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11 21:04
수정 : 2016.03.11 21:08
|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하사비스가 11일 오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
구글딥마인드의 인공지능 (AI) 알파고가 9일과 10일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비비시>(BBC)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알파고가 9일 1국을 이겼을 때,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이 소식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기계가 인간을 위협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조였다.
그런데 9일 밤 비비시에 접속했을 때 알파고 승리기사는 홈페이지 상단에 없었다. 축구나 국제정치 기사가 있을 뿐 알파고에 대한 얘기는 찾을 수 없었다. 스크롤을 당겨 쭉쭉 내려가자 손톱만한 크기의 사진과 함께 알파고 기사가 짧게 실렸다. 어찌된 일인가싶어 <가디언> 홈페이지도 방문했다. 그런데 어찌나 똑 같던지, 아래 쪽에 조그만 사진과 함께 짧게 처리가 됐다. 2국 승리 소식은 11일 비비시 초기화면에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영국 뉴캐슬대학 전산학과에서 강의하는 문송천 카이스트경영대학원 교수한테 궁금증을 물었다. 문송천 교수는 오랜 기간 영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해 영국의 과학계 분위기를 잘 안다. 일단 문 교수는 영국의 언론이 “한국을 무시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영국에서는 알파고가 세계 바둑 챔피언격인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을 그리 대수롭게 보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알파고는 바둑에 특화된 스프트웨어다. 그것이 세계 바둑 챔피언을 이긴 것을 그냥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한국에서 많이 얘기하듯 알파고가 이김으로써 기계인 인공지능이 사람의 능력을 넘어섰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찌보면 바둑 게임 분야에서 그동안 해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성취를 이룬 것을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수천년간 이룩해온 문명 전체를 위협할 정도의 인공지능은 아니라는 얘기다.
알파고를 개발한 회사는 영국의 딥마인드다. 구글이 인수했지만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딥마인드 시이오 등 핵심 인력들은 영국인들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이 대국할 때 태극기와 영국의 국기가 대국장에 등장하는 이유다. 문 교수는 “영국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인터넷 등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강력한 저력을 갖고 있다. 산업혁명의 역사적 배경까지 포함해서 우수한 인력들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쪽에 많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실제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인 앨런 튜링이나, 1991년 월드와이드웹으로 인터넷 시대를 연 팀 버너스 리는 모두 영국인이다.
문 교수는 알파고의 인공지능도 결국 소프트웨어 설계로 보고 있다. 또 아직 약점이 있다고 본다. 그 내용을 알면 알파고를 이길 수 있다고 여긴다. 다만 알파고에 대한 정보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고, 이세돌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상대와 바둑을 두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봤다. 문 교수는 “만약 영국에 세계 바둑챔피언이 있어서, 그가 구글의 대국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영국의 분위기에서는 대국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인간과 기계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게임 방식에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희박한 상태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문 교수는 “영국 사회의 분위기라면 구글딥마인드 쪽이 세계 최강자와 바둑을 두기를 원한다면, 먼저 알파고가 어떤 식으로 바둑을 두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떤 알고리즘을 따르는지를 충분하게 설명할 것을 요청했을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 알파고를 인공지능과 등치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미국이 90%를 차지하고 영국 등 몇 개 나라가 시장을 갖고 있다. 한국은 0.8%의 점유율밖에 안된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산업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의 기초인 소프트웨어 기술력 수준이 열악한 상황인 것을 먼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