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방송 <바둑TV>의 여성 진행자들은 연구생이나 프로 출신의 실력파로 전문 해설가와 호흡하며 팬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윤지희(왼쪽부터), 김여원, 최유진, 이소용 진행자가 방송 스튜디오 안에서 바둑돌을 들어보이고 있다. 바둑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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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TV 진행자’ 4색 토크
아마·프로서 활동하다 전향해설자와 시청자 노둣돌 역할 유창혁 9단 ‘독설’ 해설하고
이세돌 기사 ‘몰입형’ 스타일 장고바둑땐 화장실 문제 진땀
남편 출전땐 생활비 때문에 응원 “진행을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어요.” 해설자마다 개성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 알게 모르게 진행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다. 진행자가 해설을 어렵게 하는 해설자에게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하면, ‘월권’이라고 말할 때 무척 난감하다. 또 진행자가 초보 수준에 맞춰 쉽게 대국을 설명하면 ‘그 정도밖에 못 하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진행자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진행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해설자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어려서부터 ‘사범님’으로 모시던 분들이라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진행하는 게 어렵다. 실제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해설과 진행을 맡는 경우도 있다. 바둑티브이(TV)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는 최유진(31) 김여원(26) 윤지희(25) 이소용(24)씨. 바둑 프로그램 진행자는 시청자 처지에서 궁금한 부분을 해설자에게 물어보고 이를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바둑티브이 바둑 프로그램 진행자 4명을 지난달 30일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최유진씨는 2006년부터 진행을 맡아 온 베테랑이다. 윤지희씨는 5년차, 이소용씨는 3년차, 김여원씨는 지난해부터 프로그램을 맡았다. 바둑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 이들의 바둑 실력을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최유진씨가 아마5단, 김여원씨와 이소용씨가 아마6단, 윤지희씨는 프로 3단의 실력파다. 네 명의 진행자는 편하고 호흡이 척척 맞는 해설자를 선호한다. 유창혁 9단은 ‘독설’ 해설로 국면을 날카롭게 짚어줘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은데다가 진행자들을 편하게 해줘 함께 하고 싶은 1순위로 꼽힌다. 대국에 푹 빠져 해설을 하는 이세돌 9단은 ‘여기서 수가 나는데 한번 찾아보시겠어요’라며 답변을 요청해 오히려 진행자를 당황스럽게 한다. 박정상 9단은 머리에 저장해 둔 기보를 꺼내 해설하기로 유명하다. 이소용씨는 “세대가 비슷하고 친한 해설자와 함께 하면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더러 해설자들이 어려운 국면을 피해서 해설을 하거나 착각을 해 해설을 잘못하는 일도 생긴다. 이럴 경우 진행자들은 일반 시청자들보다 기력이 강하기 때문에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는 때도 많다. “그러면 그런 대로 여기저기서 또 욕을 먹어요.”(최유진) 바둑 자체가 재밌으면 해설도 신나고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이세돌과 이창호가 두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가 크다. 그래서 더욱 신나게 방송을 진행한다. “엎치락뒤치락 전투 바둑이 진행되면 신이 나죠.”(윤지희) 최근 이세돌(9단)과 김지석(9단)이 벌인 지에스(GS)칼텍스배 결승 대국은 19수부터 끝날 때까지 진행자들이 쉴 틈이 없었다. “대국장에 기사들이 들어가 앉았는데 진행을 하다보니 벌써 대국이 끝날 때가 됐죠.”(김여원) 하지만 장고 바둑이 되면 한 판이 열 판처럼 힘들어 피로감이 몰려온다. 세계기전은 시간이 길어 몇십분 동안 한 수도 두지 않을 때 정말 난감하다. 진행자가 할 얘기가 없어 무척 당황스럽다. 이보다 더 큰 곤욕도 치른다. 장고 바둑이 되면 방송 도중에 화장실을 못 가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방송 사고가 날까 걱정되지만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야 하는 게 급선무다. “도저히 견디다 못해 화장실을 후다닥 다녀올 때가 있죠.”(윤지희) 이들이 방송 진행자의 길을 택한 사연도 제각각이다. 일곱살 때부터 바둑을 배운 김여원씨는 2002년부터 한국기원에서 연구생 생활을 시작해 22살 때까지 입단을 위해 내달렸다. 입단 대회에 나갈 때마다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1년만 더 하면 할 수 있는데… 안타까웠죠.” 김여원씨는 그때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소용씨도 2002년부터 7년 동안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입단을 준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시험 준비를 하면서 입단의 꿈을 접었다. 두 사람은 “입단을 못 하면 한강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 기대가 컸는데 어떻게 얼굴을 볼지 고통스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최유진씨는 시작이 워낙 늦어 ‘입단해야겠다’는 생각이 크지 않아 두 사람처럼 좌절감을 맛보지는 않았다. 첼리스트와 스키어를 함께 꿈꿨던 그는 바둑 방송 진행자가 된 것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으로 꼽았다. 2004년 입단한 윤지희 3단은 1년6개월 동안 성적이 저조했다. 입단 후 5년 동안 노력했지만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최철한 9단과 결혼한 그는 이제 자신보다는 남편의 성적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남편이 항상 이기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승부는 생활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남편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은 2년 전 박정상 9단과 결혼한 김여원씨도 마찬가지다. “남편 바둑을 보면 심장이 떨리죠. 졌을 때는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죠.” 어릴 때부터 승부사로 ‘길러진’ 이들이기에 패배의 아픔과 냉혹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연구생 시절 동료와 함께 밥을 먹다가도 바둑판을 앞에 놓으면 서로 적이 된다. 아무리 친해도 섣불리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어렵다. “승부할 때 내 속마음을 상대편이 안다고 생각하면 그건 너무 견디기 힘들죠.”(윤지희) “어린 나이에 입단해 승부를 겨루다 보면 졌을 때 느끼는 아픔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계속하는 것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죠.”(최유진) 뭐니 뭐니 해도 자신들을 알아봐 줄 때 가장 기분이 좋다는 이들은 “다양한 기력을 지닌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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