 관리에는 소홀한 면이 있다. 좀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번 바둑에 대비해 판팅위가 박정환의 기보를 철저히 분석해 대처한 부분도 분명한 사실이다.
박정환의 응씨배 패배 뒤 바둑 사이트인 사이버오로에는 한 팬의 글이 올라왔다. ‘그리움이’라는 아이디의 바둑팬은 “4시간 30분 바둑인데 얼마나 육체와 정신적인 체력이 힘들었을 것인가. 내상이 크겠는데 그것을 딛고 더 크는 계기가 되길 빕니다. 박정환 파이팅!”이라고 했다. 최철한도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박정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패배가 충격일 수 있지만, 실력으로는 이미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환이 더 강한 멘털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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