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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21 19:37 수정 : 2013.04.21 21:01

황룡사쌍등배 세계여자바둑단체전을 우승으로 이끈 최정 3단이 위즈잉 2단을 이겼던 기보를 놓아본 뒤 활짝 웃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황룡사쌍등배 한국 첫우승 이끈 17살 소녀기사

“다리 꼬지 마 다 다리 꼬지 마~. 거들먹 거들먹거리는 너의 그 모습에… 괜한 승부욕이 불타올라 짧은 다릴 쭉 뻗고 다릴 꼬았지.”

최정(17) 3단은 대국을 시작하면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황룡사쌍등배 결승에서도 ‘악동뮤지션’의 ‘다리 꼬지 마’를 마음속으로 따라 불렀다. “대국 초반에는 돌이 별로 없어서 잡생각이 많이 들어요.” 바둑 기사들이 바둑을 둘 때면 사람이 옆에서 죽어도 모를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같지만 대국 초반에는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최정도 마찬가지다.

최정은 지난 11일 중국 장쑤성 타이저우시 장옌구에서 끝난 황룡사쌍등배 세계여자바둑단체전에서 한국팀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최정은 2라운드 13국에서 중국의 왕천싱 5단에게 263수 만에 흑 3집반 승을 거두며 3연승했다. 그는 한국의 네 번째 주자로 나서 6연승 중이던 중국의 위즈잉(2단)한테 131수 만에 흑 시간승을 거둔 데 이어 세계 여자기사 1위인 중국의 리허(5단)한테도 148수 만에 백 불계승을 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최정은 대국 시작 전부터 “내가 끝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최정은 대국 10분 전에 항상 눈을 감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는데 이날은 30분 전부터 대국장 근처 호숫가에서 혼자 마음을 다스렸다. 그는 “편안하게 두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최정은 가냘프고 앳되다. 그렇다고 기풍을 예단하면 오산이다. 스승 유창혁 9단의 기풍을 그대로 이어받아 수읽기에 강하고 전투적이다. 한곳에 웅크리지 않고 과감하게 적진에 뛰어든다. 흔히 말하는 붙이면 끊고 젖히면 다시 젖히는 스타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활 문제를 많이 풀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지난 2월 3단으로 승단한 최정은 힘과 세련미도 함께 갖춰 ‘소녀 장사’로 불린다.

스승 유창혁 기풍 이어 ‘전투적’
“바둑이 무엇보다 더 중요해”
고등학교 관두고 검정고시 준비
여자세계대회 궁륭산 우승 목표
“쎈돌 이기고 싶어, 가장 세니까”

올해로 입단 4년차인 최정은 2012년 1월26일 여류명인전에서 김미리 2단에게 2-0으로 승리하며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1월 박지연 3단을 2-1로 꺾고 여류명인전 2연패도 달성했다. 지난해 통산 39승(31패)을 일궈 박지연 3단과 여자기사 다승 공동 1위에 올랐다. 많이 이기니 수입도 ‘짭짤’해 지난해 9000만원을 벌었다.

‘맹부삼천지교.’

최정은 2010년 충암중 2학년 때 14살 나이로 프로에 입단했다. 아마추어바둑 1단인 아버지 최창연(46)씨는 ‘딸이 바둑에 재능이 있다’는 학원 원장의 말을 듣고 최정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이후 10여년 동안 광주, 서울, 분당으로 이사를 다녔다. 한국수력원자력에 근무하며 근무지를 옮겨 다녀야 했지만 딸에게 바둑을 가르쳐야겠다는 아버지의 바람이 더 컸다. 최정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이사와 당시 마포에 있던 유창혁바둑도장에 다녔다. 유창혁 9단과 사제의 연을 맺은 최정은 바둑도장이 분당으로 옮겨가자 다시 분당으로 이사했다.

“바둑이 더 중요해 자퇴를 결심했죠.”

최정은 지난해 8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바둑 특기생으로 입학했지만 시합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힘들었다. 수업 일수를 채워야 하는 부담도 컸다. 바둑 기사들 중에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학교에 미련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바둑이 천직”이라고 여기는 최정은 미련도 불만도 없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대신 평소에는 도장에서 바둑 공부를 하다가 대국이나 연수생들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한국기원에 가요.” 최정은 요즘 분당 집을 나와 서울 은평구 충암도장에서 기숙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과 바둑도장이 집이고 학교인 셈이다.

최정은 2011년 10월2일 여류기성전 결승 대국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바둑 천하를 호령하던 루이나이웨이 9단과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하지만 아쉽게 반집 차이로 졌다. 최정은 “루이나이웨이 9단과 대국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 기뻤죠. 졌지만 존경스러웠습니다”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최정이 바둑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루이나이웨이가 남자 기사들을 누르고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수 타이틀을 차지했다. 어린 최정에게 루이나이웨이는 정말 멋있어 보였다.

“바둑을 두지 않았다면 농구 선수가 됐을 거예요.”

평소 머리만 기대면 어디서든 잠을 자는 ‘잠만보’ 최정. 농구를 좋아해 바둑도장 동료들과 농구를 즐긴다. 농구장에 가서 좋아하는 전태풍 선수를 직접 본 적도 있고, 골을 넣으면 “전태풍”을 외치며 응원도 했다. 최장 7시간 동안 진행되는 ‘한판’을 두려면 체력도 필수다. 그런 탓인지 그는 “이유 없이” 갈비를 좋아한다.

최정은 올해 삼성화재배 16강 진출과 하반기 열리는 여자세계대회 궁륭산병성배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다. 세계 여자바둑 최강자인 중국의 리허를 넘어야 가능하다. 2012년 9월 지지옥션배 본선에서 천하의 조훈현(9단)을 이긴 경험이 있는 최정은 세계바둑 1인자 이세돌(9단)을 이기고 싶어한다. “가장 세니까.” 이유도 간단하다. 그는 대국에 져도 핑계를 대지 않는다. “핑계가 늘어나면 실수를 깨닫지 못할까봐 두렵죠.” 17살 최정, 남자 기사들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모습을 꿈꾸고 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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