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15 19:48
수정 : 2016.03.16 10:30
이세돌, 그는 왜 특별한가
8살때 전국어린이바둑왕전 우승
2002년 후지쓰배 이후 18차례
세계대회 휩쓸며 싸움바둑 유명
초중반 예측 못하는 실험적인 수
후반 정상급 끝내기로 판 흔들어
돌출적 행동으로 독불장군 오해도
“연구생 시절이죠. 그야말로 도장의 꼬맹이들이 물어봐요. 당시 국내 일인자인데 진지하게 응해주는 거예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 깜짝 놀랐죠. 바둑에 대한 열정에 반했습니다.”
프로 입문 직전의 연구생이었다가 현재 바둑 온라인 매체 <타이젬>에서 활동하는 이영재 기자가 2007년 경험한 이세돌 9단의 일면이다. 당시 형 이상훈 9단의 도장에 간판을 건 이세돌 9단은 종종 찾아와 연구생이나 유망주들과 대국을 했다. 이영재 기자는 “연구생 신분으로 두 번을 두어본 적이 있다. 처음에 내가 흑을 잡고 졌는데, 바둑 내용을 좋게 평가해주었다. 두 번째 둘 때는 프로가 바둑 두듯이 호선으로 두자고 했다. 실력이 낮은 사람이 물어봐도 바둑의 수에 관한 것이라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준다. 아이들이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고 회상했다. 이세돌이 독불장군 스타일이라는 일부의 이미지와는 다른 면모다.
이세돌 9단의 이미지는 양면적인 데가 있다. 창조성과 승부사 기질, 전투성으로 압축되는 그의 바둑 스타일은 선이 굵다. 전남 신안 비금도 출신인 그는 8살 때 초등 6학년까지 참가하는 전국어린이바둑왕전에서 우승한다. 기재를 발견해 그를 스카우트한 권갑용 8단은 “자유분방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상대와 맞부딪칠 때도 매우 격렬하게 싸운다”고 평가했다. 아마 5단 실력의 든든한 후원자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더 독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2002년 후지쓰배 우승으로 세계기전 정상에 오른 뒤 세계대회를 18회 제패한 것은 불굴의 전투정신을 방증한다. 이 과정에서 “무자비하다”, “깡패바둑”이라는 악명을 얻는다.
독단적인 행동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2009년 엘지배 세계바둑 결승전 때, 대국장이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였는데, 하루 전까지 소식이 끊겼다가 당일 아침 택시를 타고 대국장에 나타나 한국기원 관계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또 한국바둑리그 불참으로 징계를 받자 국수 타이틀도 반납하고 6개월간 휴직계를 내기도 했다. 1999년 3단 승단 뒤에는 10국을 두어 심사를 하는 승단대회가 의미가 없다며 불참해 나중에 한국기원이 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듯한 그의 돌출적인 행동은 일부일 뿐이다. 김만수 8단은 “한마디로 말하면 너무 솔직한 사람이다. 에둘러 가는 것이 없다. 자기 감정에 굉장히 충실해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다’라고 한다”고 했다. 실제 이세돌은 이창호가 전성기일 때도 “끝내기에서 뒤지지 않는다”며 인정하지 않았고, 이창호가 예선전 없이 농심배 시드로 자동 출전하면 “왜 내가 일인자인데”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전성기 때는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라는 발언으로도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함과는 거리가 있다. 최근 알파고와의 3국이 끝났을 때, 이세돌은 동료 기사를 만나 “(알파고의 실수를 끌어내려고) 내가 둔 수가 너무 심했다”고 실수를 확실하게 인정했다.
이세돌의 바둑 실력은 수읽기에서 엿보인다. 보통 사활 문제를 풀 때는 대부분 해법이 있는 것을 알기에 답을 찾아낸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수를 찾아야 한다. 알파고와의 4국 때 나온 백 78수가 그렇다. 이세돌은 백 78을 위해 72수부터 공작을 했지만, 당시 78을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72를 놓을 때 25분간 장고한 이유다. 누나인 이세나 <월간바둑> 편집장은 “동생은 어려서부터 궁금증이 있으면 밤을 새우더라도 풀어야 했다”고 했다. 김만수 8단도 “예술가적인 면모가 있다. 바둑을 두기 좋은 상대를 만나면 승부욕 때문인지 즐거워한다. 옛날의 최철한이 그런 상대였고, 최근까지는 구리가 그랬다”고 했다.
풍운아적 기질과 풍부한 스토리는 구글이 이세돌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바둑 세계랭킹을 결정하는 시스템은 없다. 다만 중국의 1위 커제나, 한국의 1위 박정환이 한·중을 대표하는 기사다. 하지만 알파고는 최근 10여년간 세계를 평정하고, 기발한 착상으로 족적을 남긴 이세돌을 택했다. 실제 이세돌의 바둑은 마치 알파고처럼 한 수 한 수 이기는 확률이 높은 쪽으로 착수하는 이창호 9단과는 완전히 다르다. 또 초중반에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수를 실험적으로 사용한다.
2002년 이후 매년 세계기전을 한차례 이상 제패했던 이세돌은 2013년 세계대회 3번의 준우승 뒤 본격기전 세계대회 제패 기록이 없다. 이제 바둑의 스타일도 초기의 전투적인 형태와는 달라졌다. 무리하지 않는 정수로 두고 후반에 승부를 결정한다.
어린 시절 고독한 서울 생활과 승부에 대한 압박 스트레스로 실어증을 겪고 기관지까지 약해진 그의 목소리 톤은 높고 갈라져 있다. 승부가 끝난 뒤 보여주는 환한 미소까지 아직도 소년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바둑판에 집중하고, 상대가 누구든 진지하게 임하는 대국 자세는 무서울 정도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이세돌은 오해를 많이 받은 기사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서 더욱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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