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4 21:25
수정 : 2019.09.24 22:28
[짬] 한국 여자바둑 ‘최고수’ 최정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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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9단이 2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 원구단 앞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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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자바둑 최강 최정(23·셀트리온) 9단은 ‘천하장사’로 불린다. 지난 18일 ‘참저축은행배 기전’에서는 ‘외계인’으로 이름난 강동윤 9단을 꺾고 4강까지 올라 남자 기사들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남녀 모두가 출전하는 종합기전 4강 진출은 중국 출신으로 한국 무대에서 활약했던 루이나이웨이 9단 이후 처음이다. 당연히 토종 여자기사로는 최초다. 하지만 24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최정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다행인 것은 바둑이 너무 좋은 거죠.”
최근 남녀 모두 출전한 ‘종합기전’
국내 여자 첫 4강 진출 ‘철의 멘털’
7살때 부친에게 배워 14살 프로로
“성적 부담에 울었지만 이젠 성찰”
세계대회 첫 우승·랭킹 톱10 목표
“져도 배우니 갈 길 무궁무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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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만이 아니라 만능 운동선수인 최정 9단은 한국 여성 기사 최초로 세계대회 우승을 꿈꾸고 있다. 사진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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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때부터 아빠와 바둑을 두기 시작한 최정은 만능 운동선수이기도 하다. 축구·족구·농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잘하는 것뿐 아니라 지는 꼴(?)을 못 본다. 그런 독한 성격은 아빠 쪽을 닮은 것 같은데, 바둑 둘 때는 더 집요하다. “어렸을 땐 바둑에 져도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그러다 입단하고 성적을 내려고 달리다보니 졌을 때 화가 많이 나더라구요. 그 때 스스로를 많이 질책하며 울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져도 많이 배우니까요.”
물론 바둑 입문부터 14살 프로 입단, 국내 최정상에 이르기까지 순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르쳤던 김만수 8단은 “처음부터 수읽기에서 이미 또래 남자들을 다 이겼다. 초등 6학년 때는 남녀 통틀어 전국 톱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런 자존심 강한 최정이 승부에 개의치 않게 됐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차원을 뛰어 넘는 의미가 있다. 천재성에 비해 중학 2학년 프로 입문은 좀 늦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그는 ‘씩 웃어 넘기며’ 2018년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 최우수 선수, ‘하림배 여자국수전’ 우승, 9단 승단 등 거침없는 행보로 ‘한 방’에 상황을 뒤바꿨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늘 상승하는 것은 그만의 ‘긍정의 힘’ 덕분이다. 그는 “잘 안 될 때, 고비마다 스스로를 지켜본다.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명상도 하고, 책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 깨달음이 온다”고 했다. 결국 바둑은 머리싸움, 수싸움, 멘털의 싸움이다.
그럼에도 기력의 차이는 있고, 승패는 피할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 워낙 타개에 능하고 난해한 수를 두기로 유명한 후지스배 챔피언 경력의 강동윤 9단을 무너뜨린 것은 최정에게도 사건이었다. 바둑계에선 최정상권 기사들도 앞으로 최정과의 승부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최정은 “과거엔 남자 기사와 대국하는 것을 의식했다. 실제로 남자들이 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랭킹이라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다. 특별히 남자나 여자를 따지지 않고 대국에만 집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랭킹은 22위. 국내 여자 기사 가운데는 가장 높다. 24일 개막한 ‘2019~2020 케이비(KB)국민은행 바둑리그’ 9개팀 45명의 기사 가운데 포함된 유일한 여자다.
바둑계에선 전성기를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본다. 이겨도 져도 “바둑이 좋은” 최정이 유리한 것은 바둑이 물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채울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낀다. 계속 배우고 싶고,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 기사로는 사상 최초로 세계대회 우승 꿈을 이루고, 랭킹 톱5에 든다면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당장 오는 27일 시작되는 바둑리그 출전, 국내 최대 규모인 ‘한국제지 여자기성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최정은 “어렸을 때는 무식하게 공격적이어서 끊을 때는 무조건 끊고 싸웠지만 지금은 부드러워졌다. 여유를 갖고 바둑을 둘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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