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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25 19:34 수정 : 2013.07.25 20:52

국내 3번째 ‘부자기사’ 최규병-영찬

조남철-조치훈 가문의 영찬군
영재입단대회로 프로기사 데뷔
“가장 존경하는 기사는 아빠”

아빠는 어린 아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쑥스러운 마음에 그냥 ‘수고했다’고만 했다. 아버지가 결국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선대부터 해온 바둑을 아들이 이어주길 바랍니다. 나는 오랫동안 공백기가 있었고 승부사로서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내 아들은 승부의 세계에서 바르게 성장해서 내가 못한 것들을 이뤄주기를 기대합니다.”

13일 아들 최영찬(14·충암중2)이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기사가 됐을 때 아버지 최규병(50) 9단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 잘 안 나왔다. 아들 영찬은 “수고했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 못들었어요. 좋아하시는 것 같기는 한데…”라고 했다.

사실 아빠는 들뜬 마음에 바둑계 동료들에게 크게 한턱을 쐈다. 국내 3번째 부자 기사이자, 사상 처음으로 4대에 걸친 프로기사가 나왔으니 그럴 만하다. 무엇보다 아들이 본선 4강 첫판에 져 패자조로 밀렸다가, 다시 부활해 총 전적 10승2패로 2명만 뽑는 관문을 통과한 게 뿌듯했다.

최영찬의 바둑은 신중하고 실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찬을 지도한 한종진 사범(8단)은 “박영훈과 비슷하다. 계산에 능하고 신중하다”고 했다. 차분한 아버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바둑 명문가라는 점을 의식하는지 나이에 비해 감정의 기복을 쉬 드러내지 않는다. 실제 가문이 화려하다. 아버지는 한국기원 기사회 회장이고, 아버지의 작은외할아버지는 고 조남철 9단이다. 일본에서 활약하는 조치훈 9단과 은퇴한 조상연 7단, 국내파 이성재 9단과도 핏줄로 연결돼 있다.

시련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놀이터에서 놀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1년 넘게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 뒤 1년 가까이 치료를 받아 바둑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영찬은 “가장 힘들었던 때”로 기억한다. 보통 6~8살에 바둑에 입문해 프로기사를 꿈꾸는 연구생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1~2년이 중요하다. 아버지 최 9단도 “엄청 성장할 수 있는 시기에 사고를 당해 안타까웠다. 부모로서는 평생의 짐”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빠와 아들은 이때 가장 가깝게 지내게 됐다. 영찬은 “아버지가 곁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지켜봐주셨다. 그때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가장 존경하는 프로기사도 아빠다. 영찬은 “공백이 있었지만 다시 바둑으로 돌아와서 바둑에 전념하는 아빠의 자세를 본받고 싶다”고 했다. 아빠 최규병 9단은 12살에 입단했으나 학업으로 방향을 틀어 대학까지 마친 뒤 복귀했다. 최 9단이 버티고 있었다면 이창호의 시대가 훨씬 늦게 열렸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부자는 생김새부터 성정까지 빼닮았다. 어머니 황희수씨는 “마음이 여린 것이 두 부자가 똑같다. 둘 다 남들한테나 가족들한테 독하게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종진 사범은 “영찬이는 차분하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하는 유한 성격이다. 여린 성격이 승부사로서 약점일 수 있지만, 어린 나이에 비해 심리적으로 잘 훈련된 점은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고 평했다. 아버지는 많은 것을 기대한다. “나는 승부사로서는 좋은 선배가 아니다. 바둑을 공부하는 자세는 박영훈 9단, 인간으로서의 태도와 사람 관계는 이영구 9단, 승부에 대한 치열함과 구도의 자세는 조치훈 9단, 듬직함은 이창호 9단을 본받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덧붙인다. “유연하면서도 파워가 있고, 날카로우면서도 숨길 줄 아는 유창혁 9단의 바둑을 배웠으면 한다.” 욕심이 끝이 없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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