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05 18:42 수정 : 2005.06.05 18:42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가 5일(한국시각) 카우프먼스타디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선발 투수로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캔자스시티/<더 뉴스 앤 이미지스> 제공



메이저리그 12년만에 달성

서른둘, 잔치는 다시 시작됐다

드디어 해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 선수가 5일(한국시각) 미국 캔자스시티 카우프먼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승리를 거두며 100승 금자탑을 쌓았다. 1994년 메이저리그 데뷔 12년 만의 위업이다.

박 선수는 이날 5이닝 동안 11안타를 맞고 6실점했으나, 홈런 4방 등으로 무려 14점을 뽑아준 타선 덕분에 승리투수가 됐다. 이로써 그는 메이저리그 129년 역사상 542번째, 현역 투수 가운데 40번째로 100승 투수가 됐으며, 동양인으로는 일본의 노모 히데오(37·탬파베이 데블레이스·121승106패)에 이어 두 번째 100승(73패)의 발자취를 남겼다.

94년 4월 한양대 재학 중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박 선수는 96년 4월7일 첫 승을 올린 뒤 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다. 8차례의 완투승 가운데 두 차례 완봉승을 올리기도 했다. 박 선수는 이날 경기 뒤 “나 혼자 거둔 100승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서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해준 데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25208개…영광과 눈물을 던졌다

코리안특급 박찬호 100승 도전기



끝없는 텃세와 인종차별, 지옥 같은 마이너리그 생활…. 그럼에도 한국 선수들한테는 ‘금단의 땅’처럼 비쳐진 메이저리그의 빗장을 최초로 연 주인공 박찬호 선수. 그를 물꼬로 한국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쏟아져 들어갔고, 그가 던지는 불같은 강속구에 국민들은 자긍심에 벅차 올랐다. 공주 ‘촌놈’ 박찬호는 불굴의 도전기로 메이저리그 100승 드라마를 연출한 스포츠 영웅이다.

한·미·일 LA대회서 ‘찜’
‘공주 촌놈’ 인생 바꿔
메이저 직행 영광도 잠시
마이너서 눈물의 담금질

5년연속 두자리승 ‘천당’
텍사스 먹튀 오명 ‘지옥’
올시즌 5연승 명예회복

엘에이에 온 공주 풋내기(1991~93년)=91년 여름 엘에이에서 열린 ‘한·미·일 청소년 굿윌 야구대회’는 박 선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공주고 3학년 박찬호는 당시 조성민(신일고)과 임선동(휘문고) 등 쟁쟁한 선수들의 틈에 끼여 미국행 비행기에 간신히 몸을 실었다. 다른 선수들은 로스앤젤레스의 모교 동문회에서 ‘모셔’ 갔지만, 그는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통역을 맡았던 스티브 김의 집에 머물렀다. 훗날 박찬호 선수의 에이전트가 된 스티브 김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대회에서 조성민과 임선동 선수가 흠씬 두들겨맞는 동안 박 선수는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이 모습은 고스란히 엘에이 다저스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왔다.

눈물의 마이너리그(94~96년)=박찬호 선수는 한양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94년 1월 계약금 120만달러와 연봉 10만9천달러에 6년 계약을 맺고 엘에이 다저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4월4일 역대 17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선수가 됐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2경기에서 4이닝 5실점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더블 에이와 트리플 에이에서 하체훈련 등으로 담금질을 한 그는 마침내 96년 4월7일 시카고 커브스전에서 선발 라몬 마르티네즈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2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첫 승을 따냈다.

▲ 박찬호 선수가 5일(한국시각)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한 뒤 경기장을 나오다 환호하는 동포 팬들의 손을 맞잡고 있다. 캔자스시티/<더 뉴스 앤 이미지스> 제공



꿈을 이룬 코리안특급(97~2001년)=박찬호 선수는 97년 제5선발 자리를 꿰차고 당당히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마운드에 섰다. 그 뒤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자리 승수를 쌓았다. 2000년에는 18승(10패)으로 일본의 노모 히데오를 뛰어넘어 한 시즌 동양인 최다승을 일궜다. 그 해 8월30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는 무려 14개의 탈삼진을 빼앗기도 했다. 이듬해 7월19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는 삼진 9개를 솎아내며 2안타 무사사구 완봉승(5-0)으로 가장 빛나는 투구를 보였다.

텍사스의 ‘먹튀’(2002~2004년)=박찬호 선수의 ‘몸값’은 치솟았다. 결국 5년간 6500만달러를 받고 텍사스로 이적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거액을 챙긴 그는 ‘스포츠 재벌’이 됐다. 그해 9승8패를 거둬 6년 연속 두자리 승수에는 실패했지만 이듬해 100승 돌파는 무난해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허리 부상으로 고작 1승만을 거둔 채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고, 2004년에도 석달을 쉬었다. 자연히 ‘먹튀’(‘돈만 먹고 튄다’는 뜻)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양인 최초를 향해=박 선수는 올해 ‘텍사스의 비난’을 잠재우고 완벽하게 재기했다. 최근 5연승을 포함해 6승1패를 기록중인 그는 ‘올해의 재기선수’에 거론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해 10승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메이저리그에서 10승씩을 거둔 박찬호. 그의 꿈은 노모 히데오(121승)를 뛰어넘어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최다승 투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동양인 2번째 ‘ML투수 7%클럽’

‘찬호 100승’ 얼마나 대단하기에

“정상에 오른 뒤에 메이저리그를 떠나겠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하지만 정상은 커녕 1승을 거두기까지 데뷔 이후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러나 11년 2개월여가 흐른 지금, 1승도 어려운 메이저리그에서 드디어 100승의 금자탑을 쌓고 ‘정상’에 올랐다.

129년간 7680명중 542명만 밟은 고지
한국에선 16명…2.28%의 ‘바늘구멍’

박찬호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송재우 〈엑스포츠〉 해설위원은 “타고난 어깨와 끊임없는 훈련”이라고 말한다. 박찬호는 천성적으로 강한 어깨를 타고났다. 공주고 동기인 손혁보다 고교 때 한발 뒤처져 혹사당하지 않은 것도 ‘행운’이었다. 하지만 행운만으로 박찬호가 탄생한 것은 아니다.

박찬호는 끊이없는 훈련으로 두 다리에 힘을 붙였다. 박찬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틈만나면 달리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 동기들과 만난 술 자리에서도 팔굽혀펴기를 하며 몸관리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메이저리그 100승을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며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사실 ‘전설의 투수’ 사이 영은 22년간 무려 511승을 거둬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역 투수 가운데도 로저 클레멘스(43·휴스턴 애스트로스·328승)와 그렉 매덕스(39·시카고 컵스·305승)는 300승을 넘어섰다.

하지만 129년간 메이저리그에 오른 투수는 7680명이나 된다. 모두 마이너리그와 일본, 한국, 멕시코리그 등에서 땀과 눈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빅리그에 오른 선수들이다. 이 중에서 100승을 거두기란 산술적으로 7.06%에 불과하다. 마이너리그 더블에이 정도로 평가받는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100승 투수는 고작 16명이 탄생했다. 전체 투수 703명의 2.28%에 해당하는 ‘바늘 구멍’이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100승은 타고난 어깨 위에 수놓은 땀과 눈물이 어우러진 결정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무너지나 했더니 화력지원 ‘화끈’

힘겨웠던 100승 순간


100승의 순간은 길고도 험했다.

5일(한국시각) 새벽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100승에 도전한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는 제구력 불안으로 1, 2회에만 8안타로 4실점했다. 이대로 가면 100승은 물건너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요즘 불방망이를 휘두르는 텍사스 타선이 불끈하더니 박찬호 100승 ‘도우미’로 나섰다.

텍사스는 3회 로드 바라하스의 1점 홈런으로 포문을 연 뒤 알폰소 소리아노의 2점 홈런으로 순식간에 동점을 만들었다. 박찬호도 3회부터 안정을 찾았다. 3회 1사부터 4회 2사까지는 4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텍사스는 4회 마이클 영의 적시타로 경기를 5-4로 뒤집었고, 5회 마크 테세이라의 3타점짜리 싹쓸이 2루타 등으로 6안타 6득점해 11-4로 달아나며 승부를 갈랐다.

박찬호는 5회 2사 만루에서 티헨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아 추가로 2실점한 뒤 6회부터 마운드를 론 메이헤이에게 물려줬다. 4시간 가까운 긴 승부는 결국 텍사스의 14-9 승리로 마무리됐고, 박찬호는 타선의 도움으로 5연승을 챙겼다. 시즌 6승1패에 평균자책 5.09.

박찬호는 경기 뒤 “오늘은 내 피칭보다는 팀 동료들의 공격 덕분에 승리했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박찬호의 말말말

“고통도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가니. 언젠간 여러분들의 실망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고, 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렵니다.” -텍사스 이적 뒤 부진을 겪던 2002년 8월.

“쏟아지는 비난들은 제 자신마저 저를 죄인인냥 죄책감을 느끼게 합니다. 원형 탈모라는 것도 생기더군요. 머리도 빡빡 깎고 싶었는데 오백원짜리 만하게 몇 군데가 빠지고는 다시 나지않으니 시원히 깎을 수도 없었습니다. 마이너에서 영어가 서툴고 김치, 마늘 냄새난다며 나를 무시했던 선수들과 싸워가면서 버텨냈던 시간들. 외로워서 컴컴한 아파트 방에서 울던 생각을 했습니다.” -3년째 부진하며 ‘먹튀’ 소리를 듣던 2004년 10월.

“고난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비타민입니다.” -2005년 5월 시즌 5승을 거둔 뒤.

박찬호 홈페이지에서( www.chanhopark61.com/chp )



그를 세롭게 하는 땀방울…땀방울

송재우 해설위원이 본 찬호

1994년 4월. 메이저리그 구장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시아의 청년이 엘에이(LA)의 다저스타디움에 우뚝 섰다. 중간 계투로 나선 이 청년은 1이닝을 채 마치지 못하고 강판됐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2005년 6월5일. 약간은 몸이 불고 연륜이 느껴지는 그 젊은이가 미소를 띠며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섰다. ‘통산 100승’을 축하하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내가 미국에서 박찬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외톨이로 뛰고 있었다. 확실한 선발 투수로 인정받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생존하기 위한 지독스런 하체훈련의 하나였다.

그는 훈련 벌레다. 욕망을 억누르는 철저한 자기관리는 오늘날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그는 담배는 전혀 피우지 않는다. 술도 절친한 사람들과 약간 즐길 뿐이다. 내가 본 박찬호는 맥주 반컵 이상을 마시지 않았다.

박찬호는 컨트롤의 기복이 심해 불안정한 투수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시속 150㎞ 후반의 빠른 공과 낙차 큰 커브는 97년부터 2000년까지 연평균 15승을 올리는 데 끌차 구실을 했다. 다만 타자와의 머리싸움에서 너무 생각이 많았던 게 더 많은 승수로 갈 수 있는 길에 때론 장애물이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백만장자’가 된 그에 대한 질시의 눈초리도 많다. 하지만 그는 물건값을 깎고 또 깎아 값싸게 구입한 뒤 주위에 자랑할 만큼 검소하고 천진하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절약정신 때문이다. 그동안 어려운 이웃이나 야구단체, 모교 등에 기부한 돈이 수십억원에 이를 만큼 ‘의리’도 있다.

박찬호는 거듭나고 있다. 과거 힘에만 의존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빅리그 경험이 세련된 박찬호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고국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 그가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국내에서 장식하거나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불타는 도전정신의 박찬호, 노력의 화신 박찬호. 박찬호는 영원히 잊지 못할 스포츠의 매력을 팬들에게 선사한, 한국 체육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송재우 <엑스포츠> 해설위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