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2.06 19:38 수정 : 2014.02.06 22:06

송상훈 초단과 아버지 송중택씨가 4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대국실에서 이날 받은 프로 면장을 놓고 좋아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8승으로 프로가 된 송상훈 초단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대국상대
아마 고수 부친은 장애인협회 만들어
“남들처럼 풍족한 지원 못해 미안
이제는 타이틀 하나 땄으면…”

“내 인생 최고의 기쁨입니다.”(아버지)

“뒷바라지 힘들었을 텐데, 효도해야죠.”(아들)

지난달 17일 입단 대회를 통과해 프로가 된 아들 송상훈(19) 초단과 아버지 송중택(54)씨. 둘에게 바둑은 부자의 정을 연결하는 끈이자,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하는 창이다. 시각장애인 아버지는 고시 이상으로 어렵다는 프로기사에 입문한 아들에게 “잘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은 울었다. “한국기원 대기실에서 입단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안경을 썼기 때문에 들키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은 어땠을까. “입단 마지막 관문인 8승째를 했을 때까지 몰랐다. 그런데 복기 후반부에 가슴이 찡했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전남 고흥 출신인 아버지는 13살 때부터 녹내장으로 눈이 나빠졌다. 어려운 형편에 치료는 엄두도 못 냈고 17살이 되면서 한쪽 눈은 시력을 잃었다. “수술을 하면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수천만원의 비용을 댈 수가 없었다. 결국 군대 신체검사를 받을 즈음에는 두 눈이 완전히 실명했다.” 두문불출 방황하던 송씨는 늘 수면제를 통째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1~2년 뒤 “살아야 한다”는 각오로 안마 등 직업교육을 하는 시각장애인학교에 등록했고, 부인 정문순씨를 만나 딸 단비와 아들 상훈을 두었다. “부인이나 나나 보이지가 않는다. 아이들과 무언가 연결할 것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둑이었다.” 딸 송단비씨도 명지대 바둑학과에 수석 입학하는 등 기재를 보였지만, 지금은 문헌정보과로 옮겼다.

어릴 때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웠던 아버지는 결혼 전 부인으로부터 받은 시각장애인용 바둑판으로 공부해 지금은 아마 6~7단의 고수다. 시각장애인 국제바둑대회의 한국 대표이며, 90년대말 국내 장애인바둑협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아들 상훈은 아버지와 바둑 두는 것이 일상이었다. 시각장애인용 바둑판은 가로세로 19줄이 선으로 불거져 나와 있고, 바둑돌은 아래쪽에 열십자 모양의 홈이 파여 교차점에 올려 고정시킨다. 흑돌은 윗부분에 돌기가 나와 백돌과 구분된다. 당연히 돌을 올려놓는 데 시간이 걸리고, 형세를 파악하려면 판 전체를 더듬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놀라워서, 송중택씨는 250수 이상 진행돼도 대충 돌의 위치를 머릿속에 떠올린다고 한다. 확인을 위해 판을 더듬어 살피기는 하지만, 패를 따내는 싸움까지 전혀 무리가 없다.

송상훈 초단은 어렸을 때는 직접 아버지의 대국상대가 됐고, 좀더 커서는 인터넷 바둑을 두는 아버지를 돕기도 했다. 상대의 착점 위치를 점자바둑판에 두거나, A19 혹은 B12라는 식으로 좌표를 불러주면 아버지가 응수하는 식이다. 송상훈 초단은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어떤 때는 내가 둬 버린 경우도 있고, 놀고 싶을 때 바둑 두자고 부를 때는 귀찮아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은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송상훈 초단을 지도한 양천대일도장의 이용수 7단은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거나 위축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 티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송상훈 초단은 최근 6년간 바둑도장에서 거의 기숙을 하며 공부에 전념했다. 스승인 이용수 7단은 “번뜩이는 게 있다. 수읽기가 날카롭고 싸움을 즐기는데, 어려운 바둑이라도 후반에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기풍을 소개했다. 다만 초반 포석과 대세관에서 좀더 보완을 해야 한다며 약점도 지적했다. 송상훈 초단은 “어려서부터 지는 것을 싫어했고, 싸움바둑을 좋아했는데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단이 준 자신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창호 사범을 좋아한다. 그동안 생각도 못 해본 일인데, 만약 이창호 사범을 만나 바둑을 둔다면 영광이고 기분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입단하면서 달라진 것은 또 있다. 그동안 아버지와 아들은 한해 2~3차례 명절 때만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양천대일도장에 출퇴근한다. 그동안 수업료를 내고 다녔는데 프로가 되면서 면제됐다. 송상훈 초단도 마음이 푸근하다. 그는 “입단이 늦어지면서 쫓기는 기분이었는데 이제 압박감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을 만나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다른 아이들처럼 좀더 풍족하게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이제는 잘해서 타이틀 하나 땄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도 이제부터 전문기사로 본격적인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그는 “일단 한판 한판을 열심히 두겠다. 올해 목표는 각 대회 본선에 오르는 것이다. 19살 입단이 늦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