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바둑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세기 디아나(31·오른쪽) 초단과 마리야 자카르첸코(18) 초단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활짝 웃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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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 프로기사’ 코세기·자카르첸코
우크라이나 출신 마리야 자카르첸코고향서는 ‘국수’급…여기선 9전9패
꿈의 1승 도전 “이길날 오겠죠?” 헝가리 출신 코세기 디아나
2008년 특별입단해 ‘6승75패’
“우리도 잘한다는것 보여주고파” “올해 5승이 목표예요.”(코세기) “저는 1승만 해도 좋겠어요.”(자카르첸코) 280여 한국기원 프로기사 가운데 유이하게 등록된 서양인 여자 기사 둘. 바로 헝가리 출신의 코세기 디아나(31) 초단과 우크라이나에서 온 마리야 자카르첸코(18) 초단이다. 둘은 특별입단 형식으로 각각 2008년, 2012년 한국기원 프로기사가 됐다. 한국에서 프로 자격을 얻었다면, 고국인 헝가리와 우크라이나에서는 거의 ‘국수’(國手)급으로 봐도 된다는 게 한국기원 관계자의 말이다. 그런데 한국말을 잘하는 둘의 인터뷰 첫마디는 “1승 하기 정말 힘들다”로 모아진다. 국내 프로바둑이 벽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한 코세기는 2008년 입단 이후 30일 현재 통산 성적이 6승75패로 승률 7%대다. 몇 해 전 한국에 와 지난해 입단한 자카르첸코는 9전9패로 0%다. 자카르첸코의 경우 이달 박카스배 천원전 예선 1회전에서 첫승 기회를 잡는가 했다. 대국의 승패에 큰 뜻을 두지 않는 원로 김인 9단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충 두는 김인 9단도 넘지 못했다. 자카르첸코는 “너무 많이 져서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한 번이라도 이겨서 자신감을 찾고 싶은데, 이길 날이 오겠죠”라며 웃는다. 유럽 기사들한테 한국 바둑은 꿈의 무대다. 현존 세계 최고의 기사들이 포진해 있고, 외국인에 대한 문호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바둑의 정점을 지났고, 중국에는 워낙 경쟁자가 많아 외국인들이 치고들어가기 어렵다. 반면 한국은 바둑의 국제보급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외국인 선수한테 개방적이다. 사실 코세기나 자카르첸코는 꼭 이긴다기보다는 배운다는 자세로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코세기의 경우 또래의 국내 기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인맥을 쌓았고, 자카르첸코는 바둑도장을 전전하면서 배우고 있다. 다만 ‘닭의 머리’에서 ‘용의 꼬리’로 위치가 바뀌면서 마음이 위축된 점은 있다. 둘은 “승부욕은 불타는데 성적은 나지 않으니 다른 기사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국료 수입도 미미하다. 코세기는 “예선부터 이겨야 바둑을 둘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는데, 대개 3월부터 5월까지 집중된 경기에서 떨어진다. 그러면 한해가 한가하다”며 멋쩍어했다. 둘의 바둑 인생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코세기의 경우 엄마가 선물해준 바둑판을 놓고 아빠와 오빠가 겨루는 것을 보고 빠졌다. 자카르첸코는 삼촌이 선물해준 바둑판이 인연이 됐다. 둘 모두 10살이 안 돼 자기 나라의 초보자 바둑대회를 제패하면서 꿈을 키워왔다. 기풍은 전투 바둑을 선호한다. 실력은 비슷하지만 아직 공식 대국에서는 맞붙지 않았다. 코세기는 “나는 연구생 2조까지 올라갔고 자카르첸코는 1조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나보다 잘 둔다고 말할 수 없다”고 자존심을 드러냈고, 자카르첸코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며 피해 갔다. 둘의 존재는 한국 바둑의 국제화 노력의 단면이다. 경험을 축적하고 실력을 늘려간다면 한국 바둑으로서도 좋은 일이다. 둘의 장래 희망은 결국 고국에 돌아가 바둑을 보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아직 헝가리나 우크라이나의 바둑 시장이 크지 않다. 선배 격인 코세기는 “앞으로 유럽 여자도 잘 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했고, 자카르첸코는 “많이 이기고 싶어요. 이길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타지 생활이 쉽지 않은 텐데, 바둑판을 사이에 둔 둘의 젊은 미소가 건강하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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