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10 21:35
수정 : 2016.03.10 22:16
이세돌-알파고 2국
인간만이 갖는 승부처 호흡까지
종반 단번에 승패 뒤집어
이세돌 초읽기 몰리며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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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52…백156 알파고가 초반 이상 감각(흑13·15ㆍ37)을 보이면서, 이세돌 9단이 앞서갔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알파고가 힘을 발휘했다. 흑139부터 153까지는 프로기사들도 감탄할 정도로 완벽한 마무리 솜씨였다. 흑165까지 알파고가 중앙에 큰 집을 지으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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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0년 전 포석이네요? 받아줄까요? 아 받네요.”
10일 서울 포시즌스호텔 6층에서 열린 이세돌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5번기 2국 공개해설을 맡은 유창혁 9단은 초반 포석 단계에서 흑을 잡은 알파고가 우하귀 등에 둔 13, 15번째 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좀 더 발빠르게 움직인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상한 수다.” 하지만 이세돌은 참고 정석으로 받아 두었다. 인공지능의 “깊은 뜻”을 모르고 자칫 반발해 약점을 추궁했다가는 1차전의 패배가 재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싸움에 말려들면 슈퍼컴퓨터의 계산력에 밀릴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알파고와 이틀째 마주 앉은 이세돌의 이날 전술은 우보천리의 묵직함이었다. 수읽기 싸움에서 내로라하는 이세돌이지만 인공지능은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처럼 좀체 항복을 모른다. 더욱이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 심리의 흔들림도 없다. 이세돌은 직관과 통찰, 기세나 분위기 등 눈에 잡히지 않는 에너지를 총동원해 종반에서의 승부를 도모했다. 사실 이세돌 9단의 강점은 최정상급 기력뿐만 아니라, 대국자의 심리적 변화를 파악해 무너뜨리는 기싸움이다. 이곳저곳 발빠르게 두면서 상대를 흔드는 것은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기계를 상대로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는 없었다.
이세돌은 1차전의 학습을 토대로 이날은 안전주행을 했다. 반면 알파고는 평소 이세돌의 장기였던 기발한 수로 대응해왔다. 프로기사들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상한 감각처럼 보이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더 강하고 까다로운 수를 둔다. 두터움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미세한 약점을 포착하는 능력도 강하다”고 평했다.
이날 알파고는 초반보다 중후반이 더 매서웠다. 알파고는 초반 3수째 화점이 아닌 소목에 돌을 두었고, 13수와 15수째에는 프로기사들이 생각하는 수순을 비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김만수 8단은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라고 하지만 그동안의 선입관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보면 알파고가 이긴다. 알파고가 기존의 바둑 패러다임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했다. 종반으로 갈수록 알파고의 계산력은 더 강력했다. 슈퍼컴퓨터의 신경망이 최적의 착수점을 찾아내는 정책망과 승률을 예측하는 가치망을 정밀하게 가동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수를 내고, 이상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득이 되는 수를 놓는 이유다. 이날도 알파고는 종반 중앙에서 10집 이상을 추가해 단번에 승리를 결정지었다. 알파고는 30분의 생각 시간을 남겨두었고, 이세돌은 초읽기에 몰리면서 위기감은 더 커졌다. 유창혁 9단은 “인간끼리의 싸움에서는 흐름이 좋으면 한쪽이 무너진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라 그런 점이 전혀 없다”고 놀라워했다.
알파고는 확실히 강했다. 인간 두뇌의 마지막 영역인 직관과 사고력까지 넘나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 대국장에는 이세돌 9단이 전날 대국을 통해 알파고를 파악했기에 이길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막판 이세돌의 비세가 확인된 순간 대국장의 공기는 음울해졌다. 김만수 8단은 “만약 3국에서 이세돌 사범이 승리하는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대역전극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길을 혼자서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인공지능 앞에서 바둑 세계챔피언의 모습은 작아 보였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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