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24 17:41
수정 : 2016.11.24 21:10
딥젠고 하드 용량 128GB
수퍼컴퓨터급 알파고와 차이
“노림수 걸려들며 어설프지만
6개월 뒤 세계 정상 도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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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도쿄 일본기원에서 조치훈 9단이 일본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딥젠고’(DeepZenGo)와 대국을 치르고 있다. 이날 대국에서 조 9단은 167수 만에 불계승해 2승1패로 최종 승리를 거뒀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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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딥젠고’(DeepZenGo)의 기력은 구글의 ‘알파고’(AlphaGo)에 미치지 못했다. 구글은 지난 3월 자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로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꺾어 전세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부랴부랴 일본 인공지능계는 ‘딥젠고’를 내놓고 일본 ‘명예 명인’인 조치훈(60) 9단과의 대국을 추진했다. 그러나 ‘딥젠고’는 조 9단과의 3국에서 져 최종 1승2패로 패했다. 23일 대국이 끝나고 프로기사들은 딥젠고의 실력이 알파고에 이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딥젠고는 구글의 알파고에 대항하기 위해 도쿄대 연구팀 등이 참여해 만든 일본의 범국가적 프로젝트다. 물론 딥젠고의 하드디스크 용량은 128기가바이트(GB)로, 기업용 서버 500개 수준의 슈퍼컴퓨터급 알파고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딥러닝(스스로 기보를 학습)과 몬테카를로(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성공률이 제일 높은 것을 선택) 방식이 적용된 건 알파고와 같다.
지난 3월 인공지능 고도화 작업이 시작된 딥젠고는 7월 세계 최고 여류기사인 조혜연 9단을 상대로 2점 접바둑(기력 차이가 날 때 두는 바둑)에서 이겼고 그로부터 4개월 뒤 조치훈 9단을 상대했다. 조 9단은 세계순위에서는 이세돌에게 뒤지지만 일본 바둑계에서 가장 많은 타이틀(74개)을 가지고 있는 바둑계의 전설이다. 바로 그 조 9단과의 두 번째 대국에서 호선(실력이 대등한 기사들의 대국에서 백이 덤을 받고 두는 것)으로 딥젠고가 승리하자 일본 언론은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의 승리’라며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정작 프로기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조치훈 9단이 한 번 진 것조차 의아하다는 것이다. 김성룡 9단은 “1국을 보니 프로와 정선(기력이 낮은 쪽이 흑을 잡고 덤 없이 두는 바둑) 정도 되는 실력이었다. 2국에서 조 9단이 진 게 의외였다”며 “딥젠고는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두는 바둑이라 알파고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만수 7단 역시 “프로와의 대결이라면 호선과 정선 사이의 실력이다. 알파고가 9단이라면 딥젠고는 6단”이라며 “딥젠고가 노림수에 걸려드는 걸 보면 아직은 어설픈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두 기사는 모두 “인간의 학습능력은 컴퓨터의 학습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언젠가는 딥젠고에 역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바둑으로 읽는 인공지능>의 저자인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도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파고 사례로 볼 때 앞으로 딥젠고도 6개월 정도면 세계 정상급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며 “실수도 적고 창의성까지 갖춘 바둑 인공지능은 인간이 상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알파고 등장 전부터 대형 바둑 기전이 스폰서 부족으로 줄어드는 추세인데다 바둑기사를 꿈꾸던 유망주들조차 알파고 이후 속속 진로를 바꾸면서 바둑계엔 위기감이 팽배하다. 바둑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만수 7단은 “지금은 위기이자 기회”라며 “알파고는 프로들에게 과거의 식상한 방식을 벗어나라는 주문을 했고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바둑을 알리는 기회도 됐다”고 말했다. 감 교수 또한 “이젠 프로기사들이 팬들 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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